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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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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0. 20:03 일본괴담

酒友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51_16636.html


샤(車)라고 하는 남자는 가난하면서 술만 마셨다. 밤마다 세 잔 정도의 벌주를 먹이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머리맡에는 항상 술을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 눈을 떠 뒤척이고 있으니 누군가 같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이불이 벗겨져 떨어진 까닭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대어 쓰다듬어 보자 털이 덥수룩하게 만져졌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큰 고양이인 것 같았다. 불을 켜고 보니 여우였는데 지독히 술에 취해있는 듯 쿨쿨 자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머리맡 술병을 보자 비어있었다. 샤는 웃으며,

"이 녀석은 내 술친구로군."

하고 말하고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이불을 덮어주고 난 다음 자신도 옆에서 자려 했지만 여우가 어떻게 나올지 보고 싶어 불을 끄지 않고 보고 있었다. 여우는 한밤중에 깨어 하품했다. 샤는 웃으며,

"잘 잤구나."

하고 말하고 이불을 벗기니 유생(儒者)의 갓을 쓴 수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일어나 평상 앞에서 절을 하며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사했다. 샤는,

"난 술꾼이라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지만 자네는 나의 포숙(鮑叔)이네. 혹시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술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고 소매를 끌어 평상 위에 올리고 또 함께 잤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부터 자네는 매일 밤 오게나, 의심하지 말고 말이지."

여우는 승낙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여우는 이미 없었다. 맛있는 술을 병 가득히 채워놓고 여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니 과연 여우가 왔다. 샤는 여우를 옆에 앉히고 즐겁게 마셨는데, 여우는 술이 셀뿐만 아니라 농담도 잘했다. 샤는 그 여우와 더 일찍 알게 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게 되었다. 한 번은 여우가 말했다.

"항상 좋은 술을 얻어먹기만 해서야, 어떻게 해야 자네의 후의에 보답할 수 있을까."

샤는 말했다.

"그런 건 어찌 되든 좋지 않은가."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가난하니까 술을 살 돈도 부족하지 않나. 내 자네 술값을 한 번 주선해 보겠네."

다음 날 밤 여우는 다시 왔다.

"지금부터 동남쪽으로 칠 리(里) 가면 길가에 돈이 떨어져 있을 걸세. 빨리 가서 주워오게나."

샤는 그 말에 따라 다음 날 아침 일찍 갔다. 과연 이 엔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걸 주워 괜찮은 안주를 사 그날 밤 술에 보탰다.

여우는 다시 말했다.

"이 집 뒤에 움막이 있으니 열어 보게나."

샤는 여우 말대로 찾아보았다. 과연 움막이 있어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샤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내 지갑에도 돈이 얼마간 있으니, 쓸데없이 술 사는 걸 근심하지 말게나 인가."[각주:1]

여우는 말했다.

"그게 아니라네. 수레(車)의 바퀴 자국에 고인 물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좀 더 즐거운 일을 생각하세나."

그 다음 만난 때 여우는 샤에게 말했다.

"시장에 당아욱 값이 매우 싸네, 이것이야말로 횡재가 아니겠는가."

그 길로 샤는 당아욱을 사오 석(石) 샀다. 사람들은 모두 그걸 비웃었지만, 이윽고 큰 가뭄이 들어 곡식이 죄다 마르고 당아욱만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샤는 당아욱 씨를 팔아 열 배의 이익을 얻어 돈도 점점 쌓여 비옥한 밭을 이백 묘(畝)[각주:2]나 경작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보리를 많이 심자 잘 자라 많이 거둬들이고, 수수를 심자 수수가 잘 자라 많이 거둬들였다. 씨를 뿌리고 심는 건 늦든 이르든 전부 여우의 판단을 따랐다. 샤와 여우는 나날이 친밀해졌다. 여우는 샤의 아내를 형수라고 부르고 아이를 자신의 애처럼 귀여워했다. 시간이 지나 샤가 죽자 마침내 여우도 오지 않게 되었다.

