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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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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1. 15:24 일본문학

女類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035/files/274_20183.html

저(26세)는 여자를 한 명 죽인 적이 있습니다. 실은 어이없이 죽여버렸습니다.

종전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패전 전에는 징병으로 이즈(伊豆)의 오시마(大島)에 끌려가서 매일매일 땅굴공사를 강제로 하게 되어, 원래부터 이렇게 삐쩍 마른 몸이라, 정말이지 지금도 죽고 싶을 정도로 고생했습니다. 종전이 되고는 뭐가 뭔지 그저 기진맥진해 과장하자면 거의 기듯이 도치기 현(栃木県)에 있는 생가에 도착해 그로부터 삼 개월간이나 부모 품에서 그저 멍하니 폐인 같은 생활을 하다가, 머지않아 학생 시절부터 알던 문학 친구인 도쿄의 야나기타(柳田)란 꽤 야무지고 약삭빠른 인물이, “돈은 있어. 신잡지를 발행할 생각이야. 너도 도와.” 하는 뜻을 속달로 부쳐서 저도 뭔가 번뜩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상경해 이“신현실”이라는 문예잡지의, 음, 편집부 차장이라고 하는 직함으로 삼 년이나 마치 반 미친 사람처럼 전후 저널리즘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그 종전 직후에 제가 도치기에 있는 생가에서 도쿄로 나왔을 때에는 도쿄의 정경, 보는 것, 듣는 것 전부 슬픈 것들뿐이었습니다만, 적어도 저 개인에게는 통쾌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묘한 기쁨을 느낀 일은 시장에 물자가 잔뜩 나오고, 또 먹고 마시는 포장마차, 작은 음식점이 거리 곳곳에 시끌벅적하게 넘치도록 늘어서서 이상하게 활기를 띠었습니다. 애초에 저에게는 시장에 상품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그걸 구매할 능력이 없어 그저 구경할 뿐이었지만 그것도 뭔가 신이 나는 기분이 들었고, 또 가끔 친구들과 포장마차의 노렌(暖簾)에 고개를 들이밀어 꼬치구이를 뜯거나, 소주를 마시거나, 큰 소리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논하거나 하면 확실히 해방된 자유를 누린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신바시(新橋)의 어느 포장마차 여주인이 저에게 반했습니다. 아니, 웃지 말아주세요. 정말 반했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니까 저도 쑥스러워 하지 않고 말한 겁니다. 말씀 드리는 게 늦었지만, 당시의 제 생활은 도쿄역 야에스구치(八重洲口) 부근에서 불에 탄 건물을 아파트 풍으로 개조한 이 층 단칸방에서 살아, 종전 후 첫 겨울의 찬바람은 그 귀신 집 같은 아파트 복도에 이상한 소리를 울리며 미친 듯이 불어댔는데, 오늘 밤도 또 저곳에 들어가 자야 하나 생각하면 허전해서 점점 소주 마시고 들어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데다, 친구나 작가와의 교제 등으로 남 못지않은 술꾼이 되었습니다. 긴자(銀座)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본교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갈 때면, 기차나 도보 어느 쪽이든 신바시에서 마시는 게 제일 편하니까 대체로 신바시 근처 포장마차에 들르곤 했습니다.

언제인가 야나기타란, 예의 야무지고, 스스로 자기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늘 적확히 감지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친구 겸 편집부장에게 이끌려서 신바시 바로 근처 강가에 서 있는 오뎅 집에 마시러 갔습니다. 그곳 또한 틀림없이 포장마차였습니다만 안이 깊어 토방에 걸상 몇 개가 늘어져 있는 까닭에 “순서대로 채워”앉으면 손님 열 명은 넉넉히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포장마차에 간 건 그날 밤이 처음이었습니다만 그 가게는 인근의 신문기자나 잡지기자, 작가, 만화가들의 사교장 같은 곳이어서,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이른바 그날그날의 "핫뉴스"를 교환하며 웃고 떠드는 곳이었습니다. 가게 이름이랄 것도 변변히 없어, 도요 공(公)이나 도요 짱 같이 그 가게 영감의 애칭 같은 게 이름이었습니다. 도요 공은 사십 가깝게 먹은 땅딸보에, 이마가 좁은 중대가리로, 눈이 나쁜 듯 항상 눈가가 빨갛게 슴벅거렸지만 위압감 있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여주인은 처음 저에게는 삼십 넘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원래 늙어 보이는 편이었습니다. 마르고 작은 몸집에 거무스름하게 빈틈없는 얼굴이었는데 말이 없는데다 그다지 웃지 않는, 수수하고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 음악가지요?”

내가 소주를 마시는 손놀림을 얼핏 보고, 여주인은 그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왔군!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용모가 떨어지는 여자는, 누군가 머리카락을 칭찬하면 자주, 체호프의 연극에도 나옵니다만, 저는 이렇게 말라깽이인데다 얼굴색도 검푸른 빛이라 용모나 풍채에 괜찮은 구석이 없는 것은, 저도 싫을 정도 그야말로 적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양손의 손가락은 묘하게 갸름하고 손톱도 발그스름해, 다른 곳은 칭찬할 데가 전혀 없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종종 여자들이 칭찬하며 악수를 청해온 적도 있습니다.

“왜?”

저는 알면서 미심쩍은 듯 물었습니다.

“예쁜 손. 피아노 치죠?”

역시 그랬습니다.

“뭐, 피아노?”

하고 아까 말한 야무진 친구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피아노 청소도 못할걸. 그 녀석 손은 그냥 마른 것뿐이야. 마른 남자가 음악가라면, 간디 옹은 오케스트라 지휘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옆에 있던 손님도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날 밤 여주인한테 들은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를 이상하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자 여럿한테서 칭찬을 듣고 또 악수까지 청해온 적까지 있었지만 그건 전부 그 자리의 그 순간만의 농담으로, 저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만, 그 도요 공 여주인의 무심한 빈말만은 묘하게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남자란 동물은 여자가 묘하게 진심 어린 한마디로 빈말을 하면 저처럼 못생긴 남자도 갑자기 어디선가 자신감이 솟아오른 나머지 여자에게 꼴불견일 정도로 뻔뻔스럽게 굴다가 남자도 여자도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게 세간에서 자주 눈에 띄는 비극의 경위라고 봅니다. 여자는 좀처럼 남자에게 빈말 같은 걸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우리의 경우 단 한 마디에서 시작된 손가락에 대한 빈말이 점점 비극으로 돌입했습니다. 사실 자부심이 없으면 연애든 뭐든 이뤄질 수 없습니다만, 저는 그때부터 매일 밤처럼 도요 공에 다니며, 낮에는 여주인과 함께 긴자를 걷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자부심이 늘어나기만 해, 주위에서 보면 한심한 말이나 늑대가 침을 흘리며 날뛰는 것처럼 불쾌할 뿐이었겠지요. 그러다 저는 어느 날 밤 도요 공에서 주정뱅이 작가인 가사이 겐이치로(笠井健一郎) 씨한테 욕을 먹었습니다.

가사이 씨는 제 고향 선배로, 죽은 형과 대학에서 동급생이었다고 하는데, 그 관계도 있어서 가사이 씨와 저는 그저 작가와 편집자 사이 이상 친하게 지내, 잡지에 가사이 씨의 원고를 받는 건 오로지 제 담당으로, 또 가사이 씨도 제 원고 의뢰는 비교적 기분 좋게 들어주었습니다.

그 가사이 씨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신바시에 있는 오뎅 집 도요 공에 들어왔을 때는 흠칫했습니다. 가사이 씨는 댁이 신주쿠(新宿) 근처라 그쪽으로는 매일 밤처럼 마시러 돌아다녔지만, 신바시 쪽까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밤은 무슨 모임에서 돌아가는 중인 듯 와후쿠(和服)에 하카마(袴)를 입고 있었습니다. 벌써 꽤 마신 듯 휘청휘청 제 옆으로 와 앉더니,

“들었어. 바보 자식이야, 넌.”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이었습니다.

“그거냐? 저 여자가, 그런 거야?”

오뎅을 삶는 여주인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하나도, 안 좋잖아. 이걸로 너란 남자도 끝이야. 원래, 자네, 남편 있는 여자하고, ……”

“그건,”

하고 도요 공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미 저희는 이혼했습니다. 저희는 성격이 안 맞습니다.”

하고 침착하게 말하고 가사이 씨 컵에 찰랑찰랑 소주를 붓습니다.

“아니, 그건 자네 부부의 일은 자네 부부가 아니면 모르지.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애초에, 관심 없어. 또 이토(伊藤)(내 이름)의 연애가 어떤 식으로 진전되는가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아. 음, 이 소주는 꽤 괜찮군. 자네, 자네, 한 잔 더 주게. 그리고 물도 주게. 이봐, 여주인 씨. 여기도 뭔가 먹을 걸 가져다주게. 그래도 나는 조금도 다른 부부의 이합집산이나 연애의 자초지종 따위에 무례하기 짝이 없게 흥미를 느낄 만큼 그렇게 품위 없는 남자만은 되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 아무 관심도 없어.”

가사이 씨는 이미 만취에 가깝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큰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해대고 있어, 다른 손님도 흥이 식은 얼굴로 턱을 괴거나 하며 멍하니 가사이 씨의 난폭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 이토를 향해 한 마디 말해두고 싶은 게 있네. 그걸 위해 오늘 밤 여기까지 들르게 된 거라고. 이봐, 이토 군. 자네와는 절교야. 하지만 이건 나의 의지가 아니네. 자네는 이 연애가 진전되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되겠지. 말하자면 서로 겸연쩍게 서먹서먹해져 자네는 나를 경원시하고 내 의지와 관계 없이도 자연히 절교하는 형태가 되겠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네. 그럼 실례하겠네. 멍청한 자식!”

