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일각여삼추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2014. 3. 7. 10:58 일본동화

島の暮れ方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475/files/51096_52790.html


* 1차 수정 : 마지막 문장에 크지 않은 집이 아니라 거미줄이었습니다. 놓쳐서 수정합니다.


남방의 따뜻한 섬이었습니다. 그곳은 겨울도 이름만으로 언제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어느 초봄의 해질녘이었습니다. 나그네 하나가 길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이 근처는 처음인 듯 오른쪽 왼쪽 살피며 자기가 가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이 나그네는 이곳에 오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배에도 타야 했습니다. 먼 나라에서 이 섬에 사는 친척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길가에 수선화가 꿈처럼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산에 새빨간 동백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근처는 들판과 언덕으로 인가라 할만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바다 쪽에서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꽃향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는 점점 서산 끄트머리로 저물어 갔습니다.

“이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어느 길로 가야 내가 가려는 마을에 닿을 수 있을까.” 하고 나그네는 멈춰 서서 생각했습니다.

어디든 이 근처에 물어볼 집이 없을까 또 잠시 동안 오른쪽 왼쪽 살피며 걸었습니다. 그저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부서지는 소리만이 조용한 밤하늘 아래 희미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그때 우연히 나그네는 초가집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 그 지붕은 다갈색이었습니다. 그가 집 쪽을 향해 다가가자 초라한 집이라 울타리도 망가지고 사람 손길이 닿은 흔적 또한 없었습니다. 그는 누군가 이 집에 살고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점점 다가가며 나그네는 두 번 놀랐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젊은 여자가 그 집 문 앞에 쓸쓸히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긴 머리를 어깨에서 뒤쪽으로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촘촘하면서 깨끗하고, 눈은 비쳐 보일 듯 투명하고, 입술은 꽃처럼 곱고, 이마는 하얬습니다.

나그네는 왜 이런 섬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런 섬이라서 이런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나그네는 여자 앞으로 가서,

“신사가 있는 마을로 가려고 합니다만 어떤 길로 가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자는 상냥하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신은 나그네시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그네는 대답했습니다.

여자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저도 어차피 저쪽으로 가니까 같이 가드리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나그네는 “그럼 부탁드립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둘이 길을 걸어나서는 때 나그네가 여자를 돌아보며,

“저 집에 사시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니요, 어째서 저게 제 집인가요? 오늘 제 두 아이들이 놀러나가고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마중 나온 거예요. 그런데 저 집 덧문에 작년에 사라진 여동생 기모노 비슷한 게 걸려 있어서 그만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랍니다.” 하고 여자는 대답했다.

나그네는 이상한 말을 들어 놀란 나머지 아름다운 여자의 옆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마침 그 순간 저 편에서,

“엄마!”

“엄마!”

하고 외치며 두 아이들이 뛰어왔습니다. 여자는 기뻐하며 두 아이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헤어지겠습니다. 이 길을 똑바로 가시면 금방 신사가 있는 마을이 나옵니다.” 하고 여자는 나그네에게 길을 알려주고는, 꽃이 핀 좁은 길을 두 아이와 함께 쓸쓸하게 파도 소리가 들리는 산기슭 쪽을 향해 갔습니다.

나그네는 그와 반대편의 산에 닿아 점점 더 깊숙하게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에는 벌써 귤이 열려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해가 떨어졌을 시간에야 가고자 했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등불 밑에서 나그네는 친척들과 그날 이상했던 아름다운 여자를 본 것과 그 여자는 쓸쓸하게 반대쪽 산기슭으로 풀숲을 헤치며 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한 친척이 놀란 얼굴을 하며,

“그쪽에는 인가가 없을 텐데.” 하고 말했습니다.

나그네는 역시 “여동생의 기모노와 아주 닮은 기모노가 덧문에 걸려있었다. 그 여동생은 작년 행방불명이 되었다.” 는 여자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나그네는 친척과 함께 어제 여자가 서 있었던 곳까지 같이 가보기로 했습니다.

