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漬三略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562/files/52453_49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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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키 마고헤이지(柾木孫平治) 비망록
사람들은 당시의 쇼군이었던 태합(太閤)의 집안 내력을 알고 싶어했다. 하시바 지쿠젠노카미 히데요시(羽柴筑前守秀吉)이었을 쯤부터는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작은 원숭이(小猿)나 히요시(日吉)라고 불리며 제대로 된 성(姓)마저 없었을 무렵의 내력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태합은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말한 예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구태어 묻는 이가 있으면,
「넓은 하늘(大空)에 집안 내력은 없다」
하고 더할 말이 없다는 얼굴을 했다.
또 그 위엄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례하게 묻는 이도 없었다.
어렴풋이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히쓰(祐筆)나 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徳) 등도 부득이 내력을 언급할 때는,
히데요시 공(公) 가라사대,
나 비슈 1의 민간에서 태어나서 풀 베는 법은 알았지만 붓 잡는 법 깨치지 못하고, 다만 우리 어머니는 대궐(内裏) 수라간(御厨子所) 하녀이셨지만 어느날 밤 꿈에 수 천만의 오하라이바코(御祓箱)가 이세(伊勢)에서 하리마(播磨)를 향해 빈틈도 없이 하늘 위를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내를 잉태하셨다―― 2
하고 적고는 했다.
그런 것에서 히데요시의 모친이 모치하기(持萩) 쥬나곤(中納言)의 딸이었다든가, 그는 시골 출신의 쥬나곤이었던 야스히라(保広)의 서자(落胤)라든가, 오다(織田)가의 하급 무사(被官)의 아시가루(足軽)였다 귀농한 농민 야에몬(弥右衛門)의 자식이었다고 하는 게 진실인가, 소문이나 험담도 가지각색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태합은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는 말한 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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