휘청휘청대며 일어선 때,

“저기, 실례입니다만,”

하고 명함을 한 손에 든 채 가사이 씨에게 다가간 사람은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였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저희 이토 군이 지금까지 이런저런 신세를 져 한 번 저도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했었는데, ……그게…….”

가사이 씨는 야나기타에게서 명함을 받아 들고, 근시인 듯 눈에서 오 촌 정도 거리에 가져다 읽더니,

“그럼, 자네가 편집부장인가. 말하자면, 이토의 형뻘이란 말이군. 나는 자네가 부럽네. 왜, 이렇게 되기 전에 자네는 이토에게 충고하지 않은 건가. 돌팔이 부장이야, 넌. 도리어 이토를 부추긴 게 아닌가. 전혀, 그 빨강 넥타이가 맘에 들지 않는군.”

하지만 야나기타는 태연하게 웃으며,

“넥타이는 바로 바꾸겠습니다. 저도 이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별로다. 그걸 알면서 왜 이토한테 충고하지 않았던 건가. 충고를.”

“아니, 넥타이 말입니다.”

“넥타이 따위, 어찌되든 알 바 아니야. 네 옷차림이 어떻든 관심 없어. 문제는 내가 이토와 절교하는 일뿐이라고. 그것뿐이야. 그리고 더는 할 말은 없어. 실례하지. 모두 멍청이들뿐이다.”

내뱉듯이 말하고 셈도 치르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포장마차에서 나갔습니다. 야무진 야나기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쓴웃음 지으며,

“주정에는 당할 수 없군. 완력도 셀 것 같고 말이지. 형편이 안 좋군. 어쨌든, 이토. 선생님 뒤를 쫓아가서 사과하고 와주게. 나도 이번 자네의 연애는 조마조마했었는데, 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저놈이야말로 바보 같은 벽창호라 저렇게 앞으로 우리 잡지에 쓰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당할 수 없지. 가주게. 가서 그리고 음, 적당히 얼버무리고 사과하게나. 선생님 말씀 듣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하면서 말이지.”

저는 바로 가사이 씨를 쫓아 포장마차에서 나와, 그때, 돌아서 힐끗 도요 공의 여주인을 보니, 여주인도 얼굴을 숙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신바시 역에서 따라잡아 그렇게 말하자,

“왔는가.”

하고 예견하고 있었다는 말투로,

“한 잔 더, 마시자고.”

눈이 팔랑팔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잡아. 자동차를.”

“어디로?”

“신주쿠다.”

자동차 안에서 가사이 씨는,

“한 잔 마시고 휘청휘청. 두 잔 마시고 흔들흔들. 휘청휘청 흔들흔들.”

하고 염불 같은 절(節)을 낮게 거듭거듭 외더니, 그렇게 거의 자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화도 치밀고 불안한데다 슬퍼서 외투 주머니에서 꽁초를 더듬어 꺼내, 추위로 곱은 그 문제의 갸름한 손가락으로 집어 라이터 불을 붙이고, 창밖의 어둠 속에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를 봤습니다.

“이토는 올해 몇 살이나 됐는가?”

아주 푹 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니슈마와시(二重回し)[각주:1] 옷깃에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나이를 알렸습니다.

“젊군. 놀랐어. 그럼 뭐 무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는 조심하게. 나는 그 여자가 특별히 나쁘다고 하는 게 전혀 아니야. 그 사람 일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아.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나한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은 없어. 나는 제삼자야.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지. 그렇지만 왠지 너에게는 애석한 마음이 드는 거네. 애석해. 좋아하는 걸로 스스로 지옥행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봐. 지금 자네의 기분 같은 건, 나도 알고 있어. 그거야 너와 비교하면 백 배 이상의 여자가 반했으니 말이지. 정말이라네. 하지만 어느 때고 지옥 같은 기억이었지. 모르겠네, 여자의 마음이. 잘 모르겠는 거야. 나는 말이지, 인류, 원류(猿類) 따위의 동물학상의 구별은 틀렸다고 생각하네. 남류(男類), 여류(女類), 원류(猿類)라고 해야지. 종족이 완전히 다른 거야. 몸 구조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고방식도, 대화의 의미도, 냄새, 소리, 풍경에 대해 반응하는 법도 통 다르지. 여자 몸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남류는 이해하지 못할 불가사의한 세계에 여자라는 동물은 태연히 살고 있어. 자네, 한 번 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 역 플랫폼에 서서 멀찍이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살짝 이삼 촌(寸) 허리를 굽혀 한 번 더 바라보면 그 전방의 똑같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여. 이삼 촌 키가 크냐 작냐에 따라 그만큼 인생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걸세. 하물며 자네, 남자 몸과 여자 몸의 그 엄청난 차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별세계에 사는 거야. 우리에게는 파랗게 보이는 것이, 여자한테는 빨갛게 보일지도 몰라. 그렇게 빨간색을 파란색이라고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그렇게 말하니 우리 남류는 여류와 서로 이해한다고 쉽게 우쭐거리곤 하지만 터무니없는 지레짐작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소주를 한 되 마시고 흔들흔들하는, 딱 그 정도 기분으로 이 여류라고 하는 생물은 진지한 표정으로 장을 보든 뭘 하고는 또 남류를 비평하지 않을까 싶네. 소주 한 되, 분명히 그 정도야. 맨정신으로 인사불성으로 그렇게 옆집 부인과 우물가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니 말이지. 실로 불가사의해. 분명히 여류들끼리의 대화에는 우리 남류에게 도저히 알 수 없는, 아주 다른 의미가 담겨있어. 우리 남류가 들으면 대충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여류끼리의 대화이니 말이지. 인사불성은커녕, 마치 발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실로 수수께끼야!”

이 가사이 겐이치로라는 작가는 젊었을 무렵 애인에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차여 그 타격이, 그야말로 미간에 깊은 상처가 될 정도로 강한 듯, 그 이후 새장가도 들지 않고, 술만 마시며 여자를 아예 신용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자를 비웃는 듯한 소설만 써서, 그래도 독서계 일부에서는 가사이 씨의 그런 십 년이 하루 같은 독설을 꽤 통쾌하게 여겨 가사이 씨도 신명이 나, 지금에는 가사이 씨의 여자에 대한 욕설은 말하자면 그의 장기같이 되어 있었다.

“응? 알겠나? 여류와 남류가 이해한다는 건, 그건, 무리라는 말이지. 그런 어설픈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는 여기서 예언해도 좋아. 자네는 그 여자한테 배신당할 거네. 틀림없이 배신당해. 아니, 그 여자 하나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 한 명의 개인적인 사정 따위 난 모르네. 나는 그저 동물학 쪽에서 보는 여류의 일반적인 개론을 기술한 것뿐이야. 여류는 돈을 좋아하니까 말이지. 죽은 이의 이마에 세모난 종이가 있어, 거기에 “사”란 글자가 쓰여 있는 것처럼 여류의 이마에는 예외 없이, “돈”이란 글자가 쓰인 세모난 종이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걸세.”

“죽는다고 하네요. 헤어지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뭔지 몰라도 약을 갖고 다닙니다. 그걸 먹고 죽는 다네요. 태어나서 첫사랑이라고 합니다.”

“넌 머리가 이상해 진 게 아닌가, 멍청한 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멍청한 놈. 나는 단념했다. 여기는, 어디냐. 요쓰야(四谷)인가. 요쓰야에서 돌아가라, 멍청한 놈. 잘도 내 앞에서 그런 어이없는 말을 뻔뻔스럽게도 하는구나. 지금 죽는 건, 너겠지. 여자가, 흠, 무슨 말을 하든, 결국은 돈이야. 기사 양반, 요쓰야에서 바보가 한 명 내리오.”

여자 마음은 공연히 시험해 볼 게 아닙니다. 저는 가사이 씨한테 하도 거칠 게 매도당해서 분한 마음에 그 울분을 애인에게 풀어, 그 다음 날, 여주인이 회사로 주뼛주뼛 찾아오자 냉담하게, 전날 밤의 굴욕을 숨김없이, 약간의 과장도 없이 들려주고는 나도 남자로서 그렇게 욕을 먹었으니 이제 더 고집을 피운들 나는 너와 헤어져서 저 주정뱅이 가사이 씨를 다시 보게 해야 한다, 하고 실은, 헤어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는데, 한 편으로는 또, 이참에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럴듯하게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그날 밤 자살했습니다. 약을 먹고 수로에 몸을 던졌습니다. 뒤처리는 도요 공이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공손하게 해줬습니다. 그 이래로 나와 도요 공은 애처로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주인의 자살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초봄의 어느 날 저녁, 가사이 씨는 그날 밤 이래 처음으로 도요 공의 포장마차에 언제나처럼 만취한 채 나타났습니다.

“내가 저번 달 이 가게에서 계산을 했는지, 안 했는지, ……”

그다지 기운이 없는 말투였습니다.

“계산은 필요 없습니다. 나가 주시죠.”

하고 도요 공은 평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습니다.

“뭐야, 화내고 있네. 남류, 여류, 원류가 신경 쓰였나 봐? 그렇지만 정말이라면 어쩔 수 없지.”

찰싹하고 시원한 소리가 났습니다. 도요 공이 가사이 씨의 뺨을 친 겁니다. 이어서 제가 발로 차 쓰러뜨렸습니다. 가사이 씨는 네발로 기며,

“멍청한 놈, 폭력은 쓰지 마. 남류, 여류, 원류, 틀림없이 옳아. 틀리지 않았어.”

이미 반쯤 자는 만큼 취해 있었습니다. 반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가 딱하고 가사이 씨의 머리를 치며,

“눈을 떠. 이 동물박사야. 네발로 기어나가라.”

하고 말하고, 또 딱 가사이 씨의 머리를 때렸지만 가사이 씨는 아무런 저항도 않은 채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남류, 여류, 원류, 아니, 여류, 남류, 원류의 순인가. 아니, 원류, 남류, 여류일까? 아니, 아니. 원류, 여류, 남류의 순인가. 아, 아프군. 폭력은 안 돼. 원류, 여류, 남류인가. 부조금 천 엔 여기 두고 가네.”