남쪽 섬의 기후는 따뜻하고 하늘은 신비로웠습니다. 꿀벌은 꽃에 모여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어제 해질녘 보았던 초가집까지 가자 그 집은 완전 폐가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덧문을 바라보자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가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있었습니다.

'일본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미 난키치『장수풍뎅이』  (0) 2014.01.14
니미 난키치『큰 남자 이야기』  (0) 2014.01.10
미야자와 겐지『쏙독새의 별』  (0) 2013.12.19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21. 15:24 일본문학

女類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035/files/274_20183.html

저(26세)는 여자를 한 명 죽인 적이 있습니다. 실은 어이없이 죽여버렸습니다.

종전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패전 전에는 징병으로 이즈(伊豆)의 오시마(大島)에 끌려가서 매일매일 땅굴공사를 강제로 하게 되어, 원래부터 이렇게 삐쩍 마른 몸이라, 정말이지 지금도 죽고 싶을 정도로 고생했습니다. 종전이 되고는 뭐가 뭔지 그저 기진맥진해 과장하자면 거의 기듯이 도치기 현(栃木県)에 있는 생가에 도착해 그로부터 삼 개월간이나 부모 품에서 그저 멍하니 폐인 같은 생활을 하다가, 머지않아 학생 시절부터 알던 문학 친구인 도쿄의 야나기타(柳田)란 꽤 야무지고 약삭빠른 인물이, “돈은 있어. 신잡지를 발행할 생각이야. 너도 도와.” 하는 뜻을 속달로 부쳐서 저도 뭔가 번뜩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상경해 이“신현실”이라는 문예잡지의, 음, 편집부 차장이라고 하는 직함으로 삼 년이나 마치 반 미친 사람처럼 전후 저널리즘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그 종전 직후에 제가 도치기에 있는 생가에서 도쿄로 나왔을 때에는 도쿄의 정경, 보는 것, 듣는 것 전부 슬픈 것들뿐이었습니다만, 적어도 저 개인에게는 통쾌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묘한 기쁨을 느낀 일은 시장에 물자가 잔뜩 나오고, 또 먹고 마시는 포장마차, 작은 음식점이 거리 곳곳에 시끌벅적하게 넘치도록 늘어서서 이상하게 활기를 띠었습니다. 애초에 저에게는 시장에 상품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그걸 구매할 능력이 없어 그저 구경할 뿐이었지만 그것도 뭔가 신이 나는 기분이 들었고, 또 가끔 친구들과 포장마차의 노렌(暖簾)에 고개를 들이밀어 꼬치구이를 뜯거나, 소주를 마시거나, 큰 소리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논하거나 하면 확실히 해방된 자유를 누린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신바시(新橋)의 어느 포장마차 여주인이 저에게 반했습니다. 아니, 웃지 말아주세요. 정말 반했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니까 저도 쑥스러워 하지 않고 말한 겁니다. 말씀 드리는 게 늦었지만, 당시의 제 생활은 도쿄역 야에스구치(八重洲口) 부근에서 불에 탄 건물을 아파트 풍으로 개조한 이 층 단칸방에서 살아, 종전 후 첫 겨울의 찬바람은 그 귀신 집 같은 아파트 복도에 이상한 소리를 울리며 미친 듯이 불어댔는데, 오늘 밤도 또 저곳에 들어가 자야 하나 생각하면 허전해서 점점 소주 마시고 들어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데다, 친구나 작가와의 교제 등으로 남 못지않은 술꾼이 되었습니다. 긴자(銀座)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본교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갈 때면, 기차나 도보 어느 쪽이든 신바시에서 마시는 게 제일 편하니까 대체로 신바시 근처 포장마차에 들르곤 했습니다.

