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일각여삼추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2014. 1. 10. 23:38 일본동화

巨男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21/files/3313_10260.html


큰 남자와 어머니가 사는 곳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어느 숲 속였어요.

큰 남자의 어머니는 무서운 마녀였어요. 독수리와 같이 높은 코에 뱀과 같이 날카로운 눈을 가진 무서운 마녀였답니다.


어느 달밤의 일이었어요.

마녀와 큰 남자가 잠이 들었을 무렵 누군가 집 밖에서 대문을 두드렸어요. 큰 남자가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두 여자가 한 소녀를 데리고 서 있었어요.

"이 분은 이 나라의 공주님입니다. 저희는 시녀입니다. 오늘 공주님을 모시고 숲으로 놀러 나왔는데 길을 잃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오늘 하룻밤만 묵을 곳을 빌려 주십시오." 하고 한 여자가 말했어요.

그러자 안에서,

"들어오세요. 누추한 곳입니다만, 마음 편히 쉬고 가십시오." 하고 마녀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래서 셋은 안으로 들어가 쉬었어요.

다음 날 아침, 큰 남자가 눈을 뜨자 두 여자는 까만 새로, 공주님은 하얀 새로 변해 있었어요. 마녀가 마법을 부려 그렇게 된 것이었어요.

마녀는 큰 남자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세 마리 새를 창문으로 날려 보냈어요. 세 마리 새는 날아갔어요. 하지만 하얀 새는 저녁이 되자 구슬피 울며 마녀의 집으로 돌아왔어요. 큰 남자는 가엽게 여겨 몰래 하얀 새를 기르기로 했답니다. 낮에는 들판에 놓아주고, 밤에는 자기 침대 안에서 재웠어요.


큰 남자가 커질수록 마녀는 점점 나이를 먹어 결국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매일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자식인 큰 남자에게 마법을 가르쳤어요. 하지만 그 마법은 모두 인간을 가지각색의 새로 변하게 하는 거였어요.

차차 마녀는 더욱더 약해져 이제 죽을 것 같이 되었어요. 이때 마법을 풀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그 하얀 새는 영원히 공주님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큰 남자는 마녀의 머리맡에 다가가,

"지금까지 어머니는 인간을 가지각색의 새로 변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아직 마법을 푸는 건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어요.

"그럼 가르쳐 주마." 하고 마녀는 말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소리가 모기만 했어요.

"어머니, 분명히 말해 주세요!"

큰 남자는 마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어요.

"새가 눈물을 흘리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단다……" 이것만 말하고 마녀는 머리를 늘어뜨린 채 죽고 말았어요.

큰 남자는 죽은 마녀를 하얀 관에 모시고 야자나무 밑동에 묻었어요. 그리고 바로 하얀 새를 데리고 숲에 있는 집을 나섰어요.

큰 남자는 수도로 상경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도중에 어떻게 해서든 하얀 새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려고 했어요. 머리를 두드리고 궁둥이를 꼬집어 봤어요. 하지만 하얀 새는 절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요. 그저 구슬픈 듯한 소리를 지를 뿐이었답니다. 끝에 가서는 불쌍하게 느껴져 큰 남자는 어느샌가 하얀 새에게 뺨을 비비고 있었어요. 그리고 큰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요.

큰 남자는 밤낮없이 걸어 집을 나선지 칠 일째에 오고자 했던 수도에 닿았어요. 하지만 수도 사람들은 큰 남자가 무서운 마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큰 남자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중 한 남자가 대표가 되어 임금님이 살고 계신 궁전에 찾아갔어요. 그리고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임금님 궁전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리석 건물이 아닌 것은 옥에 티라고 한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대리석 탑이라도 세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군. 그게 좋겠어. 그런데 대리석이라고 하는 건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여기서 죽 남쪽으로 산 하나와 사막 하나를 넘어가면 한 부락에 닿습니다. 그곳에 대리석이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러면 누가 가지러 가는 건가?"

"그건 지금 수도에 있는 큰 남자가 좋겠습니다. 그는 키가 야자나무만 하고 한걸음에 작은 언덕을 넘습니다."

"그럼 그 남자를 부르도록."


큰 남자는 궁전에 불려 갔어요. 그리고 임금님으로부터 대리석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도망치면 안 되기에 큰 남자의 발을 쇠사슬로 묶었어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큰 남자는 말하고, 역시 하얀 새를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어요. 큰 남자가 나아갈수록 궁전에 쌓인 쇠사슬이 줄어들었어요. 정확히 십구 일째 되는 날에 그 쇠사슬이 다 없어져 끝이 굵은 기둥에 묶여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펴졌어요.