  1. 인버네스를 일본풍으로 바꾼 옷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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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0. 22:30 일본괴담

黄金の枕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17_13101.html


신도탁(辛道度)은 방랑길을 계속하고 있었다. 옷은 얇고 호주머니는 비어, 먹을 것을 주는 동정심 많은 사람이 없을 때는 물로 굶주림을 견디고, 잠자리 빌릴 곳이 없으면 나뭇잎을 깔고 노숙했다. 그렇게 궁핍한 삶이었지만 그는 결코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행복이 보였다. 요컨대 그는 젊었다.

옹주성(雍州城) 서문에서 오 리 정도 북쪽으로 갔다. 울적한 저녁이었다. 도탁은 그날도 아침부터 물 외에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못해 뭔가 줄 것 같은 부잣집을 찾아 걸었다. 밭 가운데나 숲 그늘에 닿자 민가 지붕이 조금씩 보였지만 들어가 볼만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을 매일 같이 겪은 그는 그다지 당황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았다. 조만간 어딘가 좋은 곳을 찾겠지 하는 마음에 태연한 얼굴로 느릿느릿 걸었다.

작은 시내의 흙다리를 건너고 단풍이 든 대지 아래쪽을 돌자 저택 구조의 큰 건물이 보였다.

“겨우 좋은 곳을 찾았군.”

도탁은 그 문 쪽으로 갔다. 출입구에 하녀 같은 여자가 서 있었다. 마치 그가 오는 걸 기다린 것처럼.

도탁은 여자 앞으로 갔다. 여자는 그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는 농서(隴西)의 서생, 도탁이란 사람입니다만 돈이 떨어져 식사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주인께 식사를 하게 해주십사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만 여쭤봐 주실 수 없으실지요.”

“아, 식사를. 그럼 잠시 기다려 주세요. 가져다 드릴 테니.”

여자는 선선히 말하고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탁은 돌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이윽고 여자가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하시면 오늘 밤 묵고 가셔도 좋다고 말씀하셨으니, 들어오시지요. 여기 주인은 마님이세요.”

도탁은 감사 인사를 하며 그 뒤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빨갛게 칠한 기둥, 녹색의 벽 등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님께서는 여기 계셔요.”

여자는 문을 열었다. 도탁은 멋쩍어 주저주저하며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는 호리호리한 몸에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가 걸상에 앉아있었다. 방 구석구석에는 운모로 된 칸막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도탁은 멀리서 인사했다.

“이 분이 방금 부탁 드렸던 서생 님이세요.”

여자는 이렇게 주부에게 소개했다.

“자, 들어오세요. 이 집에는 저 혼자 있으니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거기에 앉아 주세요. 곧 뭔가 만들어 오게 할 테니.”

주부는 잠시 허리를 들어 자기 앞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저는 농서에서 온 사람으로, 신도탁이라고 합니다. 유학하고 있습니다만 노자가 부족해 여러분께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도탁은 눈부신 듯한 얼굴로 섰다.

“그건 이미 이 아이한테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며 주부는 여자 쪽을 힐끗 봤다.

“자, 거기에 앉아 주세요.”

도탁은 겨우 주부 앞에 가 앉았다. 그걸 본 여자는 나갔다.

“저도 혼자라, 쓸쓸해하던 참이었어요. 귀찮으시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도탁은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이 들어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했지만 차츰 편안해졌다. 주부는 비쳐 보일 듯 새하얀 얼굴에 어렴풋이 볼연지를 발랐다.

“그렇게 돌아 다니시니 재미있는 일도 있겠지요.”

예쁜 주부는 조금의 격의도 없이 도탁의 말상대를 해주었다. 부드러운 부인의 말이 젊은 남자의 귀에 기분 좋게 울렸다.

“저처럼 불행한 사람은 또 없을 거예요.”

주부는 이런 말도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여자 둘이 상을 들고 왔다. 주부는 방 동쪽에 있는 탁자 위에 그걸 놓았다.

“변변치 않지만 들어 주세요.”

주부는 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탁은 친척집 식탁에 앉은 것처럼 사양 않고 그곳에 앉았다. 향기 좋은 술도 딸려 있었다.

도탁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두 여자가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도탁은 이제 완전 유유자적해서 타고난 남자다움을 보여주었다.

도탁은 주부와 나란히 앉았다. 등잔 빛이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도탁은 넋을 잃었다.

“그대는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시나요?”

도탁은 주부의 태생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저는 아직 그대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진(秦) 민 왕(閔王)의 딸로 이 조(曹)나라에 오게 된 후 이십삼 년간 혼자서 지낸 자예요.”

도탁은 그런 귀족과 동석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대가 싫지 않다면 부부가 되어주세요.”

“그렇지만 그대는 고귀한 신분이 아닙니까?”

주부의 아름다운 몸이 도탁에게 기댔다.

주부와 도탁은 푸른 장막 그늘이 된 침상 위에 나란히 있었다.

“이렇게 당신과 삼일 밤낮 있었지만 이 이상 같이 있으면 재앙이 닥쳐요. 이제 부디 돌아가 주세요.”

주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별에 대한 저의 진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드릴 물건이 있어요.”

주부는 침상 뒤 작은 상자에 손을 넣어 그 안에서 황금 베개를 꺼냈다.

“이걸 드릴게요.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말한 주부는 다시 울었다.

도탁은 처음에 신세를 진 여자의 배웅을 받아 문을 나섰다. 열 발자국 걷더니 뒤로 돌았다. 저택이 사라지고, 가시나무가 무성한 고분(古塚)이 있었다. 도탁은 놀라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달리다 정신이 들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황금 베개는 여전히 있었다.

도탁은 진 나라에 갔다. 궁핍한 끝에 그는 황금 베개를 팔아 돈을 얻고자 했다. 도탁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교역을 하고 있었다. 도탁은 돈이 있을 법한 사람을 찾아 그 베개를 꺼내 보였다.

“이걸 사주지 않겠는가.”

가난한 서생이 가지고 있기에 어울리지 않는 황금 베개였다. 몇 명에게 보여도 사고자 하는 이가 없었다.

“이걸 사지 않겠는가. 싸게 팔아도 좋네.”

도탁은 다시 지나가다 만난 남자에게 그 베개를 보였다.

소가 끄는 아름다운 마차가 반대편에서 왔다. 마차 주위에는 남자, 여자 수행원이 붙어 있었다. 마차에는 진의 왕비가 타고 있었다. 왕비는 도탁이 손에 든 황금 베개를 살펴 보았다.

“저 베개를 가진 남자를 이곳으로 부르도록.”

수행원 하나가 도탁 옆으로 왔다.

“황후 님의 부르심이다, 이쪽으로 오도록.”

도탁은 수행을 따라 마차 옆에 갔다. 마차는 서 있었다.

“그 베개를 이쪽으로.”

수행원이 도탁의 손에서 베개를 들어 마차 창문가에 내밀었다. 베개는 왕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베개를 어떻게 해서 그대가 가진 것이냐.”

도탁은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베개를 손에 넣은 경위를 말했다. 말하는 동안 왕비는 울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히 내 딸이 갖고 있던 것이다. 그럼 여자에게서 받은 것이냐.”

왕비는 하염없이 울었다.

도탁은 왕비의 마차를 따라 진 왕궁에 갔다. 왕궁에서는 도탁의 말에 의심을 품고 사람을 시켜 무덤을 파헤쳐 관을 열어 조사하게 했다. 이십삼 년 지난 여자의 시체는 썩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시체와 함께 넣은 물건을 대조했다. 다른 물건은 전부 그대로였지만 황금 베개만 없었다.

다음으로 죽은 이의 몸을 조사했다. 거기에는 마치 정교한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진 왕비는 도탁의 사정을 양해했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실된 사위다. 딸 또한 신이다. 죽고 이십삼 년이나 지나 산 인간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비는 도탁을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삼아 금과 비단, 거마를 내리고 본국인 농서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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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9. 19:47 일본문학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308/files/49298_34002.html

작가소개 : http://blog.naver.com/japanliter/140027128269

"저기, 당신. 지금 오쿠(尾久)에 있는 집(친척)이라도 가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마누라인 오하쓰(お初)가 리헤이(利平)의 머리맡에서 끊임없이 설득한다. 리헤이가 쟁의단에서 머리를 깨지고 왔을 때부터 오하쓰는 아주 겁을 먹었다.

"무슨……말도 안 되는……도망치다니, 그런……앗, 아, 아."

눈을 돌려 마누라에게 호통을 치려고 했지만 맞아 붕대 감은 머리의 상처가 따끔따금 죄여 온다.

"그렇지만, 당신……"

오하쓰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당신, 또 오늘 아침 쟁의단에 어디선가 이상한 놈들이 잔뜩 왔으니……. 그런 위험한 놈들이니 정말 당신 목숨이라도 빼앗을 지도 몰라……. 어머, 봐, 저렇게 많이 시끌시끌하는 거, 안 들려?"

안 들리기는 커녕, 리헤이의 온 신경은 담 하나만 사이에 둔 옆 쟁의단 본부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소리에 기상대의 풍향계 화살처럼 쏠려 있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그래도 직장(職長)이라고, 회사의 신임을 짊어지고 또 한 편으로는 놈들의 신뢰를 짊어지고 수백 명의 머리 위에 서 있는 거다……. 저런 은혜도 모르고 의리도 모르는 놈들한테 겁먹어서 살림을 정리하고 도망치라니, 그런 모욕적인 일이 있을까.

"시끄러워……. 저런 놈들은 파업으로 밥먹고 다니는 깡패들이야. 뭘 할 수 있다고……. 시끄러우니까 아래 내려가 있어, 내려가 있으라니까……."

오하쓰는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안아 일어섰지만,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나는 물론이고, 애들도 위험해서 밖에도 못 나가고 아무것도 못 해."