언제인가 야나기타란, 예의 야무지고, 스스로 자기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늘 적확히 감지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친구 겸 편집부장에게 이끌려서 신바시 바로 근처 강가에 서 있는 오뎅 집에 마시러 갔습니다. 그곳 또한 틀림없이 포장마차였습니다만 안이 깊어 토방에 걸상 몇 개가 늘어져 있는 까닭에 “순서대로 채워”앉으면 손님 열 명은 넉넉히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포장마차에 간 건 그날 밤이 처음이었습니다만 그 가게는 인근의 신문기자나 잡지기자, 작가, 만화가들의 사교장 같은 곳이어서,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이른바 그날그날의 "핫뉴스"를 교환하며 웃고 떠드는 곳이었습니다. 가게 이름이랄 것도 변변히 없어, 도요 공(公)이나 도요 짱 같이 그 가게 영감의 애칭 같은 게 이름이었습니다. 도요 공은 사십 가깝게 먹은 땅딸보에, 이마가 좁은 중대가리로, 눈이 나쁜 듯 항상 눈가가 빨갛게 슴벅거렸지만 위압감 있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여주인은 처음 저에게는 삼십 넘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원래 늙어 보이는 편이었습니다. 마르고 작은 몸집에 거무스름하게 빈틈없는 얼굴이었는데 말이 없는데다 그다지 웃지 않는, 수수하고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 음악가지요?”

내가 소주를 마시는 손놀림을 얼핏 보고, 여주인은 그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왔군!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용모가 떨어지는 여자는, 누군가 머리카락을 칭찬하면 자주, 체호프의 연극에도 나옵니다만, 저는 이렇게 말라깽이인데다 얼굴색도 검푸른 빛이라 용모나 풍채에 괜찮은 구석이 없는 것은, 저도 싫을 정도 그야말로 적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양손의 손가락은 묘하게 갸름하고 손톱도 발그스름해, 다른 곳은 칭찬할 데가 전혀 없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종종 여자들이 칭찬하며 악수를 청해온 적도 있습니다.

“왜?”

저는 알면서 미심쩍은 듯 물었습니다.

“예쁜 손. 피아노 치죠?”

역시 그랬습니다.

“뭐, 피아노?”

하고 아까 말한 야무진 친구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피아노 청소도 못할걸. 그 녀석 손은 그냥 마른 것뿐이야. 마른 남자가 음악가라면, 간디 옹은 오케스트라 지휘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옆에 있던 손님도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날 밤 여주인한테 들은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를 이상하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자 여럿한테서 칭찬을 듣고 또 악수까지 청해온 적까지 있었지만 그건 전부 그 자리의 그 순간만의 농담으로, 저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만, 그 도요 공 여주인의 무심한 빈말만은 묘하게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남자란 동물은 여자가 묘하게 진심 어린 한마디로 빈말을 하면 저처럼 못생긴 남자도 갑자기 어디선가 자신감이 솟아오른 나머지 여자에게 꼴불견일 정도로 뻔뻔스럽게 굴다가 남자도 여자도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게 세간에서 자주 눈에 띄는 비극의 경위라고 봅니다. 여자는 좀처럼 남자에게 빈말 같은 걸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우리의 경우 단 한 마디에서 시작된 손가락에 대한 빈말이 점점 비극으로 돌입했습니다. 사실 자부심이 없으면 연애든 뭐든 이뤄질 수 없습니다만, 저는 그때부터 매일 밤처럼 도요 공에 다니며, 낮에는 여주인과 함께 긴자를 걷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자부심이 늘어나기만 해, 주위에서 보면 한심한 말이나 늑대가 침을 흘리며 날뛰는 것처럼 불쾌할 뿐이었겠지요. 그러다 저는 어느 날 밤 도요 공에서 주정뱅이 작가인 가사이 겐이치로(笠井健一郎) 씨한테 욕을 먹었습니다.

가사이 씨는 제 고향 선배로, 죽은 형과 대학에서 동급생이었다고 하는데, 그 관계도 있어서 가사이 씨와 저는 그저 작가와 편집자 사이 이상 친하게 지내, 잡지에 가사이 씨의 원고를 받는 건 오로지 제 담당으로, 또 가사이 씨도 제 원고 의뢰는 비교적 기분 좋게 들어주었습니다.

그 가사이 씨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신바시에 있는 오뎅 집 도요 공에 들어왔을 때는 흠칫했습니다. 가사이 씨는 댁이 신주쿠(新宿) 근처라 그쪽으로는 매일 밤처럼 마시러 돌아다녔지만, 신바시 쪽까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밤은 무슨 모임에서 돌아가는 중인 듯 와후쿠(和服)에 하카마(袴)를 입고 있었습니다. 벌써 꽤 마신 듯 휘청휘청 제 옆으로 와 앉더니,

“들었어. 바보 자식이야, 넌.”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이었습니다.