그때는 큰 남자도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대리석이 있는 부락에 도착해 있었어요. 부락 사람들은 매우 친절해서 대리석을 원하는 대로 내주었어요. 큰 남자는 커다란 대리석 세 개를 받아 짊어지고 하얀 새를 그 위에 앉히고 귀로에 올랐어요.

수도에서는 팽팽했던 쇠사슬이 느슨해졌기에 사람들은 그걸 끌어당겼어요. 돌아가는 길에는 무거운 돌을 가지고 있었기에 큰 남자는 삼십 일 걸려 겨우 수도에 도착했어요.

괴롭고 긴 여행인 탓에 큰 남자는 초라한 고목처럼 되었어요. 하지만 쉬지도 못한 채 바로 그날부터 궁전의 샘 근처에 대리석으로 탑을 쌓으란 분부를 받았어요. 그래도 착한 큰 남자는 결코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답니다. 명령 받은 대로 매일매일 밤낮으로 망치와 끌만 가지고 대리석을 잘라 점점 쌓아 올렸어요. 큰 남자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 하얀 새를 등에 앉혔어요. 하얀 새는 얌전하게 앉아 있었어요. 큰 남자는 망치를 휘두르며 마치 인간에게 말하듯 하얀 새에게 말했어요.

"너는 대체 어떻게 해야 눈물을 흘리는 거니? 너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 거야? 너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영원히 공주님이 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네가 불쌍해. 그러니까 어서 아름답던 예전의 공주님으로 돌아가 주렴."

이런 때 하얀 새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큰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요.

큰 남자의 작업은 점점 진행되었어요. 늦은 밤에도 쌓아올린 탑 꼭대기에서 망치 소리가 수도 하늘에 울려 퍼졌어요. 수도 사람들은 잠자기 전 항상 창을 열어 큰 남자가 일하는 탑 위를 보았어요. 그곳에는 별과 같은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어요.

삼월이 지나자 큰 남자가 가져온 대리석이 다 떨어져 버렸어요. 탑의 높이는 궁전에 있는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높아졌어요. 큰 남자는 다시 커다란 대리석을 세 개 받아 수도로 돌아왔어요. 바로 그날부터 망치와 끌을 가지고 그걸 자르기 시작했어요.

탑은 더욱더 높아졌답니다.

하늘에 구름이 껴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큰 남자의 불은 단 하나의 별과 같이 오도카니 떠올랐어요.


바람이 조금 센 초저녁이었어요. 수도 사람들은 창문에서 탑 위에 있는 불을 우러러보았어요. 불은 바람 때문에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때 처음으로 큰 남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임금님도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탑 위를 보았어요. 윙윙 부는 바람 사이로 큰 남자의 망치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어요. 역시 임금님도 큰 남자를 불쌍히 여기게 되었는지,

"이런 밤에 일하는 건 미안하군. 그리고 그 남자는 얌전해. 내일은 이제 일을 그만두게 하자." 하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런 건 조금도 모른 채 큰 남자는 계속 일을 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얀 새를 울려 공주님이 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문득 큰 남자는 자신이 죽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포근한 큰 남자의 등에서 잠들어 있던 하얀 새에게 말을 걸었어요.

"내가 죽으면 너는 슬프지 않니?"

그러자 하얀 새는 눈을 뜨고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하는 듯이 날개를 쳤어요.

"내가 죽으면 안 되는 거니? 그렇다면 내가 죽는다면 너는 눈물을 흘리겠구나. 좋아! 나는 너를 위해 천국에 갈 테다."

큰 남자는 일어서서 등에서 하얀 새를 내려놓았어요. 하얀 새는 막으려고 큰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어요. 큰 남자는 하얀 새와 마지막으로 뺨을 비비고,

"그럼 예쁜 하얀 새야, 안녕. 너는 원래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돌아가렴……" 하고 말하고 높은 탑 위에서 몸을 던졌어요. 땅에 떨어지는 즉시 죽고 말았어요.

하얀 새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눈물이 폭포와 같이 쏟아졌어요. 그리고 그 순간 마법이 풀려 다시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돌아갔어요. 공주는 흐느껴 울며 높은 탑 계단을 구르는 듯 달려 내려와 아버지인 임금님의 방에 뛰어들어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일을 임금님에게 이야기했어요. 임금님은 그걸 듣고 면목이 없어 큰 남자에게 사죄하고 다시 감사했어요.