입 속으로 중얼중얼거린다.

"이봐, 밑에 있는 경찰한테 가와무라(川村) 잡혔냐고 물어보고 와."

흥분하자 머리의 상처가 한층 아파 온다. 병원에도 안 가, 칭칭 감은 붕대로 피가 번져 나오는데 검은 담 너머 바깥의 빛이 비춰 눈구석이 몹시 가물가물한다. 은혜도 모르는 가와무라 이 개자식! 어릴 적부터 키워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내 머리를 깨다니……. 감방 들어가서 울지나 마라…….

뒤로 젖혀 반자널을 보며 욱신욱신 쑤시는 아픔을 꾹 눌러 참았다.

회사가 직장폐쇄를 한 이래, 벌써 이럭저럭 사십 일이다. 인쇄기에 녹이 슬 것 같은 회사 내부에 있는 리헤이와 동료들은 직장 단체를 만들어 처음에는 이 쟁의에 "공평한 중립"을 지킨다는 성명을 냈다. 다만 그걸 신용한 쟁의단원은 한 명도 없었지만……. 하지만 이제 오늘에는 리헤이와 그의 동료들이 사장의 유일한 손발이자 버팀목이었다. 회사의 흥망은 곧 자신의 흥망이라 생각해왔다. 그들은 쟁의단원 중 온건파 단원들을 알았다. 또 이런저런 단원들의 약점도 알았다. 그게 가장 먼저 시행되었는데, "분열시키기" "의리와 인정만으로 유괴"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큰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탈자 공략에 나섰지만 그것도 강고한 쟁의단의 방해로 예상만큼의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트럭 안 짐 사이로 다섯 여섯 명의 이탈자를 싣고 회사 바로 근처까지 왔을 때, 트럭 운전수와 변장한 리헤이가 심하게 얻어맞은 때도 이때였다.

그래도 직장(職長) 동료의 혈연관계나, 이를테면 리헤이처럼 부자가 같이 근무하는 자는 아들을 회사로 보내 간신히 이백 명이 안 되는 이탈자로 한편으로 쟁의단을 위협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기계에 녹이 슬지 않을 정도로 공회전을 시키고 있었다.

"자네, 회사 안에서 생활하는 게 좋겠네. 쟁의단 본부에 붙어있는 집이라니, 위험해서 살 수가 있나."

동료도 끊임없이 리헤이를 설득했지만, 고집 센 그는 듣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적 우세를 등에 업고 그때 날뛰는 혈기다.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형사나 정복 경찰이 지켜줘 회사에서 2정(丁)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친 몸으로 이 층에 드러눕고 나서 벌써 오육 일 지난 아침의 일이다.

오하쓰가 올라 왔다.

"잡혔대요, 가와무라가"

"언제야, 어제래?"

"어젯밤이라네요. 그 꼴을 보라지. 젠장, 은혜도 모르는 놈이 어젯밤에 심한 꼴을 당했다지 뭐예요."

"흐음"

리헤이는 머리의 통증이 훨씬 줄어든 것처럼 순간 느껴졌다. 사회주의자 같이 긴 머리카락과 영리해 보이는 작지만 맑은 눈을 한 가와무라가 갑자기 작디 작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열두세 살 어릴 적부터 혼나고 두드려 맞으며 자신에게 일을 배웠던 그 가와무라의 얼굴이 생생히 눈에 떠올랐다.

그저께 밤에도 이삼십 명 검거되고, 그 바로 십 일 전에도 사오십 명 검거된 쟁의단이다. 아무리 삼천 명으로 시작한 쟁의단이라 해도 직장(職長)들이 생각하기에 그 승패는 불보듯 뻔했다.

"쟁의가 끝나면 내가 데리러 가지."

그러면 그놈들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는 왠지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심복이자 내제자[각주:1]라고 할 부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한 일이었다. 가와무라도, 다카하시(高橋)도, 사이토(斎藤)도 오노(小野)도, 그외 십수 명 그를 지지하는 유력한 부하는 모두 조합의 손에 빼앗겨 버렸다.

그럼에도 일체의 원한을 없던 일로 하고 쟁의 중에 스스로 데리러 가는 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올까.

아직 조합같은 게 없을 무렵, 귀여운 부하들 가운데서 높이 앉아 축배를 들던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 심한 꼴을 당했대?"

리헤이는 이불 위로 살살 일어났다.

"그렇대"

마누라는 조금 의아스러운 듯이 리헤이의 얼굴을 봤다.

"신경 쓸 거 없잖수, 그런 은혜도 모르는 놈들."

"음, 그건 그렇다만."

그는, 마누라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온 다섯째 여자아이를 한손으로 어르며 창문 장지 사이로 검은 담을 보았다.

마침 그때…… 담 너머 쟁의단 본부에서,

"만-세, 만-세"

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십 명, 백 명의 목소리다.

"뭘까?"

부부는 눈을 마주 봤다.

"어디……"

오하쓰가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조심 장지를 열어 담 너머를 엿보더니 그대로 숨을 죽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래도 오하쓰는 입을 다문다.

리헤이는 아픔을 잊고 아기를 안은 채 오하쓰의 등뒤에 섰다.

그러자 본부 뒤 툇마루에서 마루 밑 토방까지 가득 쟁의단원이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게 정면으로 보였다.

마루 위 젊은 남자 이삼십 명은 마침 한중(寒中)인데도 굴하지 않고 노동복을 휙휙 벗어던진 알몸이었다.

"팬티도 벗어버려, 참을 수가 없네."

하고 말하며 새빨갛게 될 정도로 온몸을 긁어대는 남자도 있었다.

"어머, 저 많은 이 좀 봐."

붉은 어깨띠를 두른 여공들은 바지런하게 벗어던지는 노동복을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통에 집어넣는다.

"이봐, 그만 해. 여자 앞에서 그렇게 벗어대지 말라고."

"그만 하라니……. 너희들, 여자는 잠깐 딴데 봐주지 않을래."

"아하하하하"

"오호호호"

남자도 여자도 와 폭소를 터뜨렸다.

"왜 그러는데, 뭐야?"

오하쓰는 리헤이에게 살짝 말한다. 리헤이는 입을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저건 오늘 아침 유치장에서 방면되어 돌아온 쟁의단원을 다른 자들이 환영하는 자리다!!

리헤이는 놀랐다. 어두운 곳에 수십 일 처박혀 있어야 할 그들의 얼굴 어디에 근심의 빛이 있는가. 흔연한 게 마치 개선 장군이 아닌가! ……마중하는 자도 돌아오는 자도 그런 유쾌한 폭소는 어디서 나오는 거냐!!

따뜻한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친 젊은이 사이에서 움직이던 누군가 리헤이를 공격했다. 마루 끝에 즐비하게 늘어선 십수 명의 나신 중 한 명이 낮게 노래를 시작하자 다른 이들이 높게 응하여, 의기왕성한 힘의 혁명가가 크게 파문을 일으켜 얼어붙은 아침 공기를 찢으며 높이 뛰어올라 퍼져 간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남자 한 명은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손을 흔든다……. 그러자, 오하쓰가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앗, 리스케(利助)가, 당신 리스케가!"

오하쓰는 리헤이의 팔을 힘껏 당겼다.

"뭐, 리스케?"

세상에!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바로 눈앞에서 목이 터져라 높이 노래하는 나신 사이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리스케가 있었다!

리헤이는 망연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 확실히 회사 안으로 트럭에 태워 보냈을 리스케였는데……. 하지만 틀림없이 리스케는 알몸으로 혁명가를 부르고 있었다.

"여러분, 옷을 입어주세요. 밥 다 됐어요."

여공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공이 제각기 밥통을 옮긴다. 구운 꽁치가 접시 위에서 뒤집혀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리헤이는 반쯤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리스케, 리스케" 마누라는 담 너머로 부르려 했다.

"그, 그만, 조용해."

리헤이는 마누라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시켰다.

"자, 들어가자. 문 닫아."

리헤이는 문에 손을 댄 순간, 문득 한 번 더 리스케쪽을 봤다.

그때, 알았는지 몰랐는지 리스케는 옷을 입으며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가만히 리헤이의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 눈, 그 눈…….

리헤이는 서둘러 장지를 닫아 걸었다.

"저 눈이야, 저 눈. 가와무라도 저 눈이야!"

리헤이는 머리를 싸매고 입을 다물었다.

쟁의 이전부터 조합 일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뛰쳐나갔던 리스케였다. 리헤이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회사로 돌아간 일도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긴 이상했다.

"이래선 마치 부모고 자식이고, 의리고 인정이고 없잖나."

리헤이는 목이 멜 듯 했다. 그리고 열이 난 탓인가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는 침구를 머리까지 푹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때도…….

이탈자 네다섯 명을 데리고 ××마을 파출소 옆에 트럭을 세우고 다른 한 명의 집에 가자고 돌았던 골목에서 우연히 두 소년공을 발견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봐, 산코(三公), 요시코(義公)" 하고 부르자, 둘은 변장한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돌아 다가왔다. 그리고 둘은 "미야모토(宮本) 리헤이다!" 하고 냉담하게 지껄이고는, 발걸음을 돌려 후다닥하고 도망쳐 버렸다. 놈들은 망을 보고 있던 것이다. 건방지게 "미야모토다." 라니, 평소에 부모보다 두려워하고 또 존경하는 자신에게 냉담하게 지껄였을 때도 저 눈이었다.

서둘러 트럭으로 회사 근처 길모퉁이에 왔을 때, 느닷없이 옆쪽에서 남자 오육 명이 운전석를 향해 달려들었다. 큰일 났다고 자세를 취하자 운전석 뒤 창문을 부수고 서서히 다가왔을 때 저 가와무라의 눈…….

"저 눈은, 부모고 은인이고 죽일 눈이야!!"

리헤이는 온몸을 쑥 지나가는 추위와도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준비 해. 오늘 안에, 이사하자고."