“그거냐? 저 여자가, 그런 거야?”

오뎅을 삶는 여주인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하나도, 안 좋잖아. 이걸로 너란 남자도 끝이야. 원래, 자네, 남편 있는 여자하고, ……”

“그건,”

하고 도요 공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미 저희는 이혼했습니다. 저희는 성격이 안 맞습니다.”

하고 침착하게 말하고 가사이 씨 컵에 찰랑찰랑 소주를 붓습니다.

“아니, 그건 자네 부부의 일은 자네 부부가 아니면 모르지.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애초에, 관심 없어. 또 이토(伊藤)(내 이름)의 연애가 어떤 식으로 진전되는가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아. 음, 이 소주는 꽤 괜찮군. 자네, 자네, 한 잔 더 주게. 그리고 물도 주게. 이봐, 여주인 씨. 여기도 뭔가 먹을 걸 가져다주게. 그래도 나는 조금도 다른 부부의 이합집산이나 연애의 자초지종 따위에 무례하기 짝이 없게 흥미를 느낄 만큼 그렇게 품위 없는 남자만은 되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 아무 관심도 없어.”

가사이 씨는 이미 만취에 가깝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큰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해대고 있어, 다른 손님도 흥이 식은 얼굴로 턱을 괴거나 하며 멍하니 가사이 씨의 난폭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 이토를 향해 한 마디 말해두고 싶은 게 있네. 그걸 위해 오늘 밤 여기까지 들르게 된 거라고. 이봐, 이토 군. 자네와는 절교야. 하지만 이건 나의 의지가 아니네. 자네는 이 연애가 진전되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되겠지. 말하자면 서로 겸연쩍게 서먹서먹해져 자네는 나를 경원시하고 내 의지와 관계 없이도 자연히 절교하는 형태가 되겠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네. 그럼 실례하겠네. 멍청한 자식!”

휘청휘청대며 일어선 때,

“저기, 실례입니다만,”

하고 명함을 한 손에 든 채 가사이 씨에게 다가간 사람은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였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저희 이토 군이 지금까지 이런저런 신세를 져 한 번 저도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했었는데, ……그게…….”

가사이 씨는 야나기타에게서 명함을 받아 들고, 근시인 듯 눈에서 오 촌 정도 거리에 가져다 읽더니,

“그럼, 자네가 편집부장인가. 말하자면, 이토의 형뻘이란 말이군. 나는 자네가 부럽네. 왜, 이렇게 되기 전에 자네는 이토에게 충고하지 않은 건가. 돌팔이 부장이야, 넌. 도리어 이토를 부추긴 게 아닌가. 전혀, 그 빨강 넥타이가 맘에 들지 않는군.”

하지만 야나기타는 태연하게 웃으며,

“넥타이는 바로 바꾸겠습니다. 저도 이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별로다. 그걸 알면서 왜 이토한테 충고하지 않았던 건가. 충고를.”

“아니, 넥타이 말입니다.”

“넥타이 따위, 어찌되든 알 바 아니야. 네 옷차림이 어떻든 관심 없어. 문제는 내가 이토와 절교하는 일뿐이라고. 그것뿐이야. 그리고 더는 할 말은 없어. 실례하지. 모두 멍청이들뿐이다.”

내뱉듯이 말하고 셈도 치르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포장마차에서 나갔습니다. 야무진 야나기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쓴웃음 지으며,

“주정에는 당할 수 없군. 완력도 셀 것 같고 말이지. 형편이 안 좋군. 어쨌든, 이토. 선생님 뒤를 쫓아가서 사과하고 와주게. 나도 이번 자네의 연애는 조마조마했었는데, 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저놈이야말로 바보 같은 벽창호라 저렇게 앞으로 우리 잡지에 쓰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당할 수 없지. 가주게. 가서 그리고 음, 적당히 얼버무리고 사과하게나. 선생님 말씀 듣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하면서 말이지.”