  1.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시 제원씨별업(題袁氏別業)의 시구(詩句) [본문으로]
  2. 1묘가 30평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16:45 일본괴담

山の怪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482_11832.html


도사 나가오카 군(土佐長岡郡) 깊숙한 곳에 모토야마(本山)란 곳이 있다. 지금은 정(町) 제도에 의해 정으로 됐지만 예전에는 모토야마 읍(郷)이라고 하는 한 지방을 이루고 있었다. 시고쿠사부로(四国三郎)의 요시노가와(吉野川)가 마을 안을 흐르고 촌락에 있는 건 그 주위에 있는 약간의 평지로, 한쪽에는 고봉(高峰) 슌타케(駿岳)가 우뚝 솟아 있었다. 모토야마에는 요시노부(吉延)라고 하는 산골짜리가 있어서 그곳에 멧돼지인지 사슴인지 큰 짐승이 살아 사냥꾼 중 그곳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이가 없었지만 그 골짜기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일들이 있어 기가 약한 이는 가지 않았다. 초겨울이었다. 한베라고 하는 사냥꾼이 총과 덫을 가지고 골짜기로 향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골짜기에 태연하게 들어가다니 대담한 남자였다. 그가 골짜기에 도착한 건 아직 새벽이 되기 전으로 수풀 아래가 캄캄했다. 그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짐승이 다닐만한 곳을 손으로 더듬어 덫을 치고 옆에 있는 바위 그늘에 앉아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세워놓고는 허리 주머니에서 담뱃대를 꺼내 담배를 채우더니 화약심지의 불을 옮겨붙여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짐승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찬바람이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가 서리가 되려던 이슬이 때때로 뺨에 떨어져 내렸다. 한베는 담배를 피우면서 귀를 기울여 짐승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머지않아 날이 점점 밝아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 쪽을 힐끗 보자 하늘은 푸르죽죽해서는 빛을 잃은 별 두 개만이 솔송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수풀 아래도 차츰 밝아져 나뭇잎 색이나 모양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덫을 친 곳은 그곳에서 오육 간(間)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곳은 산기슭의 작은 도랑처럼 움푹 패인 곳이었다. 한베는 아침 먹잇감을 찾는 짐승이 움직일 시각이 되었다고 생각해,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어 허리에 단단하게 차고 세워두었던 총을 쥐어 언제라도 쏠 수 있도록 몸을 앞으로 향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산지렁이 한 마리가 어디선가 뱀처럼 기어와서는 덫에 걸렸다. 한베는 그걸 보고는 생각했다.

(저렇게 큰 지렁이도 있군)

지렁이는 이윽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옆 노란 풀숲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있었다. 그건 흙빛의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그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기어나와 덫 옆에 잠시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이윽고 입을 벌리는가 싶더니 산지렁이를 덥석 물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삼켜 버렸다. 개구리는 겨우 일이 끝났다고 말하는듯 웅크렸다.

어디에 있었는지 시커먼 땅에서 붉은 반점을 지닌 작은 뱀이 개구리 뒤에서 기어나왔다. 한베는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었다. 뱀은 개구리 옆에서 목을 쳐들고 빨간 바늘과 같은 혀를 쉭쉭 한두번 내밀더니 개구리의 다리 하나를 물었다. 개구리는 깜짝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몸은 차례로 뱀의 목구멍으로 사라져 갔다.

(기묘한 일도 있는 법이구먼)

한베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 한베의 눈앞으로 잿빛털의 커다란 무언가가 스쳤다. 골짜리 아래쪽 수풀 속에서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갑작스레 튀어나와 한베 코끝을 스치듯이 올가미 옆으로 갔다. 한베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멧돼지는 개구리를 삼키고 반대편으로 기어가던 뱀을 한 입에 낼름 삼켜 버렸다. 동시에 한베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송아지 같은 멧돼지가 굉연한 총소리와 함께 지축을 울리며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총소리가 작게 울릴뿐 멧돼지는 여유롭게 반대편으로 가고 말았다. 한베는 아차 하며 두 번째 탄을 서둘러 채워넣었지만 다 채워넣었을 때는 이미 멧돼지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은 기묘한 날이군)

한베는 총을 든 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재수가 없을 것 같군. 집에 가자, 가)

한베는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혀를 차며 처음 올라온 길을 내려가 골짜기 아래쪽으로 향했다. 솔송나무가 자라 살짝 어두운 곳이 있었다. 한베는 그곳에 도착하자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어깨에 걸었다. 송라(松蘿)가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드리워진 커다란 솔송나무 그늘에서 턱수염이 새하얀 노승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한베 앞을 가로막더니 두 손을 벌렸다.

