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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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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9. 19:47 일본문학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308/files/49298_34002.html

작가소개 : http://blog.naver.com/japanliter/140027128269

"저기, 당신. 지금 오쿠(尾久)에 있는 집(친척)이라도 가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마누라인 오하쓰(お初)가 리헤이(利平)의 머리맡에서 끊임없이 설득한다. 리헤이가 쟁의단에서 머리를 깨지고 왔을 때부터 오하쓰는 아주 겁을 먹었다.

"무슨……말도 안 되는……도망치다니, 그런……앗, 아, 아."

눈을 돌려 마누라에게 호통을 치려고 했지만 맞아 붕대 감은 머리의 상처가 따끔따금 죄여 온다.

"그렇지만, 당신……"

오하쓰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당신, 또 오늘 아침 쟁의단에 어디선가 이상한 놈들이 잔뜩 왔으니……. 그런 위험한 놈들이니 정말 당신 목숨이라도 빼앗을 지도 몰라……. 어머, 봐, 저렇게 많이 시끌시끌하는 거, 안 들려?"

안 들리기는 커녕, 리헤이의 온 신경은 담 하나만 사이에 둔 옆 쟁의단 본부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소리에 기상대의 풍향계 화살처럼 쏠려 있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그래도 직장(職長)이라고, 회사의 신임을 짊어지고 또 한 편으로는 놈들의 신뢰를 짊어지고 수백 명의 머리 위에 서 있는 거다……. 저런 은혜도 모르고 의리도 모르는 놈들한테 겁먹어서 살림을 정리하고 도망치라니, 그런 모욕적인 일이 있을까.

"시끄러워……. 저런 놈들은 파업으로 밥먹고 다니는 깡패들이야. 뭘 할 수 있다고……. 시끄러우니까 아래 내려가 있어, 내려가 있으라니까……."

오하쓰는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안아 일어섰지만,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나는 물론이고, 애들도 위험해서 밖에도 못 나가고 아무것도 못 해."

입 속으로 중얼중얼거린다.

"이봐, 밑에 있는 경찰한테 가와무라(川村) 잡혔냐고 물어보고 와."

흥분하자 머리의 상처가 한층 아파 온다. 병원에도 안 가, 칭칭 감은 붕대로 피가 번져 나오는데 검은 담 너머 바깥의 빛이 비춰 눈구석이 몹시 가물가물한다. 은혜도 모르는 가와무라 이 개자식! 어릴 적부터 키워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내 머리를 깨다니……. 감방 들어가서 울지나 마라…….

뒤로 젖혀 반자널을 보며 욱신욱신 쑤시는 아픔을 꾹 눌러 참았다.

회사가 직장폐쇄를 한 이래, 벌써 이럭저럭 사십 일이다. 인쇄기에 녹이 슬 것 같은 회사 내부에 있는 리헤이와 동료들은 직장 단체를 만들어 처음에는 이 쟁의에 "공평한 중립"을 지킨다는 성명을 냈다. 다만 그걸 신용한 쟁의단원은 한 명도 없었지만……. 하지만 이제 오늘에는 리헤이와 그의 동료들이 사장의 유일한 손발이자 버팀목이었다. 회사의 흥망은 곧 자신의 흥망이라 생각해왔다. 그들은 쟁의단원 중 온건파 단원들을 알았다. 또 이런저런 단원들의 약점도 알았다. 그게 가장 먼저 시행되었는데, "분열시키기" "의리와 인정만으로 유괴"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큰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탈자 공략에 나섰지만 그것도 강고한 쟁의단의 방해로 예상만큼의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트럭 안 짐 사이로 다섯 여섯 명의 이탈자를 싣고 회사 바로 근처까지 왔을 때, 트럭 운전수와 변장한 리헤이가 심하게 얻어맞은 때도 이때였다.

그래도 직장(職長) 동료의 혈연관계나, 이를테면 리헤이처럼 부자가 같이 근무하는 자는 아들을 회사로 보내 간신히 이백 명이 안 되는 이탈자로 한편으로 쟁의단을 위협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기계에 녹이 슬지 않을 정도로 공회전을 시키고 있었다.