저는 바로 가사이 씨를 쫓아 포장마차에서 나와, 그때, 돌아서 힐끗 도요 공의 여주인을 보니, 여주인도 얼굴을 숙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신바시 역에서 따라잡아 그렇게 말하자,

“왔는가.”

하고 예견하고 있었다는 말투로,

“한 잔 더, 마시자고.”

눈이 팔랑팔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잡아. 자동차를.”

“어디로?”

“신주쿠다.”

자동차 안에서 가사이 씨는,

“한 잔 마시고 휘청휘청. 두 잔 마시고 흔들흔들. 휘청휘청 흔들흔들.”

하고 염불 같은 절(節)을 낮게 거듭거듭 외더니, 그렇게 거의 자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화도 치밀고 불안한데다 슬퍼서 외투 주머니에서 꽁초를 더듬어 꺼내, 추위로 곱은 그 문제의 갸름한 손가락으로 집어 라이터 불을 붙이고, 창밖의 어둠 속에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를 봤습니다.

“이토는 올해 몇 살이나 됐는가?”

아주 푹 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니슈마와시(二重回し)[각주:1] 옷깃에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나이를 알렸습니다.

“젊군. 놀랐어. 그럼 뭐 무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는 조심하게. 나는 그 여자가 특별히 나쁘다고 하는 게 전혀 아니야. 그 사람 일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아.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나한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은 없어. 나는 제삼자야.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지. 그렇지만 왠지 너에게는 애석한 마음이 드는 거네. 애석해. 좋아하는 걸로 스스로 지옥행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봐. 지금 자네의 기분 같은 건, 나도 알고 있어. 그거야 너와 비교하면 백 배 이상의 여자가 반했으니 말이지. 정말이라네. 하지만 어느 때고 지옥 같은 기억이었지. 모르겠네, 여자의 마음이. 잘 모르겠는 거야. 나는 말이지, 인류, 원류(猿類) 따위의 동물학상의 구별은 틀렸다고 생각하네. 남류(男類), 여류(女類), 원류(猿類)라고 해야지. 종족이 완전히 다른 거야. 몸 구조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고방식도, 대화의 의미도, 냄새, 소리, 풍경에 대해 반응하는 법도 통 다르지. 여자 몸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남류는 이해하지 못할 불가사의한 세계에 여자라는 동물은 태연히 살고 있어. 자네, 한 번 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 역 플랫폼에 서서 멀찍이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살짝 이삼 촌(寸) 허리를 굽혀 한 번 더 바라보면 그 전방의 똑같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여. 이삼 촌 키가 크냐 작냐에 따라 그만큼 인생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걸세. 하물며 자네, 남자 몸과 여자 몸의 그 엄청난 차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별세계에 사는 거야. 우리에게는 파랗게 보이는 것이, 여자한테는 빨갛게 보일지도 몰라. 그렇게 빨간색을 파란색이라고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그렇게 말하니 우리 남류는 여류와 서로 이해한다고 쉽게 우쭐거리곤 하지만 터무니없는 지레짐작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소주를 한 되 마시고 흔들흔들하는, 딱 그 정도 기분으로 이 여류라고 하는 생물은 진지한 표정으로 장을 보든 뭘 하고는 또 남류를 비평하지 않을까 싶네. 소주 한 되, 분명히 그 정도야. 맨정신으로 인사불성으로 그렇게 옆집 부인과 우물가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니 말이지. 실로 불가사의해. 분명히 여류들끼리의 대화에는 우리 남류에게 도저히 알 수 없는, 아주 다른 의미가 담겨있어. 우리 남류가 들으면 대충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여류끼리의 대화이니 말이지. 인사불성은커녕, 마치 발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실로 수수께끼야!”

이 가사이 겐이치로라는 작가는 젊었을 무렵 애인에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차여 그 타격이, 그야말로 미간에 깊은 상처가 될 정도로 강한 듯, 그 이후 새장가도 들지 않고, 술만 마시며 여자를 아예 신용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자를 비웃는 듯한 소설만 써서, 그래도 독서계 일부에서는 가사이 씨의 그런 십 년이 하루 같은 독설을 꽤 통쾌하게 여겨 가사이 씨도 신명이 나, 지금에는 가사이 씨의 여자에 대한 욕설은 말하자면 그의 장기같이 되어 있었다.

