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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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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4. 14:06 일본동화

かぶと虫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21/files/45084_42628.html


* 대화의 미카와 방언은 서북 방언을 차용하였습니다.



꽃밭에서 큰 벌레가 한 마리, 붕하고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몸이 무거운지, 천천히 날아올랐어요.

땅에서 일 미터 가량 뜨자 옆으로 날기 시작했어요.

역시 몸이 무거워 천천히 날아가요. 마구간 구석 쪽으로 느릿느릿 날아가요.

보고 있던 작은 다로(太郎)는 마루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리고 맨발로 체를 들고 쫓아 갔어요.

마구간 구석을 지나고 꽃밭에서 보리밭으로 올라가, 풀이 난 턱 위에서 벌레를 덮었어요.

잡고 보니 장수풍뎅이였어요.

"야, 장수풍뎅이다. 장수풍뎅이 잡았다."

하고 작은 다로는 말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작은 다로는 형제가 없이 혼자였기 때문이었어요. 혼자는 이럴 때 너무 재미가 없는 거 같아요.

작은 다로는 마루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클마니, 장수풍뎅이 잡았어."

하고 보여줬어요.

마루에 앉아 말뚝잠을 자던 할머니는 눈을 떠 장수풍뎅이를 보고는,

"음, 게 아딘."

하고 말하고 다시 눈을 감았어요.

"아니야, 장수풍뎅이야."

하고 작은 다로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지만 할머니한테는 장수풍뎅이든 게든 상관이 없어서 흥흥, 중얼중얼하고는 다시 눈을 뜨려고 하지 않았어요.

작은 다로는 할머니 무릎에서 바늘밥을 들어 장수풍뎅이의 뒷다리를 묶었어요. 그리고 마루 위를 걷게 했어요.

장수풍뎅이는 소처럼 비척비척 걸었어요. 작은 다로가 실 끝을 누르자 파닥파닥 마루를 긁었어요.

잠시 그렇게 하던 작은 다로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분명히 장수풍뎅이를 가지고 재미있게 노는 법이 있어요. 누군가 분명히 그걸 알아요.



그래서 작은 다로는 큰 머리에 밀짚모자를 쓴 다음 장수풍뎅이를 실 끝에 묶고 대문을 나섰어요.

낮이라 몹시 조용해서 어디선가 멍석을 터는 소리뿐이었어요.

작은 다로는 제일 먼저 제일 가까운 뽕밭 한가운데 있는 긴페이(金平)의 집에 갔어요. 긴페이의 집에서는 칠면조를 두 마리 기르고 있어서 가끔 마당에 나오고는 했어요. 작은 다로는 그게 무서워서 마당에는 들어가지 않고 산울타리 바깥쪽에서 안쪽을 들여다 보며,

"긴페이, 긴페이."

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어요. 긴페이만 들으면 되니 그랬어요. 칠면조한테는 들리지 않았으면 했어요.

긴페이한테 잘 들리지 않았는지 작은 다로는 몇 번이나 불러야 했어요.

"긴페이는 말이디."

하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긴페이 아버지는 졸린 목소리였어요.

"긴페이는 어젯밤부터 배가 아프다고 해서 잔다. 오널은 같이 못 놀갓다."

"흐음."

하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콧속으로 말하고 작은 다로는 산울타리에서 벗어났어요.

조금 실망이었어요.

그래도 다시 내일이 돼서 긴페이 배가 나으면 같이 놀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작은 다로는 이번에는 한 학년 위인 교이치(恭一) 형 집에 가기로 했어요.

교이치 형네는 작은 농가였지만 주변에 소나무, 동백나무, 감나무, 칠엽수 같은 나무가 잔뜩 있었어요. 교이치 형은 나무 오르기를 잘 하는 까닭에 자주 나무 위에서, 모르고 아래에 지나고 있는 작은 다로 머리 위로 동백나무 열매를 떨어뜨려 놀라게 하곤 했어요.

또 나무에 오르지 않을 때도 교이치 형은 흔히 그늘진 곳이나 뒤에서 으악하고 소리를 질러 놀라게 했어요. 그래서 작은 다로는 교이치 형네 갈 때마다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상하좌우, 뒤까지 조심하면서 슬금슬금 걸어갔어요.

그런데 오늘은 교이치 형은 나무에 올라가지 않았어요. 어디서도 으악 소리 지르며 나타나지 않았어요.

