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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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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22:51 일본괴담

狸と俳人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2276_16444.html


안에이(安永) 연간(年間)의 일이다. 이세타이뵤(伊勢大廟)[각주:1]의 나이구료(内宮領)에서 게쿠료(外宮領)에 이르는 뒷길에 감으로 유명한 렌다이지(蓮台寺)라고 하는 마을이 있었는데, 사와다 쇼조(澤田庄造)라는 사람이 그곳에 살았다.

쇼조는 다른 이름은 나가요(永世), 호는 로쿠메이(鹿鳴)라고 하였는데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에 능했다. 특히 하이쿠는 그 무렵 꽤 유명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 사이에서는 별난 구석이 있는 하이쿠 시인으로 통했다.

쇼조는 번잡을 싫어해 장가도 들지 않고 때때로 찾아오는 시우(詩友) 외에는 이렇다 할 교제도 없이 혼자 방에 칩거하며 시를 짓는 것만을 즐겼다.

어느 늦가을 저녁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떫은 차(渋茶)를 홀짝거리며 시 짓기에 골몰하던 쇼조가 문득 돌아보니 창문 창호지에 이상한 그림자가 비쳤다. 쇼조는 수상쩍게 여겨 통로와 창문의 창호지에 손을 댔다가 누군가 있으면 창피해 할 것 같아 손을 떼고 뜰 앞으로 돌아나가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는 늙은 너구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너구리는 쇼조의 모습을 보고도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쇼조는 흥미롭다고 생각해 집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와 던져 주었다. 그러자 너구리는 그걸 맛있게 먹고는 가버렸다.

그 다음 날 저녁에 쇼조가 책을 읽고 있자 또 창밖에 너구리가 와서는 웅크렸다. 쇼조가 또 먹을 것을 들고 나와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자 너구리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너구리는 그 다음 날 밤에도 왔다. 기다리던 쇼조는 손님방으로 불러들였다. 너구리는 처음 접하는 문에 주저하는 모습이었지만 얼마 안 있어 꼬리를 흔들며 들어왔다. 그리고 책을 읽는 쇼조 옆에 앉아 혼자서 잠시 놀다 쓸쓸한 듯이 돌아갔다.

그로부터 너구리는 매일 밤 같이 찾아왔다. 쇼조는 쓸쓸히 홀로 생활하던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너구리는 쇼조를 잘 따라 돌아가라고 할 때까지 놀다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밤 평소와 같이 쇼조 옆에서 노는 사이 집 밖에 큰 눈이 내렸다. 쇼조는 눈이 쌓인 걸 보고는 너구리를 내보내는 게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음, 너구리 공(公), 오늘 밤은 눈이 오니 쉬었다 가게나."

하고 말하자 너구리도 꼬리는 흔들며 기뻐했다. 그날 밤 너구리는 쇼조 이불 속에 들어와 잤는데, 그로부터 너구리는 쇼조의 허락 하에 자고 가게 되었다.

쇼조가 너구리를 귀여워한다는 소문이 이윽고 마을에 퍼졌다. 마을 사람은 가끔 동틀 녘쯤에 쇼조의 집에서 나오는 너구리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서로 조심해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마을 아이들도,

"선생님 너구리를 괴롭히면 안 돼."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조가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였지만 그게 악화되어 중태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쇼조를 문병했는데, 그때마다 쇼조의 머리맡을 지키는 갸륵한 너구리의 모습을 보았다. 쇼조는 자신의 병이 깊어 오래가지 못할 것을 깨닫고, 어느 날 너구리에게 말했다.

"자네와도 오랫동안 친분을 나눴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날이 왔네. 내가 가면 이제 사람 근처에 가지 않도록 하게나.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논밭은 망치지 않도록 하고. 자, 이제 됐으니 돌아가게."

쇼조의 말이 끝나자 너구리는 초연(愀然)히 나갔다. 그날 밤, 쇼조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의 간호 아래 숨을 거뒀다. 안세이(安永) 칠 년 유월 이십오 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수일 후였다. 하루 일을 마친 마을 사람 한 명이 귀가를 서두르며 쇼조의 무덤 옆 근처에 막 다다랐을 때 무덤 앞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아름다운 기모노를 입고 풀꽃 한 다발을 들었다. 자세히 보자 여자는 우는 것처럼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이 부근에선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마을 사람은 누굴까 싶어 조심스레 그 옆에 갔다.

"여보시오."

마을 사람이 이렇게 말을 거는 순간, 여자의 모습은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옆에는 여자가 손에 들었던 풀꽃이 떨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듣고는 분명 그 너구리일 거라 하며 그 갸륵한 행동과 마음에 감동을 받아 너구리를 절대로 해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후 그 마을에서는 지금도 너구리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1. 일본 황실의 종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별칭.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