“응? 알겠나? 여류와 남류가 이해한다는 건, 그건, 무리라는 말이지. 그런 어설픈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는 여기서 예언해도 좋아. 자네는 그 여자한테 배신당할 거네. 틀림없이 배신당해. 아니, 그 여자 하나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 한 명의 개인적인 사정 따위 난 모르네. 나는 그저 동물학 쪽에서 보는 여류의 일반적인 개론을 기술한 것뿐이야. 여류는 돈을 좋아하니까 말이지. 죽은 이의 이마에 세모난 종이가 있어, 거기에 “사”란 글자가 쓰여 있는 것처럼 여류의 이마에는 예외 없이, “돈”이란 글자가 쓰인 세모난 종이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걸세.”

“죽는다고 하네요. 헤어지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뭔지 몰라도 약을 갖고 다닙니다. 그걸 먹고 죽는 다네요. 태어나서 첫사랑이라고 합니다.”

“넌 머리가 이상해 진 게 아닌가, 멍청한 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멍청한 놈. 나는 단념했다. 여기는, 어디냐. 요쓰야(四谷)인가. 요쓰야에서 돌아가라, 멍청한 놈. 잘도 내 앞에서 그런 어이없는 말을 뻔뻔스럽게도 하는구나. 지금 죽는 건, 너겠지. 여자가, 흠, 무슨 말을 하든, 결국은 돈이야. 기사 양반, 요쓰야에서 바보가 한 명 내리오.”

여자 마음은 공연히 시험해 볼 게 아닙니다. 저는 가사이 씨한테 하도 거칠 게 매도당해서 분한 마음에 그 울분을 애인에게 풀어, 그 다음 날, 여주인이 회사로 주뼛주뼛 찾아오자 냉담하게, 전날 밤의 굴욕을 숨김없이, 약간의 과장도 없이 들려주고는 나도 남자로서 그렇게 욕을 먹었으니 이제 더 고집을 피운들 나는 너와 헤어져서 저 주정뱅이 가사이 씨를 다시 보게 해야 한다, 하고 실은, 헤어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는데, 한 편으로는 또, 이참에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럴듯하게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그날 밤 자살했습니다. 약을 먹고 수로에 몸을 던졌습니다. 뒤처리는 도요 공이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공손하게 해줬습니다. 그 이래로 나와 도요 공은 애처로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주인의 자살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초봄의 어느 날 저녁, 가사이 씨는 그날 밤 이래 처음으로 도요 공의 포장마차에 언제나처럼 만취한 채 나타났습니다.

“내가 저번 달 이 가게에서 계산을 했는지, 안 했는지, ……”

그다지 기운이 없는 말투였습니다.

“계산은 필요 없습니다. 나가 주시죠.”

하고 도요 공은 평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습니다.

“뭐야, 화내고 있네. 남류, 여류, 원류가 신경 쓰였나 봐? 그렇지만 정말이라면 어쩔 수 없지.”

찰싹하고 시원한 소리가 났습니다. 도요 공이 가사이 씨의 뺨을 친 겁니다. 이어서 제가 발로 차 쓰러뜨렸습니다. 가사이 씨는 네발로 기며,

“멍청한 놈, 폭력은 쓰지 마. 남류, 여류, 원류, 틀림없이 옳아. 틀리지 않았어.”

이미 반쯤 자는 만큼 취해 있었습니다. 반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가 딱하고 가사이 씨의 머리를 치며,

“눈을 떠. 이 동물박사야. 네발로 기어나가라.”

하고 말하고, 또 딱 가사이 씨의 머리를 때렸지만 가사이 씨는 아무런 저항도 않은 채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남류, 여류, 원류, 아니, 여류, 남류, 원류의 순인가. 아니, 원류, 남류, 여류일까? 아니, 아니. 원류, 여류, 남류의 순인가. 아, 아프군. 폭력은 안 돼. 원류, 여류, 남류인가. 부조금 천 엔 여기 두고 가네.”