"교이치는 말이야."

하고 닭모이를 주러 나왔던 아주머니가 일러주었어요.

"좀 일이 있어서 어제 미카와(三河)에 있는 친척네 맡겼단다."

"흐음."

하고 작은 다로는 들릴지 안 들릴지 모를 정도 콧속으로 말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이좋았던 교이치 형을 바다 저편에 있는 미카와 마을로 보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안 오가시오?"

하고 서둘러서 작은 다로는 물었어요.

"그야 언젠가 오갓지."

"언제?"

"우분재나 설날에는 오갓지."

"진짜디요, 아주마이. 진짜 설에는 돌아오는 거디요."

작은 다로는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우분재에는 다시 교이치 형하고 놀 수 있어요. 설날에도.



장수풍뎅이를 든 작은 다로는 이번에는 좁은 비탈길을 올라 큰길로 나갔어요.

수레 목수 아저씨 집은 큰길가에 있었어요. 그 집 야스오(安雄) 형은 벌써 중학교에 다닐 만큼 컸어요. 그래도 언제나 작은 다로의 좋은 친구였어요. 땅따먹기 할 때도 숨바꼭질할 때도 같이 놀았어요. 야스오 형는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각별히 존경받고 있었어요. 아무 나뭇잎이나 풀잎도 야스오의 손으로 둘둘 말아서 입에 물면 삐익하고 울려서였어요. 또 야스오 형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도 슬쩍 만져서 재밌는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어서였어요.

수레 목수 아저씨 집에 가깝게 갈수록 작은 다로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야스오 형이 장수풍뎅이로 어떤 재밌는 놀이를 생각해낼까 하고 기대해서였어요.

작은 다로 턱 높이에 있는 미닫이문에 목을 올려 작업장 안을 들여다 보자 야스오 형이 있었어요. 아저씨와 둘이서 작업장 구석에 있는 숫돌에 대패날을 갈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자 오늘은 작업복도 차려입고 검은 앞치마까지 하고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힘을 주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는 놈이네."

하고 아저씨가 잔소리를 했어요. 야스오는 칼 가는 법을 아저씨한테 배우는 것 같았어요. 얼굴이 시뻘게져서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작은 다로가 있는 쪽을 아무리 기다려도 봐주지 않았어요.

결국 작은 다로는 기다리다 지쳐,

"야스오 형, 야스오 형"

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어요. 야스오 형만 들으면 됐어요.

하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 그럴 수는 없었어요. 아저씨가 듣고는 꾸짖었어요. 아저씨는 평소에는 애들 군소리도 잘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다른 일로 짜증이 났는지 굵은 눈썹을 실룩실룩하면서,

"우리 야스오는 이제 오널부터 어른이라 애들 놀이에 못 끼갓다. 애들은 애들하고 놀아라."

하고 내치듯이 말했어요.

그러자 야스오 형이 작은 다로 쪽을 보고 할 수 없다는 듯 슬며시 웃었어요. 그리고 다시 자기 앞으로 눈을 돌려 열중했어요.

벌레가 가지에서 떨어지 듯 힘없이 작은 다로는 문에서 떨어졌어요.

그리고 흐느적흐느적 걸어갔어요.



작은 다로의 가슴에 깊은 슬픔이 북받쳐 올랐어요.

야스오 형은 이제 작은 다로의 옆에는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더 이상 같이 못 놀아요. 배가 아프면 다음 날이 되면 나아요. 미카와에 가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하지만 어른의 세계에 간 사람은 이제 어린이의 세계에는 돌아오지 않아요.

야스오 형은 먼 곳에 가는 게 아니에요. 같은 마을 바로 근처에 있어요. 하지만 오늘부터 야스오 형과 작은 다로는 다른 세계에 있어요. 같이 놀 수 없는 거예요.

작은 다로의 가슴에 슬픔이 하늘과 같이 넓고 깊이 공허하게 퍼졌어요.

어떤 슬픔은 울어서 지울 수가 있어요.

하지만 또 어떤 슬픔은 없어지지 않아요. 울든 어쩌든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 작은 다로의 가슴에 퍼지는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 슬픔이에요.