이윽고 임금님으로부터 수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도 사람들도 울며 큰 남자에게 잘못을 빌었어요.

큰 남자의 시신은 월계수 잎으로 덮여 수도 동쪽에 있는 모래 언덕에 묻혔어요.

공주는 임금님이나 어머니인 왕비에게 자주 말씀드렸답니다.

"저는 언제까지고 하얀 새로 큰 남자의 등에 머물고 싶었어요."


하늘에 구름이 껴 금성 하나만이 흐릿하게 보이는 늦은 밤이면 남국의 사람들은 지금도,

"저건 큰 남자의 불이다." 하고 하늘을 우러러본답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20:03 일본괴담

酒友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51_16636.html


샤(車)라고 하는 남자는 가난하면서 술만 마셨다. 밤마다 세 잔 정도의 벌주를 먹이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머리맡에는 항상 술을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 눈을 떠 뒤척이고 있으니 누군가 같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이불이 벗겨져 떨어진 까닭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대어 쓰다듬어 보자 털이 덥수룩하게 만져졌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큰 고양이인 것 같았다. 불을 켜고 보니 여우였는데 지독히 술에 취해있는 듯 쿨쿨 자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머리맡 술병을 보자 비어있었다. 샤는 웃으며,

"이 녀석은 내 술친구로군."

하고 말하고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이불을 덮어주고 난 다음 자신도 옆에서 자려 했지만 여우가 어떻게 나올지 보고 싶어 불을 끄지 않고 보고 있었다. 여우는 한밤중에 깨어 하품했다. 샤는 웃으며,

"잘 잤구나."

하고 말하고 이불을 벗기니 유생(儒者)의 갓을 쓴 수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일어나 평상 앞에서 절을 하며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사했다. 샤는,

"난 술꾼이라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지만 자네는 나의 포숙(鮑叔)이네. 혹시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술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고 소매를 끌어 평상 위에 올리고 또 함께 잤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부터 자네는 매일 밤 오게나, 의심하지 말고 말이지."

여우는 승낙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여우는 이미 없었다. 맛있는 술을 병 가득히 채워놓고 여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니 과연 여우가 왔다. 샤는 여우를 옆에 앉히고 즐겁게 마셨는데, 여우는 술이 셀뿐만 아니라 농담도 잘했다. 샤는 그 여우와 더 일찍 알게 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게 되었다. 한 번은 여우가 말했다.

"항상 좋은 술을 얻어먹기만 해서야, 어떻게 해야 자네의 후의에 보답할 수 있을까."

샤는 말했다.

"그런 건 어찌 되든 좋지 않은가."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가난하니까 술을 살 돈도 부족하지 않나. 내 자네 술값을 한 번 주선해 보겠네."

다음 날 밤 여우는 다시 왔다.

"지금부터 동남쪽으로 칠 리(里) 가면 길가에 돈이 떨어져 있을 걸세. 빨리 가서 주워오게나."

샤는 그 말에 따라 다음 날 아침 일찍 갔다. 과연 이 엔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걸 주워 괜찮은 안주를 사 그날 밤 술에 보탰다.

여우는 다시 말했다.

"이 집 뒤에 움막이 있으니 열어 보게나."

샤는 여우 말대로 찾아보았다. 과연 움막이 있어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샤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내 지갑에도 돈이 얼마간 있으니, 쓸데없이 술 사는 걸 근심하지 말게나 인가."[각주:1]

여우는 말했다.

"그게 아니라네. 수레(車)의 바퀴 자국에 고인 물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좀 더 즐거운 일을 생각하세나."

그 다음 만난 때 여우는 샤에게 말했다.

"시장에 당아욱 값이 매우 싸네, 이것이야말로 횡재가 아니겠는가."

그 길로 샤는 당아욱을 사오 석(石) 샀다. 사람들은 모두 그걸 비웃었지만, 이윽고 큰 가뭄이 들어 곡식이 죄다 마르고 당아욱만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샤는 당아욱 씨를 팔아 열 배의 이익을 얻어 돈도 점점 쌓여 비옥한 밭을 이백 묘(畝)[각주:2]나 경작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보리를 많이 심자 잘 자라 많이 거둬들이고, 수수를 심자 수수가 잘 자라 많이 거둬들였다. 씨를 뿌리고 심는 건 늦든 이르든 전부 여우의 판단을 따랐다. 샤와 여우는 나날이 친밀해졌다. 여우는 샤의 아내를 형수라고 부르고 아이를 자신의 애처럼 귀여워했다. 시간이 지나 샤가 죽자 마침내 여우도 오지 않게 되었다.

