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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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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00:34 일본괴담

怪譚小説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951_16439.html


나는 글을 쓸 때 흥미로운 구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줄거리가 정돈되지 않을 때면 육조소설(六朝小説)을 꺼내 읽는다. 진당(晋唐)소설 육십 종으로 당시의 단편 육십 종을 엮어낸 총서인데 역사의 일화, 괴담, 기담이 있어 모두 나름대로 재미있다. 이즈미 교카(泉鏡花)의 "고야성(高野聖)"은 그 중 환이지(幻異志)가 실려있는 "판교삼낭자(板橋三娘子)"에서 나온 것이다. 판교에 삼낭자라는 여관을 하는 노파[각주:1]가 있어, 나그네에게 기이한 메밀떡을 먹여 당나귀로 만들어 돈을 벌었는데 조계화(趙季和)란 남자가 그걸 알고는 거꾸로 그 떡을 노파에게 먹여 당나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고야성에서는 환술로 나그네를 말로 만들거나 원숭이로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서 대체적 구상에서는 흔적을 못 지웠지만 그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독립된 창작으로, 또 굴지의 명작이기도 해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가 서호가화(西湖佳話)에 있는 뇌봉괴적(雷峯怪蹟)을 그대로 번안한 음란한 사성(蛇性の婬)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 그 총서 중 "유괴록(幽怪録)"에는 이와미 주타로(岩見重太郎)의 붉은 개코원숭이 퇴치(緋狒退治)라고 하는 인신 공양 설화가 있다. 당(唐)의 곽원진(郭元振)이란 사람이 밤에 여행하고 있었는데 등불이 화려한 집이 있어 묵어가려고 가보니 십칠팔 세 되는 소녀가 한 명 울며 쓰러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신(魔神)의 산제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곽이 소녀를 달래고 기다리니 과연 가마에 타고 여러 명의 종자를 거느린 남자가 왔다. 곽은 희귀한 술안주를 진상한다고 사슴의 육포를 바치는 척하고 그 손을 베어 다음 날 핏자국을 쫒아가 보니 커다란 멧돼지가 있으므로 죽여서 먹었다. 이 유괴록 이야기는 명(明)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 중 신양동(申陽洞) 기록이 바탕이 되어있다.

또 그 총서의 "속유괴록(続幽怪録)"에 있는 정혼점(定婚店) 이야기는 붉은 줄의 인연(赤縄の縁) 전설이다. 위고(韋固)라는 사람이 결혼 일로 다른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아침 일찍 용흥사(竜興寺)라는 절에 갔더니 노인 한 명이 계단 위에서 주머니 속에 든 걸 읽고 있었다. 위고가 그게 뭐냐고 묻자 남녀 결혼에 대해 쓰여 있는 것으로, 주머니 속에 든 붉은 줄로 남과 여의 영혼을 묶으면 어떻게든 부부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묻자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며 그의 아내가 될 여자는 올해 세 살로 열일곱이 되지 않으면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지금 거지 같은 야채상 할머니에게 안겨서 매일 시장에 온다고 했다. 이고는 화가 나서 하인에게 명령해 죽이라고 했다. 하인은 아이 이마에 칼로 상처만 내고 도망쳤는데 십사 년 후 아내를 맞고 보니 그 아내는 항상 이마에 꽃비녀를 꽂았다. 왜 그러냐고 묻자 세 살 때 흉한에게 찔려서 상처가 났다고 했다.

요컨대 육조소설은 중국문학의 원천으로 그걸 바탕으로 많은 소설, 희곡, 시가 나왔는데 그 흐름을 보면 "소신기(捜神記)", "전등신화(剪燈新話)", "서호가화(西湖佳話)", "요재지이(聊斎志異)"라고 하는 괴담소설이 되었다. 아키나리(秋成)의 음란한 사성(蛇性の婬)이 "서호가화"의 번안이라는 건 이미 말했는데, 엔조(円朝)의 괴담으로 유명한 "모단등롱(牡丹燈籠)"은 "전등신화"에 있는 모단등기(牡丹燈記)에서 나온 것으로 이 모단등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도 여럿 만들어졌다.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의 괴담에 나오는 귀없는 법사 이야기(耳なし法師の話) 또한 모단등기의 변형이다.

고이즈미 야쿠모의 괴담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오소리 괴담이다. 상인이 기(紀)나라 국경을 지나는데 소녀가 울고 있었다. 곁에 다가가 달래주려고 하자 소녀가 고개를 들었는데 눈과 코가 없는 놋페라보였다.

이 놋페라보 이야기는 혼죠(本所) 7대 불가사의 오이테케보리(置いてけ堀)와 비슷하다. 내 고향에도 이 계통의 이야기가 있다. 한쪽에 산이 있고 또 한쪽에는 밭과 소나무숲이 있는 인가(人家)고 뭐고 없는 곳에, 동쪽에서 오면 산 입구에 샤미센 소나무(三味線松)라고 덴구(天狗)가 샤미센을 켰다는 전설이 있는 소나무가 있어 나 또한 어릴 적 아주 무서워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여자 한 명이 그 샤미센 소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바로 앞에 여자가 걷고 있었다. 마을 여자는 동행이 생겨 반가운 마음에 옆에 다가가서 사투리로,

"저기, 같이 가시면 어떨까요. 이상한 게 나오면 든든하잖아요."

하자 앞에 가던 여자는,

"어머, 저 말인가요."

하고 돌아보는데, 여자는 눈과 코가 없는 놋페라보였다.



  1. 여기서 원문은 노파이지만 판교삼낭자 원작에서 삼낭자는 30여 세로 나온다.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