벌벌 떠는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한 리헤이는 조금 전까지 넘치던 자신이 모두 없어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1.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키우는 제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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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22:51 일본괴담

狸と俳人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2276_16444.html


안에이(安永) 연간(年間)의 일이다. 이세타이뵤(伊勢大廟)[각주:1]의 나이구료(内宮領)에서 게쿠료(外宮領)에 이르는 뒷길에 감으로 유명한 렌다이지(蓮台寺)라고 하는 마을이 있었는데, 사와다 쇼조(澤田庄造)라는 사람이 그곳에 살았다.

쇼조는 다른 이름은 나가요(永世), 호는 로쿠메이(鹿鳴)라고 하였는데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에 능했다. 특히 하이쿠는 그 무렵 꽤 유명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 사이에서는 별난 구석이 있는 하이쿠 시인으로 통했다.

쇼조는 번잡을 싫어해 장가도 들지 않고 때때로 찾아오는 시우(詩友) 외에는 이렇다 할 교제도 없이 혼자 방에 칩거하며 시를 짓는 것만을 즐겼다.

어느 늦가을 저녁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떫은 차(渋茶)를 홀짝거리며 시 짓기에 골몰하던 쇼조가 문득 돌아보니 창문 창호지에 이상한 그림자가 비쳤다. 쇼조는 수상쩍게 여겨 통로와 창문의 창호지에 손을 댔다가 누군가 있으면 창피해 할 것 같아 손을 떼고 뜰 앞으로 돌아나가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는 늙은 너구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너구리는 쇼조의 모습을 보고도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쇼조는 흥미롭다고 생각해 집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와 던져 주었다. 그러자 너구리는 그걸 맛있게 먹고는 가버렸다.

그 다음 날 저녁에 쇼조가 책을 읽고 있자 또 창밖에 너구리가 와서는 웅크렸다. 쇼조가 또 먹을 것을 들고 나와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자 너구리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너구리는 그 다음 날 밤에도 왔다. 기다리던 쇼조는 손님방으로 불러들였다. 너구리는 처음 접하는 문에 주저하는 모습이었지만 얼마 안 있어 꼬리를 흔들며 들어왔다. 그리고 책을 읽는 쇼조 옆에 앉아 혼자서 잠시 놀다 쓸쓸한 듯이 돌아갔다.

그로부터 너구리는 매일 밤 같이 찾아왔다. 쇼조는 쓸쓸히 홀로 생활하던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너구리는 쇼조를 잘 따라 돌아가라고 할 때까지 놀다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밤 평소와 같이 쇼조 옆에서 노는 사이 집 밖에 큰 눈이 내렸다. 쇼조는 눈이 쌓인 걸 보고는 너구리를 내보내는 게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음, 너구리 공(公), 오늘 밤은 눈이 오니 쉬었다 가게나."

하고 말하자 너구리도 꼬리는 흔들며 기뻐했다. 그날 밤 너구리는 쇼조 이불 속에 들어와 잤는데, 그로부터 너구리는 쇼조의 허락 하에 자고 가게 되었다.

쇼조가 너구리를 귀여워한다는 소문이 이윽고 마을에 퍼졌다. 마을 사람은 가끔 동틀 녘쯤에 쇼조의 집에서 나오는 너구리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서로 조심해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마을 아이들도,

"선생님 너구리를 괴롭히면 안 돼."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조가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였지만 그게 악화되어 중태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쇼조를 문병했는데, 그때마다 쇼조의 머리맡을 지키는 갸륵한 너구리의 모습을 보았다. 쇼조는 자신의 병이 깊어 오래가지 못할 것을 깨닫고, 어느 날 너구리에게 말했다.

"자네와도 오랫동안 친분을 나눴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날이 왔네. 내가 가면 이제 사람 근처에 가지 않도록 하게나.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논밭은 망치지 않도록 하고. 자, 이제 됐으니 돌아가게."

쇼조의 말이 끝나자 너구리는 초연(愀然)히 나갔다. 그날 밤, 쇼조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의 간호 아래 숨을 거뒀다. 안세이(安永) 칠 년 유월 이십오 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수일 후였다. 하루 일을 마친 마을 사람 한 명이 귀가를 서두르며 쇼조의 무덤 옆 근처에 막 다다랐을 때 무덤 앞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아름다운 기모노를 입고 풀꽃 한 다발을 들었다. 자세히 보자 여자는 우는 것처럼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이 부근에선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마을 사람은 누굴까 싶어 조심스레 그 옆에 갔다.

"여보시오."

마을 사람이 이렇게 말을 거는 순간, 여자의 모습은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옆에는 여자가 손에 들었던 풀꽃이 떨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듣고는 분명 그 너구리일 거라 하며 그 갸륵한 행동과 마음에 감동을 받아 너구리를 절대로 해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후 그 마을에서는 지금도 너구리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1. 일본 황실의 종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별칭.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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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21:32 일본괴담

再生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18_16888.html


진시황 때 왕도평(王道平)이란 남자가 있었다. 어릴 적 같은 마을에 사는 당숙해(唐叔偕)란 여자와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지만, 곧 도평은 징병되어 군인으로 남국에 정벌을 갔다가 적중(敵中)에 잡혀 구 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여자 집에서는 여자가 혼기가 찬 걸 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남자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유상(劉祥)이라는 사람 집에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여자가 승낙하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를 부려 강제로 보냈다.

여자는 도평을 잊을 수 없어 침울해하다가 마침내 울화병에 걸려 삼 년 후에 죽고 말았다. 도평은 여자가 죽은 지 삼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집에 돌아왔지만 꿈에도 잊지 못했던 여자가 죽어 낙담해 무덤에 찾아가,

"내가 돌아오는 게 늦어 이렇게 되어버렸소. 억울해 참을 수가 없으니 넋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여주오."

하고 말하며 우니 어디선가 죽은 여자 얼굴이 나와서,

"저는 아버지가 억지를 부려 유상에게 시집갔지만, 당신만 생각한 나머지 죽었어요. 하지만 저의 몸은 아직 정말로 죽은 게 아니라 당신과 부부가 될 수 있어요. 무덤을 파헤쳐 관에서 제 몸을 꺼내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래서 도평은 무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관뚜껑을 열고 꺼내보니, 여자가 살아났으므로 집에 데리고 갔다.

그러자 여자 남편인 유상이 관청에 호소했다. 관청에서는 법률에 따라 재판하려 했지만 그럴 법률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진 왕(秦王)에게 주상(奏上)하자 진 왕은 왕도평의 처로 삼으라고 하기에 도평은 여자와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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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00:34 일본괴담

怪譚小説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951_16439.html


나는 글을 쓸 때 흥미로운 구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줄거리가 정돈되지 않을 때면 육조소설(六朝小説)을 꺼내 읽는다. 진당(晋唐)소설 육십 종으로 당시의 단편 육십 종을 엮어낸 총서인데 역사의 일화, 괴담, 기담이 있어 모두 나름대로 재미있다. 이즈미 교카(泉鏡花)의 "고야성(高野聖)"은 그 중 환이지(幻異志)가 실려있는 "판교삼낭자(板橋三娘子)"에서 나온 것이다. 판교에 삼낭자라는 여관을 하는 노파[각주:1]가 있어, 나그네에게 기이한 메밀떡을 먹여 당나귀로 만들어 돈을 벌었는데 조계화(趙季和)란 남자가 그걸 알고는 거꾸로 그 떡을 노파에게 먹여 당나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고야성에서는 환술로 나그네를 말로 만들거나 원숭이로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서 대체적 구상에서는 흔적을 못 지웠지만 그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독립된 창작으로, 또 굴지의 명작이기도 해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가 서호가화(西湖佳話)에 있는 뇌봉괴적(雷峯怪蹟)을 그대로 번안한 음란한 사성(蛇性の婬)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 그 총서 중 "유괴록(幽怪録)"에는 이와미 주타로(岩見重太郎)의 붉은 개코원숭이 퇴치(緋狒退治)라고 하는 인신 공양 설화가 있다. 당(唐)의 곽원진(郭元振)이란 사람이 밤에 여행하고 있었는데 등불이 화려한 집이 있어 묵어가려고 가보니 십칠팔 세 되는 소녀가 한 명 울며 쓰러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신(魔神)의 산제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곽이 소녀를 달래고 기다리니 과연 가마에 타고 여러 명의 종자를 거느린 남자가 왔다. 곽은 희귀한 술안주를 진상한다고 사슴의 육포를 바치는 척하고 그 손을 베어 다음 날 핏자국을 쫒아가 보니 커다란 멧돼지가 있으므로 죽여서 먹었다. 이 유괴록 이야기는 명(明)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 중 신양동(申陽洞) 기록이 바탕이 되어있다.

또 그 총서의 "속유괴록(続幽怪録)"에 있는 정혼점(定婚店) 이야기는 붉은 줄의 인연(赤縄の縁) 전설이다. 위고(韋固)라는 사람이 결혼 일로 다른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아침 일찍 용흥사(竜興寺)라는 절에 갔더니 노인 한 명이 계단 위에서 주머니 속에 든 걸 읽고 있었다. 위고가 그게 뭐냐고 묻자 남녀 결혼에 대해 쓰여 있는 것으로, 주머니 속에 든 붉은 줄로 남과 여의 영혼을 묶으면 어떻게든 부부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묻자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며 그의 아내가 될 여자는 올해 세 살로 열일곱이 되지 않으면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지금 거지 같은 야채상 할머니에게 안겨서 매일 시장에 온다고 했다. 이고는 화가 나서 하인에게 명령해 죽이라고 했다. 하인은 아이 이마에 칼로 상처만 내고 도망쳤는데 십사 년 후 아내를 맞고 보니 그 아내는 항상 이마에 꽃비녀를 꽂았다. 왜 그러냐고 묻자 세 살 때 흉한에게 찔려서 상처가 났다고 했다.