"자네, 회사 안에서 생활하는 게 좋겠네. 쟁의단 본부에 붙어있는 집이라니, 위험해서 살 수가 있나."

동료도 끊임없이 리헤이를 설득했지만, 고집 센 그는 듣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적 우세를 등에 업고 그때 날뛰는 혈기다.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형사나 정복 경찰이 지켜줘 회사에서 2정(丁)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친 몸으로 이 층에 드러눕고 나서 벌써 오육 일 지난 아침의 일이다.

오하쓰가 올라 왔다.

"잡혔대요, 가와무라가"

"언제야, 어제래?"

"어젯밤이라네요. 그 꼴을 보라지. 젠장, 은혜도 모르는 놈이 어젯밤에 심한 꼴을 당했다지 뭐예요."

"흐음"

리헤이는 머리의 통증이 훨씬 줄어든 것처럼 순간 느껴졌다. 사회주의자 같이 긴 머리카락과 영리해 보이는 작지만 맑은 눈을 한 가와무라가 갑자기 작디 작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열두세 살 어릴 적부터 혼나고 두드려 맞으며 자신에게 일을 배웠던 그 가와무라의 얼굴이 생생히 눈에 떠올랐다.

그저께 밤에도 이삼십 명 검거되고, 그 바로 십 일 전에도 사오십 명 검거된 쟁의단이다. 아무리 삼천 명으로 시작한 쟁의단이라 해도 직장(職長)들이 생각하기에 그 승패는 불보듯 뻔했다.

"쟁의가 끝나면 내가 데리러 가지."

그러면 그놈들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는 왠지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심복이자 내제자[각주:1]라고 할 부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한 일이었다. 가와무라도, 다카하시(高橋)도, 사이토(斎藤)도 오노(小野)도, 그외 십수 명 그를 지지하는 유력한 부하는 모두 조합의 손에 빼앗겨 버렸다.

그럼에도 일체의 원한을 없던 일로 하고 쟁의 중에 스스로 데리러 가는 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올까.

아직 조합같은 게 없을 무렵, 귀여운 부하들 가운데서 높이 앉아 축배를 들던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 심한 꼴을 당했대?"

리헤이는 이불 위로 살살 일어났다.

"그렇대"

마누라는 조금 의아스러운 듯이 리헤이의 얼굴을 봤다.

"신경 쓸 거 없잖수, 그런 은혜도 모르는 놈들."

"음, 그건 그렇다만."

그는, 마누라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온 다섯째 여자아이를 한손으로 어르며 창문 장지 사이로 검은 담을 보았다.

마침 그때…… 담 너머 쟁의단 본부에서,

"만-세, 만-세"

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십 명, 백 명의 목소리다.

"뭘까?"

부부는 눈을 마주 봤다.

"어디……"

오하쓰가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조심 장지를 열어 담 너머를 엿보더니 그대로 숨을 죽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래도 오하쓰는 입을 다문다.

리헤이는 아픔을 잊고 아기를 안은 채 오하쓰의 등뒤에 섰다.

그러자 본부 뒤 툇마루에서 마루 밑 토방까지 가득 쟁의단원이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게 정면으로 보였다.

마루 위 젊은 남자 이삼십 명은 마침 한중(寒中)인데도 굴하지 않고 노동복을 휙휙 벗어던진 알몸이었다.

"팬티도 벗어버려, 참을 수가 없네."

하고 말하며 새빨갛게 될 정도로 온몸을 긁어대는 남자도 있었다.

"어머, 저 많은 이 좀 봐."

붉은 어깨띠를 두른 여공들은 바지런하게 벗어던지는 노동복을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통에 집어넣는다.

"이봐, 그만 해. 여자 앞에서 그렇게 벗어대지 말라고."

"그만 하라니……. 너희들, 여자는 잠깐 딴데 봐주지 않을래."

"아하하하하"

"오호호호"

남자도 여자도 와 폭소를 터뜨렸다.

"왜 그러는데, 뭐야?"