  1.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시 제원씨별업(題袁氏別業)의 시구(詩句) [본문으로]
  2. 1묘가 30평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16:45 일본괴담

山の怪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482_11832.html


도사 나가오카 군(土佐長岡郡) 깊숙한 곳에 모토야마(本山)란 곳이 있다. 지금은 정(町) 제도에 의해 정으로 됐지만 예전에는 모토야마 읍(郷)이라고 하는 한 지방을 이루고 있었다. 시고쿠사부로(四国三郎)의 요시노가와(吉野川)가 마을 안을 흐르고 촌락에 있는 건 그 주위에 있는 약간의 평지로, 한쪽에는 고봉(高峰) 슌타케(駿岳)가 우뚝 솟아 있었다. 모토야마에는 요시노부(吉延)라고 하는 산골짜리가 있어서 그곳에 멧돼지인지 사슴인지 큰 짐승이 살아 사냥꾼 중 그곳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이가 없었지만 그 골짜기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일들이 있어 기가 약한 이는 가지 않았다. 초겨울이었다. 한베라고 하는 사냥꾼이 총과 덫을 가지고 골짜기로 향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골짜기에 태연하게 들어가다니 대담한 남자였다. 그가 골짜기에 도착한 건 아직 새벽이 되기 전으로 수풀 아래가 캄캄했다. 그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짐승이 다닐만한 곳을 손으로 더듬어 덫을 치고 옆에 있는 바위 그늘에 앉아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세워놓고는 허리 주머니에서 담뱃대를 꺼내 담배를 채우더니 화약심지의 불을 옮겨붙여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짐승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찬바람이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가 서리가 되려던 이슬이 때때로 뺨에 떨어져 내렸다. 한베는 담배를 피우면서 귀를 기울여 짐승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머지않아 날이 점점 밝아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 쪽을 힐끗 보자 하늘은 푸르죽죽해서는 빛을 잃은 별 두 개만이 솔송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수풀 아래도 차츰 밝아져 나뭇잎 색이나 모양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덫을 친 곳은 그곳에서 오육 간(間)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곳은 산기슭의 작은 도랑처럼 움푹 패인 곳이었다. 한베는 아침 먹잇감을 찾는 짐승이 움직일 시각이 되었다고 생각해,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어 허리에 단단하게 차고 세워두었던 총을 쥐어 언제라도 쏠 수 있도록 몸을 앞으로 향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산지렁이 한 마리가 어디선가 뱀처럼 기어와서는 덫에 걸렸다. 한베는 그걸 보고는 생각했다.

(저렇게 큰 지렁이도 있군)

지렁이는 이윽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옆 노란 풀숲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있었다. 그건 흙빛의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그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기어나와 덫 옆에 잠시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이윽고 입을 벌리는가 싶더니 산지렁이를 덥석 물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삼켜 버렸다. 개구리는 겨우 일이 끝났다고 말하는듯 웅크렸다.

어디에 있었는지 시커먼 땅에서 붉은 반점을 지닌 작은 뱀이 개구리 뒤에서 기어나왔다. 한베는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었다. 뱀은 개구리 옆에서 목을 쳐들고 빨간 바늘과 같은 혀를 쉭쉭 한두번 내밀더니 개구리의 다리 하나를 물었다. 개구리는 깜짝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몸은 차례로 뱀의 목구멍으로 사라져 갔다.

(기묘한 일도 있는 법이구먼)

한베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 한베의 눈앞으로 잿빛털의 커다란 무언가가 스쳤다. 골짜리 아래쪽 수풀 속에서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갑작스레 튀어나와 한베 코끝을 스치듯이 올가미 옆으로 갔다. 한베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멧돼지는 개구리를 삼키고 반대편으로 기어가던 뱀을 한 입에 낼름 삼켜 버렸다. 동시에 한베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송아지 같은 멧돼지가 굉연한 총소리와 함께 지축을 울리며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총소리가 작게 울릴뿐 멧돼지는 여유롭게 반대편으로 가고 말았다. 한베는 아차 하며 두 번째 탄을 서둘러 채워넣었지만 다 채워넣었을 때는 이미 멧돼지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은 기묘한 날이군)

한베는 총을 든 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재수가 없을 것 같군. 집에 가자, 가)

한베는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혀를 차며 처음 올라온 길을 내려가 골짜기 아래쪽으로 향했다. 솔송나무가 자라 살짝 어두운 곳이 있었다. 한베는 그곳에 도착하자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어깨에 걸었다. 송라(松蘿)가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드리워진 커다란 솔송나무 그늘에서 턱수염이 새하얀 노승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한베 앞을 가로막더니 두 손을 벌렸다.