  1. 인버네스를 일본풍으로 바꾼 옷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20. 22:30 일본괴담

黄金の枕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17_13101.html


신도탁(辛道度)은 방랑길을 계속하고 있었다. 옷은 얇고 호주머니는 비어, 먹을 것을 주는 동정심 많은 사람이 없을 때는 물로 굶주림을 견디고, 잠자리 빌릴 곳이 없으면 나뭇잎을 깔고 노숙했다. 그렇게 궁핍한 삶이었지만 그는 결코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행복이 보였다. 요컨대 그는 젊었다.

옹주성(雍州城) 서문에서 오 리 정도 북쪽으로 갔다. 울적한 저녁이었다. 도탁은 그날도 아침부터 물 외에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못해 뭔가 줄 것 같은 부잣집을 찾아 걸었다. 밭 가운데나 숲 그늘에 닿자 민가 지붕이 조금씩 보였지만 들어가 볼만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을 매일 같이 겪은 그는 그다지 당황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았다. 조만간 어딘가 좋은 곳을 찾겠지 하는 마음에 태연한 얼굴로 느릿느릿 걸었다.

작은 시내의 흙다리를 건너고 단풍이 든 대지 아래쪽을 돌자 저택 구조의 큰 건물이 보였다.

“겨우 좋은 곳을 찾았군.”

도탁은 그 문 쪽으로 갔다. 출입구에 하녀 같은 여자가 서 있었다. 마치 그가 오는 걸 기다린 것처럼.

도탁은 여자 앞으로 갔다. 여자는 그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는 농서(隴西)의 서생, 도탁이란 사람입니다만 돈이 떨어져 식사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주인께 식사를 하게 해주십사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만 여쭤봐 주실 수 없으실지요.”

“아, 식사를. 그럼 잠시 기다려 주세요. 가져다 드릴 테니.”

여자는 선선히 말하고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탁은 돌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이윽고 여자가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하시면 오늘 밤 묵고 가셔도 좋다고 말씀하셨으니, 들어오시지요. 여기 주인은 마님이세요.”

도탁은 감사 인사를 하며 그 뒤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빨갛게 칠한 기둥, 녹색의 벽 등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님께서는 여기 계셔요.”

여자는 문을 열었다. 도탁은 멋쩍어 주저주저하며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는 호리호리한 몸에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가 걸상에 앉아있었다. 방 구석구석에는 운모로 된 칸막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도탁은 멀리서 인사했다.

“이 분이 방금 부탁 드렸던 서생 님이세요.”

여자는 이렇게 주부에게 소개했다.

“자, 들어오세요. 이 집에는 저 혼자 있으니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거기에 앉아 주세요. 곧 뭔가 만들어 오게 할 테니.”

주부는 잠시 허리를 들어 자기 앞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저는 농서에서 온 사람으로, 신도탁이라고 합니다. 유학하고 있습니다만 노자가 부족해 여러분께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도탁은 눈부신 듯한 얼굴로 섰다.

“그건 이미 이 아이한테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며 주부는 여자 쪽을 힐끗 봤다.

“자, 거기에 앉아 주세요.”

도탁은 겨우 주부 앞에 가 앉았다. 그걸 본 여자는 나갔다.

“저도 혼자라, 쓸쓸해하던 참이었어요. 귀찮으시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도탁은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이 들어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했지만 차츰 편안해졌다. 주부는 비쳐 보일 듯 새하얀 얼굴에 어렴풋이 볼연지를 발랐다.

“그렇게 돌아 다니시니 재미있는 일도 있겠지요.”

예쁜 주부는 조금의 격의도 없이 도탁의 말상대를 해주었다. 부드러운 부인의 말이 젊은 남자의 귀에 기분 좋게 울렸다.

“저처럼 불행한 사람은 또 없을 거예요.”

주부는 이런 말도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여자 둘이 상을 들고 왔다. 주부는 방 동쪽에 있는 탁자 위에 그걸 놓았다.

“변변치 않지만 들어 주세요.”