오하쓰는 리헤이에게 살짝 말한다. 리헤이는 입을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저건 오늘 아침 유치장에서 방면되어 돌아온 쟁의단원을 다른 자들이 환영하는 자리다!!

리헤이는 놀랐다. 어두운 곳에 수십 일 처박혀 있어야 할 그들의 얼굴 어디에 근심의 빛이 있는가. 흔연한 게 마치 개선 장군이 아닌가! ……마중하는 자도 돌아오는 자도 그런 유쾌한 폭소는 어디서 나오는 거냐!!

따뜻한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친 젊은이 사이에서 움직이던 누군가 리헤이를 공격했다. 마루 끝에 즐비하게 늘어선 십수 명의 나신 중 한 명이 낮게 노래를 시작하자 다른 이들이 높게 응하여, 의기왕성한 힘의 혁명가가 크게 파문을 일으켜 얼어붙은 아침 공기를 찢으며 높이 뛰어올라 퍼져 간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남자 한 명은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손을 흔든다……. 그러자, 오하쓰가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앗, 리스케(利助)가, 당신 리스케가!"

오하쓰는 리헤이의 팔을 힘껏 당겼다.

"뭐, 리스케?"

세상에!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바로 눈앞에서 목이 터져라 높이 노래하는 나신 사이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리스케가 있었다!

리헤이는 망연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 확실히 회사 안으로 트럭에 태워 보냈을 리스케였는데……. 하지만 틀림없이 리스케는 알몸으로 혁명가를 부르고 있었다.

"여러분, 옷을 입어주세요. 밥 다 됐어요."

여공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공이 제각기 밥통을 옮긴다. 구운 꽁치가 접시 위에서 뒤집혀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리헤이는 반쯤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리스케, 리스케" 마누라는 담 너머로 부르려 했다.

"그, 그만, 조용해."

리헤이는 마누라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시켰다.

"자, 들어가자. 문 닫아."

리헤이는 문에 손을 댄 순간, 문득 한 번 더 리스케쪽을 봤다.

그때, 알았는지 몰랐는지 리스케는 옷을 입으며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가만히 리헤이의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 눈, 그 눈…….

리헤이는 서둘러 장지를 닫아 걸었다.

"저 눈이야, 저 눈. 가와무라도 저 눈이야!"

리헤이는 머리를 싸매고 입을 다물었다.

쟁의 이전부터 조합 일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뛰쳐나갔던 리스케였다. 리헤이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회사로 돌아간 일도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긴 이상했다.

"이래선 마치 부모고 자식이고, 의리고 인정이고 없잖나."

리헤이는 목이 멜 듯 했다. 그리고 열이 난 탓인가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는 침구를 머리까지 푹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때도…….

이탈자 네다섯 명을 데리고 ××마을 파출소 옆에 트럭을 세우고 다른 한 명의 집에 가자고 돌았던 골목에서 우연히 두 소년공을 발견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봐, 산코(三公), 요시코(義公)" 하고 부르자, 둘은 변장한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돌아 다가왔다. 그리고 둘은 "미야모토(宮本) 리헤이다!" 하고 냉담하게 지껄이고는, 발걸음을 돌려 후다닥하고 도망쳐 버렸다. 놈들은 망을 보고 있던 것이다. 건방지게 "미야모토다." 라니, 평소에 부모보다 두려워하고 또 존경하는 자신에게 냉담하게 지껄였을 때도 저 눈이었다.

서둘러 트럭으로 회사 근처 길모퉁이에 왔을 때, 느닷없이 옆쪽에서 남자 오육 명이 운전석를 향해 달려들었다. 큰일 났다고 자세를 취하자 운전석 뒤 창문을 부수고 서서히 다가왔을 때 저 가와무라의 눈…….

"저 눈은, 부모고 은인이고 죽일 눈이야!!"

리헤이는 온몸을 쑥 지나가는 추위와도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준비 해. 오늘 안에, 이사하자고."

벌벌 떠는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한 리헤이는 조금 전까지 넘치던 자신이 모두 없어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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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각여삼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