요컨대 육조소설은 중국문학의 원천으로 그걸 바탕으로 많은 소설, 희곡, 시가 나왔는데 그 흐름을 보면 "소신기(捜神記)", "전등신화(剪燈新話)", "서호가화(西湖佳話)", "요재지이(聊斎志異)"라고 하는 괴담소설이 되었다. 아키나리(秋成)의 음란한 사성(蛇性の婬)이 "서호가화"의 번안이라는 건 이미 말했는데, 엔조(円朝)의 괴담으로 유명한 "모단등롱(牡丹燈籠)"은 "전등신화"에 있는 모단등기(牡丹燈記)에서 나온 것으로 이 모단등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도 여럿 만들어졌다.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의 괴담에 나오는 귀없는 법사 이야기(耳なし法師の話) 또한 모단등기의 변형이다.

고이즈미 야쿠모의 괴담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오소리 괴담이다. 상인이 기(紀)나라 국경을 지나는데 소녀가 울고 있었다. 곁에 다가가 달래주려고 하자 소녀가 고개를 들었는데 눈과 코가 없는 놋페라보였다.

이 놋페라보 이야기는 혼죠(本所) 7대 불가사의 오이테케보리(置いてけ堀)와 비슷하다. 내 고향에도 이 계통의 이야기가 있다. 한쪽에 산이 있고 또 한쪽에는 밭과 소나무숲이 있는 인가(人家)고 뭐고 없는 곳에, 동쪽에서 오면 산 입구에 샤미센 소나무(三味線松)라고 덴구(天狗)가 샤미센을 켰다는 전설이 있는 소나무가 있어 나 또한 어릴 적 아주 무서워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여자 한 명이 그 샤미센 소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바로 앞에 여자가 걷고 있었다. 마을 여자는 동행이 생겨 반가운 마음에 옆에 다가가서 사투리로,

"저기, 같이 가시면 어떨까요. 이상한 게 나오면 든든하잖아요."

하자 앞에 가던 여자는,

"어머, 저 말인가요."

하고 돌아보는데, 여자는 눈과 코가 없는 놋페라보였다.



  1. 여기서 원문은 노파이지만 판교삼낭자 원작에서 삼낭자는 30여 세로 나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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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4. 14:06 일본동화

かぶと虫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21/files/45084_42628.html


* 대화의 미카와 방언은 서북 방언을 차용하였습니다.



꽃밭에서 큰 벌레가 한 마리, 붕하고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몸이 무거운지, 천천히 날아올랐어요.

땅에서 일 미터 가량 뜨자 옆으로 날기 시작했어요.

역시 몸이 무거워 천천히 날아가요. 마구간 구석 쪽으로 느릿느릿 날아가요.

보고 있던 작은 다로(太郎)는 마루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리고 맨발로 체를 들고 쫓아 갔어요.

마구간 구석을 지나고 꽃밭에서 보리밭으로 올라가, 풀이 난 턱 위에서 벌레를 덮었어요.

잡고 보니 장수풍뎅이였어요.

"야, 장수풍뎅이다. 장수풍뎅이 잡았다."

하고 작은 다로는 말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작은 다로는 형제가 없이 혼자였기 때문이었어요. 혼자는 이럴 때 너무 재미가 없는 거 같아요.

작은 다로는 마루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클마니, 장수풍뎅이 잡았어."

하고 보여줬어요.

마루에 앉아 말뚝잠을 자던 할머니는 눈을 떠 장수풍뎅이를 보고는,

"음, 게 아딘."

하고 말하고 다시 눈을 감았어요.

"아니야, 장수풍뎅이야."

하고 작은 다로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지만 할머니한테는 장수풍뎅이든 게든 상관이 없어서 흥흥, 중얼중얼하고는 다시 눈을 뜨려고 하지 않았어요.

작은 다로는 할머니 무릎에서 바늘밥을 들어 장수풍뎅이의 뒷다리를 묶었어요. 그리고 마루 위를 걷게 했어요.

장수풍뎅이는 소처럼 비척비척 걸었어요. 작은 다로가 실 끝을 누르자 파닥파닥 마루를 긁었어요.

잠시 그렇게 하던 작은 다로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분명히 장수풍뎅이를 가지고 재미있게 노는 법이 있어요. 누군가 분명히 그걸 알아요.



그래서 작은 다로는 큰 머리에 밀짚모자를 쓴 다음 장수풍뎅이를 실 끝에 묶고 대문을 나섰어요.

낮이라 몹시 조용해서 어디선가 멍석을 터는 소리뿐이었어요.

작은 다로는 제일 먼저 제일 가까운 뽕밭 한가운데 있는 긴페이(金平)의 집에 갔어요. 긴페이의 집에서는 칠면조를 두 마리 기르고 있어서 가끔 마당에 나오고는 했어요. 작은 다로는 그게 무서워서 마당에는 들어가지 않고 산울타리 바깥쪽에서 안쪽을 들여다 보며,

"긴페이, 긴페이."

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어요. 긴페이만 들으면 되니 그랬어요. 칠면조한테는 들리지 않았으면 했어요.

긴페이한테 잘 들리지 않았는지 작은 다로는 몇 번이나 불러야 했어요.

"긴페이는 말이디."

하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긴페이 아버지는 졸린 목소리였어요.

"긴페이는 어젯밤부터 배가 아프다고 해서 잔다. 오널은 같이 못 놀갓다."

"흐음."

하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콧속으로 말하고 작은 다로는 산울타리에서 벗어났어요.

조금 실망이었어요.

그래도 다시 내일이 돼서 긴페이 배가 나으면 같이 놀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작은 다로는 이번에는 한 학년 위인 교이치(恭一) 형 집에 가기로 했어요.

교이치 형네는 작은 농가였지만 주변에 소나무, 동백나무, 감나무, 칠엽수 같은 나무가 잔뜩 있었어요. 교이치 형은 나무 오르기를 잘 하는 까닭에 자주 나무 위에서, 모르고 아래에 지나고 있는 작은 다로 머리 위로 동백나무 열매를 떨어뜨려 놀라게 하곤 했어요.

또 나무에 오르지 않을 때도 교이치 형은 흔히 그늘진 곳이나 뒤에서 으악하고 소리를 질러 놀라게 했어요. 그래서 작은 다로는 교이치 형네 갈 때마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상하좌우, 뒤까지 조심하면서 슬금슬금 걸어갔어요.

그런데 오늘은 교이치 형은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어요. 어디서도 으악 소리 지르며 나타나지 않았어요.

"교이치는 말이야."

하고 닭모이를 주러 나왔던 아주머니가 일러주었어요.

"좀 일이 있어서 어제 미카와(三河)에 있는 친척네 맡겼단다."

"흐음."

하고 작은 다로는 들릴지 안 들릴지 모를 정도 콧속으로 말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이좋았던 교이치 형을 바다 저편에 있는 미카와 마을로 보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안 오가시오?"

하고 서둘러서 작은 다로는 물었어요.

"그야 언젠가 오갓지."

"언제?"

"우분재나 설날에는 오갓지."

"진짜디요, 아주마이. 진짜 설에는 돌아오는 거디요."

작은 다로는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우분재에는 다시 교이치 형하고 놀 수 있어요. 설날에도.



장수풍뎅이를 든 작은 다로는 이번에는 좁은 비탈길을 올라 큰길로 나갔어요.

수레 목수 아저씨 집은 큰길가에 있었어요. 그 집 야스오(安雄) 형은 벌써 중학교에 다닐 만큼 컸어요. 그래도 언제나 작은 다로의 좋은 친구였어요. 땅따먹기 할 때도 숨바꼭질할 때도 같이 놀았어요. 야스오 형는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각별히 존경받고 있었어요. 아무 나뭇잎이나 풀잎도 야스오의 손으로 둘둘 말아서 입에 물면 삐익하고 울려서였어요. 또 야스오 형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슬쩍 만져서 재밌는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어서였어요.

수레 목수 아저씨 집에 가깝게 갈수록 작은 다로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야스오 형이 장수풍뎅이로 어떤 재밌는 놀이를 생각해낼까 하고 기대해서였어요.

작은 다로 턱 높이에 있는 미닫이문에 목을 올려 작업장 안을 들여다 보자 야스오 형이 있었어요. 아저씨와 둘이서 작업장 구석에 있는 숫돌에 대패날을 갈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자 오늘은 작업복도 차려입고 검은 앞치마까지 하고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힘을 주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는 놈이네."

하고 아저씨가 잔소리를 했어요. 야스오는 칼 가는 법을 아저씨한테 배우는 것 같았어요. 얼굴이 시뻘게져서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작은 다로가 있는 쪽을 아무리 기다려도 봐주지 않았어요.

결국 작은 다로는 기다리다 지쳐,

"야스오 형, 야스오 형"

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어요. 야스오 형만 들으면 됐어요.

하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 그럴 수는 없었어요. 아저씨가 듣고는 꾸짖었어요. 아저씨는 평소에는 애들 군소리도 잘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다른 일로 짜증이 났는지 굵은 눈썹을 실룩실룩하면서,

"우리 야스오는 이제 오널부터 어른이라 애들 놀이에 못 끼갓다. 애들은 애들하고 놀아라."

하고 내치듯이 말했어요.

그러자 야스오 형이 작은 다로 쪽을 보고 할 수 없다는 듯 슬며시 웃었어요. 그리고 다시 자기 앞으로 눈을 돌려 열중했어요.

벌레가 가지에서 떨어지 듯 힘없이 작은 다로는 문에서 떨어졌어요.

그리고 흐느적흐느적 걸어갔어요.



작은 다로의 가슴에 깊은 슬픔이 북받쳐 올랐어요.

야스오 형은 이제 작은 다로의 옆에는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더 이상 같이 못 놀아요. 배가 아프면 다음 날이 되면 나아요. 미카와에 가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 간 사람은 이제 어린이의 세계에는 돌아오지 않아요.