"이 괴물 자식"

한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어 노승의 정면을 내려쳤다. 그러자 둘이 되어 쓰러졌을 노승이 두 명이 되어 나란히 손을 벌렸다. 대담한 한베였지만 여기에는 조금 놀랐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 건가"

한베는 다시 오른쪽 요승을 정면에서 베고, 다음에는 왼쪽 승려의 몸통을 올려치듯 베었다.

"이건 어떠냐"

요승은 넷이 되어 손을 벌렸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가"

한베는 구별 없이 마구 칼을 휘둘렀다. 요승은 열네다섯 명이 되었다.

"젠장"

한베는 난도질하듯 칼을 휘둘렀다. 자르면서 보니 요승의 몸이 잘리는 족족 더 많아졌다. 한베는 여기서 이래봐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 칼을 휘둘러 한쪽을 뚫고 달렸다. 돌이 비와 같이 한베를 향해 날아왔다. 한베도 맞서서 휘둘렀다. 백 명쯤 되는 요승이 각각 손에 돌을 들고 던지고 있었다. 돌은 쉴 틈도 없이 한베의 몸을 두드렸다. 한베는 필사적으로 요승 무리로 달려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한베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휘둘렀다. 그리고 기진맥진해 나가떨어질 무렵 나무 뿌리인지 바위 모서리에 발이 걸려 칼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우물쭈물하고 있어선 요승에게 목숨을 빼앗길 것 같아 그는 쭈그려 앉아 손에 잡히는 물건을 뭐든 집어 던졌다.

요승 무리는 질려 하나둘씩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베는 힘을 얻어 더 열심히 던졌다. 요승의 수는 점점 더 줄어 이제 여기저기 한두명 정도 남는가 했더니 결국 다 없어졌다.

한베는 맥이 풀렸다. 그것과 동시에 꿈에서 깬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그곳에 요승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돌을 마구 던졌다. 그 돌은 자기 가슴하고 머리에 맞았다. 그는 놀라서 자기 몸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 주위에는 자기 손으로 자기에게 던진 돌로 가득해 얼굴과 머리 한쪽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새하얀 강가의 자갈밭으로 바로 왼쪽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요시노가와(吉野川)의 자갈밭이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11:38 일본괴담

赤い牛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5547_41051.html


나가노 현(長野県) 우에다 시(上田市)에 있는 우에다 성(上田城)은 명장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우에다 성 해자의 물을 메이지 초년에 빼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되자 부근의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아침 일찍 도우네 구경하네 하며 밀어닥쳤다.

그날은 아침부터 활짝 갠 좋은 날씨로, 기후도 초여름답게 따뜻한 날이어서 사람들은 축제 기분으로 물빼기를 시작했다. 작업도 척척 진행되어 물이 빠질수록 커다란 잉어가 펄쩍 뛰어오르거나, 큰 메기가 떠오르거나 해서 해자 주위 곳곳에 함성이 울렸다.

그날 아버지도 반쯤 재미삼아 도우러 갔었는데 정오쯤 되어 해자의 물이 무릎 아래 정도로 줄었을 때, 아버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보자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세 간(間)[각주:1] 가량 앞쪽에서 한 간(間) 반 정도의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뭐지)

하고 아버지가 생각한 순간, 엄청난 물소리를 내며 그 소용돌이가 솟아오른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온몸에 진홍색을 한 동물이 반신을 드러냈다. 그건 이마에 굵은 두 뿔을 지닌 커다란 소였다. 사람들은 놀라서 도망치려 했지만 소도 놀랐는지 해자에서 펄쩍 뛰어올라 화살과 같이 지구마 강(千曲川)에 뛰어들어 물살을 헤엄쳐 건너더니 고마키 산(小牧山)을 타고 넘어 스가와 연못(須川の池)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지금도 물빼기를 할 때 현장에 가서 붉은 소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소년 시절에 자주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다 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하마 같은 수생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마가 일본에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해 그렇게 해석은 어려울 것 같다.