"이 괴물 자식"

한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어 노승의 정면을 내려쳤다. 그러자 둘이 되어 쓰러졌을 노승이 두 명이 되어 나란히 손을 벌렸다. 대담한 한베였지만 여기에는 조금 놀랐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 건가"

한베는 다시 오른쪽 요승을 정면에서 베고, 다음에는 왼쪽 승려의 몸통을 올려치듯 베었다.

"이건 어떠냐"

요승은 넷이 되어 손을 벌렸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가"

한베는 구별 없이 마구 칼을 휘둘렀다. 요승은 열네다섯 명이 되었다.

"젠장"

한베는 난도질하듯 칼을 휘둘렀다. 자르면서 보니 요승의 몸이 잘리는 족족 더 많아졌다. 한베는 여기서 이래봐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 칼을 휘둘러 한쪽을 뚫고 달렸다. 돌이 비와 같이 한베를 향해 날아왔다. 한베도 맞서서 휘둘렀다. 백 명쯤 되는 요승이 각각 손에 돌을 들고 던지고 있었다. 돌은 쉴 틈도 없이 한베의 몸을 두드렸다. 한베는 필사적으로 요승 무리로 달려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한베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휘둘렀다. 그리고 기진맥진해 나가떨어질 무렵 나무 뿌리인지 바위 모서리에 발이 걸려 칼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우물쭈물하고 있어선 요승에게 목숨을 빼앗길 것 같아 그는 쭈그려 앉아 손에 잡히는 물건을 뭐든 집어 던졌다.

요승 무리는 질려 하나둘씩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베는 힘을 얻어 더 열심히 던졌다. 요승의 수는 점점 더 줄어 이제 여기저기 한두명 정도 남는가 했더니 결국 다 없어졌다.

한베는 맥이 풀렸다. 그것과 동시에 꿈에서 깬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그곳에 요승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돌을 마구 던졌다. 그 돌은 자기 가슴하고 머리에 맞았다. 그는 놀라서 자기 몸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 주위에는 자기 손으로 자기에게 던진 돌로 가득해 얼굴과 머리 한쪽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새하얀 강가의 자갈밭으로 바로 왼쪽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요시노가와(吉野川)의 자갈밭이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11:38 일본괴담

赤い牛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5547_41051.html


나가노 현(長野県) 우에다 시(上田市)에 있는 우에다 성(上田城)은 명장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우에다 성 해자의 물을 메이지 초년에 빼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되자 부근의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아침 일찍 도우네 구경하네 하며 밀어닥쳤다.

그날은 아침부터 활짝 갠 좋은 날씨로, 기후도 초여름답게 따뜻한 날이어서 사람들은 축제 기분으로 물빼기를 시작했다. 작업도 척척 진행되어 물이 빠질수록 커다란 잉어가 펄쩍 뛰어오르거나, 큰 메기가 떠오르거나 해서 해자 주위 곳곳에 함성이 울렸다.

그날 아버지도 반쯤 재미삼아 도우러 갔었는데 정오쯤 되어 해자의 물이 무릎 아래 정도로 줄었을 때, 아버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보자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세 간(間)[각주:1] 가량 앞쪽에서 한 간(間) 반 정도의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뭐지)

하고 아버지가 생각한 순간, 엄청난 물소리를 내며 그 소용돌이가 솟아오른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온몸에 진홍색을 한 동물이 반신을 드러냈다. 그건 이마에 굵은 두 뿔을 지닌 커다란 소였다. 사람들은 놀라서 도망치려 했지만 소도 놀랐는지 해자에서 펄쩍 뛰어올라 화살과 같이 지구마 강(千曲川)에 뛰어들어 물살을 헤엄쳐 건너더니 고마키 산(小牧山)을 타고 넘어 스가와 연못(須川の池)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지금도 물빼기를 할 때 현장에 가서 붉은 소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소년 시절에 자주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다 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하마 같은 수생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마가 일본에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해 그렇게 해석은 어려울 것 같다.

(우에다 모 씨의 이야기)

  1. 한 간(間)은 약 1.8m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