야스오 형은 먼 곳에 가는 게 아니에요. 같은 마을 바로 근처에 있어요. 하지만 오늘부터 야스오 형과 작은 다로는 다른 세계에 있어요. 같이 놀 수 없는 거예요.

작은 다로의 가슴에 슬픔이 하늘과 같이 넓고 깊이 공허하게 퍼졌어요.

어떤 슬픔은 울어서 지울 수가 있어요.

하지만 또 어떤 슬픔은 없어지지 않아요. 울든 어쩌든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 작은 다로의 가슴에 퍼지는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 슬픔이에요.

그래서 작은 다로는 서산 위에 홀로 멍하니 떠있는 붉은 테의 구름을 눈부신 듯 눈썹을 조금 찌푸리며 오랫동안 지켜볼 뿐이었어요. 장수풍뎅이가 어느샌가 손가락을 빠져 나와 도망친 것도 모른 채――.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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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2. 19:56 일본괴담

義猫の塚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2272_16440.html


엔슈(遠州)의 오마에자키(御前崎)에 세이린인(西林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 주지는 매우 자비로운 남자였는데, 어느 풍랑이 거센 날, 난파선이 있을까 싶어 밖에 나가보았더니 바로 눈 밑에서 파도 사이로 배의 파편 같은 판자 한 장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주지는 산을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 어부 집에 가서는,

"불쌍하니 구해주시게."

하고 말하며 혼자 힘으로 배를 내려고 하므로 어부도 주지의 진심에 감동해 결국 배를 내어 그 고양이를 구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고양이는 세이린인에서 키우게 됐는데 주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으므로 주지도 무척 귀여워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어느 봄날 그곳 불목하니가 툇마루에서 선잠을 자고 있었는데 작게 야옹야옹 하는듯한 이상한 말소리가 들렸다.

"좋은 날씨가 아닌가. 한 번 신궁 참배라도 다녀오는 게 어떻겠나."

"가고는 싶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스님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가. 넌 스님이 구해주신 은혜가 있었지."

불목하니는 덜컥 눈을 떴지만 툇마루에는 기르던 고양이와 근처 절의 고양이가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드니 더그매에서 싸움이라도 하는 듯 큰 소리가 났다. 불목하니가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주지는 벌써 일어나 사방등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뭘까요."

"글쎄다."

둘은 사방등 불에 의지해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그다지 의심스러운 것도 보이지 않아 그날 밤은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 주지가 본당에 가보니 더그매에서 선명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주지는 놀라 단가(檀家)의 젊은이를 오라고 해 같이 더그매에 올라갔다. 더그매에는 기르던 고양이와 근처 절의 고양이가 피에 젖은 채 죽어있었는데, 그 옆에 삼 척 가깝게 큰 쥐가 승려의 법의(法衣)를 뒤집어쓰고 죽어있었다. 

"아."

그때 주지의 머릿속을 스치는 일이 있었다. 그건 수 일 전 난데없이 나타나 체류하고 있던 승려의 일이었다. 주지는 혹시나 싶어 승려의 방에 가보았지만, 그곳에는 깔아두었던 이부자리가 그대로 있을 뿐 승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주지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세이린인에 있는 의묘총(義猫塚)은 두 고양이를 함께 묻은 것이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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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2. 00:18 일본괴담

碧玉の環飾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24_16895.html


당(唐) 대종(代宗) 황제 광덕(広徳) 대의 일이다. 손각(孫恪)이란 젊고 가난한 남자가 있었는데 낙양(洛陽)에 있는 위토지(魏土地)란 곳에 놀러갔다. 놀러갔다고는 하지만 여행을 다니려고 했다기 보다는 유랑(流浪)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 위토지에는 터줏대감으로 원(袁)이란 성을 가진 호족이 있었다. 손각은 별 목적은 없었지만 그 앞을 지나가다가 그저 호기심에 들여다 보니 문지기는 커녕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푸른 발이 드리워진 작은 방이 있었다. 손각이 그 옆으로 다가가 안쪽을 살피려 하자 안에서 문을 열고 젊고 예쁜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손각은 이 여자가 주인집 딸이겠거니 싶어 인사를 하려 하자 여자는 놀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각이 거북해 멍하니 서 있으니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나와서,

"무슨 용무로 이곳에 오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손각은,

"지나가다 들어온 사람이오. 무례를 범해 미안하오."

하고 멋대로 대문 안으로 들어온 일을 사과했다.

그러자 청의를 입은 소녀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처음에 봤던 여자가 소녀를 데리고 나왔다. 손각은 소녀를 향해,

"이 분은 누구신가."

하고 묻자 소녀는,

"원 장관(長官)의 따님으로 이곳 주인이세요."

하고 말했다.

"주인은 이미 결혼을 하셨는가."

하고 손각이 또 묻자,

"아직 결혼은 하지 않으셨어요."

하고 소녀가 대답했다.

그 뒤 여자와 소녀는 같이 들어가더니 곧 소녀에게 다과를 가져오게 하여 건네며

"나그네 마음에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하고 말했다. 이미 여자에게 연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손각은,

"나는 가난한 나그네로, 학문도 재주도 없는 것에 비해 원 씨는 재산이 많을뿐만 아니라 현명하기까지 하니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만약 결혼할 수 있다면 매우 경사스러울 것이오."

하고 결혼신청을 하자 여자는 승낙하고 소녀를 중매인으로 세워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동시에 손각은 여자 집에 그대로 눌러앉아 데릴사위가 되었다.

그리고 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손각은 어느 날 친척인 장한운(張閑雲)이란 사람을 떠올리고는 오랜만에 그 집에 갔다. 한운은 손각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자네 낯빛이 무척 나쁘군. 이건 분명 요괴한테 홀린 게야."

하고 말하니 손각은 별로 짚이는 데가 없어서,

"그다지 의심스러운 일은 없는걸."

하고 믿지 않았다.

"사람은 천지음양의 기를 받아 혼백을 간직하고 있네. 혹 양이 쇠하고 음이 자라나면 그 빛이 홀연 겉에 드러나지만 본인은 모르지."

하고 한운이 주장해 손각은 원 씨의 데릴사위가 된 일을 말했다. 그러자 한운이,

"그건 이상하군. 속히 떠나게나."

하고 권했지만 손각은,

"그렇지만 원 씨는 재산도 있으면서 현명한 여자인데, 나를 위해 정말 애쓴다네. 그 은혜를 두고 떠날 수는 없어."

하며 그 말을 듣지 않으므로 한운은 화를 내며,

"사악한 요괴의 괴이한 은혜는 은혜라고 하지 않고, 또 거기에 등을 돌린다고 불의라고 하지 않아. 내 집에 보검이 있으니 빌려 주겠네. 그걸 차고 가면 요마(妖魔) 같은 건 천 리 밖으로 도망갈 터이니."

하고 말하고 칼 한 자루를 꺼내 왔다.

손각은 마음속으로 망설이면서도 그 검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자 원 씨는 벌써 그걸 알아채고,

"당신은 원래 가난한 것을 제가 불쌍히 여겨 부부가 되어 정이 날로 깊어졌음에도 그 은의(恩義)를 잊고 저를 버리려고 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처사가 아닌가요."

하고 말하며 울었다. 손각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웠다.

"이건 나의 본의가 아니라 친척인 장한운이 억지로 시켜 할 수 없이 하려던 거요. 부디 화를 거두어 주시오. 내 다시 딴마음 먹지 않으리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러자 원 씨는 손각이 갖고 온 검을 손에 들고 젓가락 같이 뚝뚝 부러뜨렸다. 손각은 겁이 나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것도 무서워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원 씨는 방긋 웃으며 손각의 얼굴을 보고,

"수년간 같이 살며 이런 사이가 됐으니 결코 낭군을 해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고 말했다. 손각은 도망치는 것도 무서워 그대로 원 씨의 사위로 남았다. 그 뒤 손각이 장한운을 만나 그날 일을 말하자 한운은 기겁하며,

"그런 괴이한 변고가 있나."

하고 다시는 손각과 만나지 않았다.

이윽고 원 씨는 두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매우 영리해 이십 세가 되지 않은 적부터 자주 집안 일을 도왔다. 그때가 되서야 손각은 관운이 트였는지 당 수도 장안(長安)으로 부임받게 되어 일가 모두 출발했다. 서주(瑞州)란 곳에 닿자 원 씨는 손각을 향해,

"서주 결산사(決山寺)란 절에 친한 스님이 있어요. 동서(東西)로 헤어지고 수십 년이 지났으니 꼭 만나보고 싶어요."

하고 말해 결산사로 가 주지인 노승을 만났지만 노승은 원 씨를 알지 못했다. 원 씨는 다시 품에서 벽옥의 고리 장식을 꺼내 노승 앞에 놓고,

"이건 이 절의 물건이오."

하고 말했지만 노승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때 뜰 저편 수목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나와 울어댔다. 그걸 본 원 씨는 무척 슬픈듯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붓을 빌려 벽에 시를 써내려 가더니, 다 쓰자 옆에 있는 두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울다 손각이 있는 쪽을 향해,

"이제부터 영원한 이별이에요."

하고 입었던 옷을 찢어 던지니 불그스름한 얼굴에 둥근 눈의 커다란 늙은 원숭이였다. 그걸 본 모두가 놀라는 동안 늙은 원숭이는 뜰 저편의 큰 나무 위로 뛰어올라 남편과 아이 쪽를 보며 울다가, 이윽고 울창한 푸른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손각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울며 슬퍼했다.

그다음에 손각은 노승을 향해,

"이것에 대해 뭔가 짐작 가는 데가 있소."

하고 물었다. 노승은 오랫동안 옛날 일을 추념하더니,

"소승이 아직 사미였을 무렵 암컷 원숭이 한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현종(玄宗) 황제의 칙사 고력사(高力士)가 이 절에 와서 그 원숭이가 민첩한 것을 보고는, 비단을 두고 원숭이를 데려가 현종에게 바쳤소. 현종도 그 원숭이를 무척 아껴 상양궁(上陽宮)에서 키우게 했는데, 안녹산(安禄山)의 난이 일어나 원숭이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들었소만 지금 잘 생각해 보니 이 고리 장식은 늘 그 원숭이 목에 끼고 있던 거요."