(우에다 모 씨의 이야기)

  1. 한 간(間)은 약 1.8m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9. 22:54 일본괴담

藍微塵の衣服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52247_47755.html


도쿄 시바(芝) 구에 있던 이야기다. 시바 구 어느 마을에 전당포가 있었는데 그곳 마누라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난 여자애를 두고 병으로 죽어, 남편은 후처를 얻었다.

후처는 순종적인 기질에 늘 유쾌한 얼굴을 한 여자로, 의붓딸에게도 친어머니처럼 애정을 보여주여 의붓딸도 무척 따라 남편도 안심하고 지냈다.

하지만 그 후처가 얼마 안 지나 입을 다물고 점점 말수가 적어지게 되더니 여자를 둘러싼 꽃이 필듯한 따뜻한 분위기는 없어지고 차갑고 딱딱한 것만 남고 말았다.

그것을 눈치챈 건 전당포 주인의 친척 노인이었다. 노인은 이런저런 경험에서 이건 남편이 딴데 마음을 쏟는 이가 있어 마누라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아 부인병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은 어느 날 후처를 자기집으로 불러 물어 보았다.

"자네 요즘 들어 우울한 얼굴인데, 어떻게 된 일인가."

"별로 이렇다 할 일은 없어요."

"그래도, 뭔가 있는 거 같네. 왜냐면 자네 요즘 들어 우울한 얼굴인걸."

"별로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럼 무슨 일인가. 한 번 말해보게. 자네 힘이 되어주려고 하니."

이렇게 한 차례 대화가 오고 간 후 후처는 창백한 얼굴을 들고 말했다.

"제가 이러는 건 무서운 일이 있어서예요. 밤에 자고 있으면 불단 쪽 방하고 자는 방 사이 창호지에 구멍이 뚫리고 여자가 튀어나와서 절을 하니까, 진짜 무섭기도 너무 무서워서 한숨도 잘 수가 없어요. 남편한테 말하는 것도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어떤 여자인가" 하고 노인은 물어 보았다.

"젊고 예쁜 여자예요. 물망초 기모노에 검은 띠를 두르고, 머리는 마루마게[각주:1]로 묶었어요."

"무언가 말하던가."

"아무 말 없이 하얗고 야윈 손을 짚고 제가 있는 쪽으로 절을 하는 거예요."

노인은 바로 전처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을 불러 후처가 말한 이야기를 전했다.

"물망초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고 하는데, 뭔가 짚이는 데가 없는가?"

물망초 기모노는 전처가 무척 좋아해서 평소에 즐겨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남편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건 죽은 아내가 좋아하던 옷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없더니,

"뭔가 미련이 있는 게구먼." 하고 반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럴까요. 장례도 그렇게 잘 치뤄줬고, 아무런 불만이 없을 터입니다만." 남편은 이렇게 말한 후, 옆에 있는 후처 쪽을 보고,

"애는 당신이 그렇게 귀여워 하는데, 불만이 있을 리 없지. 혹시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꾸짖을 테니 깨워주게."

그 다음 날 밤, 남편과 후처는 여자애를 사이에 두고 평소와 같이 다다미 여덟 장의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곳은 광과 접해있는 방으로, 다음에 다다미 넉 장 반 정도의 불단이 놓여 있는 방이 있고, 그 앞으로는 툇마루가 있어 광의 입구와 이어져 있었다.

곧 후처는 잠에서 깼다. 후처는 겁이 나 눈을 떠 어둠 속을 보았다. 그러자 베개 근처로부터 오른쪽 옆에 있던 불단이 있는 방 사이의 창호지가 언제나 같이 뚫려서 물망초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환등기에 비추는 것처럼 분명하게 나타나, 문턱 위쯤에 앉아 하얀 손을 짚었다. 후처는 문득 남편이 자기를 깨우라고 한 말이 떠올라 손을 뻗어 남편의 어깨를 흔들었다.

남편이 눈을 떠서 보니 후처가 자기를 깨웠기에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들어 보았다. 여자는 이제 절을 하고 있었다.

"이봐, 당신 애는 이렇게 귀여움 받고 있는데 무슨 불만이 있어 자꾸 오는 건가." 하고 남편이 꾸짖는 것처럼 말하자, 여자는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감사 인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가, 그런가. 하지만 당신이 오면 이 여자가 무서워하니까 이제 오지 말게." 하고 남편이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두 번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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