주부는 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탁은 친척집 식탁에 앉은 것처럼 사양 않고 그곳에 앉았다. 향기 좋은 술도 딸려 있었다.

도탁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두 여자가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도탁은 이제 완전 유유자적해서 타고난 남자다움을 보여주었다.

도탁은 주부와 나란히 앉았다. 등잔 빛이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도탁은 넋을 잃었다.

“그대는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시나요?”

도탁은 주부의 태생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저는 아직 그대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진(秦) 민 왕(閔王)의 딸로 이 조(曹)나라에 오게 된 후 이십삼 년간 혼자서 지낸 자예요.”

도탁은 그런 귀족과 동석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대가 싫지 않다면 부부가 되어주세요.”

“그렇지만 그대는 고귀한 신분이 아닙니까?”

주부의 아름다운 몸이 도탁에게 기댔다.

주부와 도탁은 푸른 장막 그늘이 된 침상 위에 나란히 있었다.

“이렇게 당신과 삼일 밤낮 있었지만 이 이상 같이 있으면 재앙이 닥쳐요. 이제 부디 돌아가 주세요.”

주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별에 대한 저의 진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드릴 물건이 있어요.”

주부는 침상 뒤 작은 상자에 손을 넣어 그 안에서 황금 베개를 꺼냈다.

“이걸 드릴게요.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말한 주부는 다시 울었다.

도탁은 처음에 신세를 진 여자의 배웅을 받아 문을 나섰다. 열 발자국 걷더니 뒤로 돌았다. 저택이 사라지고, 가시나무가 무성한 고분(古塚)이 있었다. 도탁은 놀라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달리다 정신이 들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황금 베개는 여전히 있었다.

도탁은 진 나라에 갔다. 궁핍한 끝에 그는 황금 베개를 팔아 돈을 얻고자 했다. 도탁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교역을 하고 있었다. 도탁은 돈이 있을 법한 사람을 찾아 그 베개를 꺼내 보였다.

“이걸 사주지 않겠는가.”

가난한 서생이 가지고 있기에 어울리지 않는 황금 베개였다. 몇 명에게 보여도 사고자 하는 이가 없었다.

“이걸 사지 않겠는가. 싸게 팔아도 좋네.”

도탁은 다시 지나가다 만난 남자에게 그 베개를 보였다.

소가 끄는 아름다운 마차가 반대편에서 왔다. 마차 주위에는 남자, 여자 수행원이 붙어 있었다. 마차에는 진의 왕비가 타고 있었다. 왕비는 도탁이 손에 든 황금 베개를 살펴 보았다.

“저 베개를 가진 남자를 이곳으로 부르도록.”

수행원 하나가 도탁 옆으로 왔다.

“황후 님의 부르심이다, 이쪽으로 오도록.”

도탁은 수행을 따라 마차 옆에 갔다. 마차는 서 있었다.

“그 베개를 이쪽으로.”

수행원이 도탁의 손에서 베개를 들어 마차 창문가에 내밀었다. 베개는 왕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베개를 어떻게 해서 그대가 가진 것이냐.”

도탁은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베개를 손에 넣은 경위를 말했다. 말하는 동안 왕비는 울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히 내 딸이 갖고 있던 것이다. 그럼 여자에게서 받은 것이냐.”

왕비는 하염없이 울었다.

도탁은 왕비의 마차를 따라 진 왕궁에 갔다. 왕궁에서는 도탁의 말에 의심을 품고 사람을 시켜 무덤을 파헤쳐 관을 열어 조사하게 했다. 이십삼 년 지난 여자의 시체는 썩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시체와 함께 넣은 물건을 대조했다. 다른 물건은 전부 그대로였지만 황금 베개만 없었다.

다음으로 죽은 이의 몸을 조사했다. 거기에는 마치 정교한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진 왕비는 도탁의 사정을 양해했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실된 사위다. 딸 또한 신이다. 죽고 이십삼 년이나 지나 산 인간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비는 도탁을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삼아 금과 비단, 거마를 내리고 본국인 농서로 돌려보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prev 1 2 3 4 5 ··· 9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