하고 말했다. 손각은 그걸 듣고는 더욱더 슬퍼져 장안에 가는 걸 중지하고 돌아갔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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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0. 23:38 일본동화

巨男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21/files/3313_10260.html


큰 남자와 어머니가 사는 곳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어느 숲 속였어요.

큰 남자의 어머니는 무서운 마녀였어요. 독수리와 같이 높은 코에 뱀과 같이 날카로운 눈을 가진 무서운 마녀였답니다.


어느 달밤의 일이었어요.

마녀와 큰 남자가 잠이 들었을 무렵 누군가 집 밖에서 대문을 두드렸어요. 큰 남자가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두 여자가 한 소녀를 데리고 서 있었어요.

"이 분은 이 나라의 공주님입니다. 저희는 시녀입니다. 오늘 공주님을 모시고 숲으로 놀러 나왔는데 길을 잃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오늘 하룻밤만 묵을 곳을 빌려 주십시오." 하고 한 여자가 말했어요.

그러자 안에서,

"들어오세요. 누추한 곳입니다만, 마음 편히 쉬고 가십시오." 하고 마녀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래서 셋은 안으로 들어가 쉬었어요.

다음 날 아침, 큰 남자가 눈을 뜨자 두 여자는 까만 새로, 공주님은 하얀 새로 변해 있었어요. 마녀가 마법을 부려 그렇게 된 것이었어요.

마녀는 큰 남자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세 마리 새를 창문으로 날려 보냈어요. 세 마리 새는 날아갔어요. 하지만 하얀 새는 저녁이 되자 구슬피 울며 마녀의 집으로 돌아왔어요. 큰 남자는 가엽게 여겨 몰래 하얀 새를 기르기로 했답니다. 낮에는 들판에 놓아주고, 밤에는 자기 침대 안에서 재웠어요.


큰 남자가 커질수록 마녀는 점점 나이를 먹어 결국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매일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자식인 큰 남자에게 마법을 가르쳤어요. 하지만 그 마법은 모두 인간을 가지각색의 새로 변하게 하는 거였어요.

차차 마녀는 더욱더 약해져 이제 죽을 것 같이 되었어요. 이때 마법을 풀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그 하얀 새는 영원히 공주님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큰 남자는 마녀의 머리맡에 다가가,

"지금까지 어머니는 인간을 가지각색의 새로 변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아직 마법을 푸는 건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어요.

"그럼 가르쳐 주마." 하고 마녀는 말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소리가 모기만 했어요.

"어머니, 분명히 말해 주세요!"

큰 남자는 마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어요.

"새가 눈물을 흘리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단다……" 이것만 말하고 마녀는 머리를 늘어뜨린 채 죽고 말았어요.

큰 남자는 죽은 마녀를 하얀 관에 모시고 야자나무 밑동에 묻었어요. 그리고 바로 하얀 새를 데리고 숲에 있는 집을 나섰어요.

큰 남자는 수도로 상경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도중에 어떻게 해서든 하얀 새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려고 했어요. 머리를 두드리고 궁둥이를 꼬집어 봤어요. 하지만 하얀 새는 절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요. 그저 구슬픈 듯한 소리를 지를 뿐이었답니다. 끝에 가서는 불쌍하게 느껴져 큰 남자는 어느샌가 하얀 새에게 뺨을 비비고 있었어요. 그리고 큰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요.

큰 남자는 밤낮없이 걸어 집을 나선지 칠 일째에 오고자 했던 수도에 닿았어요. 하지만 수도 사람들은 큰 남자가 무서운 마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큰 남자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중 한 남자가 대표가 되어 임금님이 살고 계신 궁전에 찾아갔어요. 그리고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임금님 궁전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리석 건물이 아닌 것은 옥에 티라고 한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대리석 탑이라도 세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군. 그게 좋겠어. 그런데 대리석이라고 하는 건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여기서 죽 남쪽으로 산 하나와 사막 하나를 넘어가면 한 부락에 닿습니다. 그곳에 대리석이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러면 누가 가지러 가는 건가?"

"그건 지금 수도에 있는 큰 남자가 좋겠습니다. 그는 키가 야자나무만 하고 한걸음에 작은 언덕을 넘습니다."

"그럼 그 남자를 부르도록."


큰 남자는 궁전에 불려 갔어요. 그리고 임금님으로부터 대리석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도망치면 안 되기에 큰 남자의 발을 쇠사슬로 묶었어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큰 남자는 말하고, 역시 하얀 새를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어요. 큰 남자가 나아갈수록 궁전에 쌓인 쇠사슬이 줄어들었어요. 정확히 십구 일째 되는 날에 그 쇠사슬이 다 없어져 끝이 굵은 기둥에 묶여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펴졌어요.

그때는 큰 남자도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대리석이 있는 부락에 도착해 있었어요. 부락 사람들은 매우 친절해서 대리석을 원하는 대로 내주었어요. 큰 남자는 커다란 대리석 세 개를 받아 짊어지고 하얀 새를 그 위에 앉히고 귀로에 올랐어요.

수도에서는 팽팽했던 쇠사슬이 느슨해졌기에 사람들은 그걸 끌어당겼어요. 돌아가는 길에는 무거운 돌을 가지고 있었기에 큰 남자는 삼십 일 걸려 겨우 수도에 도착했어요.

괴롭고 긴 여행인 탓에 큰 남자는 초라한 고목처럼 되었어요. 하지만 쉬지도 못한 채 바로 그날부터 궁전의 샘 근처에 대리석으로 탑을 쌓으란 분부를 받았어요. 그래도 착한 큰 남자는 결코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답니다. 명령 받은 대로 매일매일 밤낮으로 망치와 끌만 가지고 대리석을 잘라 점점 쌓아 올렸어요. 큰 남자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 하얀 새를 등에 앉혔어요. 하얀 새는 얌전하게 앉아 있었어요. 큰 남자는 망치를 휘두르며 마치 인간에게 말하듯 하얀 새에게 말했어요.

"너는 대체 어떻게 해야 눈물을 흘리는 거니? 너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 거야? 너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영원히 공주님이 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네가 불쌍해. 그러니까 어서 아름답던 예전의 공주님으로 돌아가 주렴."

이런 때 하얀 새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큰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요.

큰 남자의 작업은 점점 진행되었어요. 늦은 밤에도 쌓아올린 탑 꼭대기에서 망치 소리가 수도 하늘에 울려 퍼졌어요. 수도 사람들은 잠자기 전 항상 창을 열어 큰 남자가 일하는 탑 위를 보았어요. 그곳에는 별과 같은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어요.

삼월이 지나자 큰 남자가 가져온 대리석이 다 떨어져 버렸어요. 탑의 높이는 궁전에 있는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높아졌어요. 큰 남자는 다시 커다란 대리석을 세 개 받아 수도로 돌아왔어요. 바로 그날부터 망치와 끌을 가지고 그걸 자르기 시작했어요.

탑은 더욱더 높아졌답니다.

하늘에 구름이 껴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큰 남자의 불은 단 하나의 별과 같이 오도카니 떠올랐어요.


바람이 조금 센 초저녁이었어요. 수도 사람들은 창문에서 탑 위에 있는 불을 우러러보았어요. 불은 바람 때문에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때 처음으로 큰 남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임금님도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탑 위를 보았어요. 윙윙 부는 바람 사이로 큰 남자의 망치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어요. 역시 임금님도 큰 남자를 불쌍히 여기게 되었는지,

"이런 밤에 일하는 건 미안하군. 그리고 그 남자는 얌전해. 내일은 이제 일을 그만두게 하자." 하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런 건 조금도 모른 채 큰 남자는 계속 일을 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얀 새를 울려 공주님이 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문득 큰 남자는 자신이 죽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포근한 큰 남자의 등에서 잠들어 있던 하얀 새에게 말을 걸었어요.

"내가 죽으면 너는 슬프지 않니?"

그러자 하얀 새는 눈을 뜨고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하는 듯이 날개를 쳤어요.

"내가 죽으면 안 되는 거니? 그렇다면 내가 죽는다면 너는 눈물을 흘리겠구나. 좋아! 나는 너를 위해 천국에 갈 테다."

큰 남자는 일어서서 등에서 하얀 새를 내려놓았어요. 하얀 새는 막으려고 큰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어요. 큰 남자는 하얀 새와 마지막으로 뺨을 비비고,

"그럼 예쁜 하얀 새야, 안녕. 너는 원래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돌아가렴……" 하고 말하고 높은 탑 위에서 몸을 던졌어요. 땅에 떨어지는 즉시 죽고 말았어요.

하얀 새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눈물이 폭포와 같이 쏟아졌어요. 그리고 그 순간 마법이 풀려 다시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돌아갔어요. 공주는 흐느껴 울며 높은 탑 계단을 구르는 듯 달려 내려와 아버지인 임금님의 방에 뛰어들어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일을 임금님에게 이야기했어요. 임금님은 그걸 듣고 면목이 없어 큰 남자에게 사죄하고 다시 감사했어요.

이윽고 임금님으로부터 수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도 사람들도 울며 큰 남자에게 잘못을 빌었어요.

큰 남자의 시신은 월계수 잎으로 덮여 수도 동쪽에 있는 모래 언덕에 묻혔어요.

공주는 임금님이나 어머니인 왕비에게 자주 말씀드렸답니다.

"저는 언제까지고 하얀 새로 큰 남자의 등에 머물고 싶었어요."


하늘에 구름이 껴 금성 하나만이 흐릿하게 보이는 늦은 밤이면 남국의 사람들은 지금도,

"저건 큰 남자의 불이다." 하고 하늘을 우러러본답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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