그래서 작은 다로는 서산 위에 홀로 멍하니 떠있는 붉은 테의 구름을 눈부신 듯 눈썹을 조금 찌푸리며 오랫동안 지켜볼 뿐이었어요. 장수풍뎅이가 어느샌가 손가락을 빠져 나와 도망친 것도 모른 채――.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2. 19:56 일본괴담

義猫の塚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2272_16440.html


엔슈(遠州)의 오마에자키(御前崎)에 세이린인(西林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 주지는 매우 자비로운 남자였는데, 어느 풍랑이 거센 날, 난파선이 있을까 싶어 밖에 나가보았더니 바로 눈 밑에서 파도 사이로 배의 파편 같은 판자 한 장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주지는 산을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 어부 집에 가서는,

"불쌍하니 구해주시게."

하고 말하며 혼자 힘으로 배를 내려고 하므로 어부도 주지의 진심에 감동해 결국 배를 내어 그 고양이를 구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고양이는 세이린인에서 키우게 됐는데 주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들으므로 주지도 무척 귀여워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어느 봄날 그곳 불목하니가 툇마루에서 선잠을 자고 있었는데 작게 야옹야옹 하는듯한 이상한 말소리가 들렸다.

"좋은 날씨가 아닌가. 한 번 신궁 참배라도 다녀오는 게 어떻겠나."

"가고는 싶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스님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가. 넌 스님이 구해주신 은혜가 있었지."

불목하니는 덜컥 눈을 떴지만 툇마루에는 기르던 고양이와 근처 절의 고양이가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드니 더그매에서 싸움이라도 하는 듯 큰 소리가 났다. 불목하니가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주지는 벌써 일어나 사방등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뭘까요."

"글쎄다."

둘은 사방등 불에 의지해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그다지 의심스러운 것도 보이지 않아 그날 밤은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 주지가 본당에 가보니 더그매에서 선명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주지는 놀라 단가(檀家)의 젊은이를 오라고 해 같이 더그매에 올라갔다. 더그매에는 기르던 고양이와 근처 절의 고양이가 피에 젖은 채 죽어있었는데, 그 옆에 삼 척 가깝게 큰 쥐가 승려의 법의(法衣)를 뒤집어쓰고 죽어있었다. 

"아."

그때 주지의 머릿속을 스치는 일이 있었다. 그건 수 일 전 난데없이 나타나 체류하고 있던 승려의 일이었다. 주지는 혹시나 싶어 승려의 방에 가보았지만, 그곳에는 깔아두었던 이부자리가 그대로 있을 뿐 승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주지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세이린인에 있는 의묘총(義猫塚)은 두 고양이를 함께 묻은 것이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2. 00:18 일본괴담

碧玉の環飾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24_16895.html


당(唐) 대종(代宗) 황제 광덕(広徳) 대의 일이다. 손각(孫恪)이란 젊고 가난한 남자가 있었는데 낙양(洛陽)에 있는 위토지(魏土地)란 곳에 놀러갔다. 놀러갔다고는 하지만 여행을 다니려고 했다기 보다는 유랑(流浪)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 위토지에는 터줏대감으로 원(袁)이란 성을 가진 호족이 있었다. 손각은 별 목적은 없었지만 그 앞을 지나가다가 그저 호기심에 들여다 보니 문지기는 커녕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푸른 발이 드리워진 작은 방이 있었다. 손각이 그 옆으로 다가가 안쪽을 살피려 하자 안에서 문을 열고 젊고 예쁜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손각은 이 여자가 주인집 딸이겠거니 싶어 인사를 하려 하자 여자는 놀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각이 거북해 멍하니 서 있으니 푸른 옷을 입은 소녀가 나와서,

"무슨 용무로 이곳에 오셨나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손각은,

"지나가다 들어온 사람이오. 무례를 범해 미안하오."

하고 멋대로 대문 안으로 들어온 일을 사과했다.

그러자 청의를 입은 소녀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처음에 봤던 여자가 소녀를 데리고 나왔다. 손각은 소녀를 향해,

"이 분은 누구신가."

하고 묻자 소녀는,

"원 장관(長官)의 따님으로 이곳 주인이세요."

하고 말했다.

"주인은 이미 결혼을 하셨는가."

하고 손각이 또 묻자,

"아직 결혼은 하지 않으셨어요."

하고 소녀가 대답했다.

그 뒤 여자와 소녀는 같이 들어가더니 곧 소녀에게 다과를 가져오게 하여 건네며

"나그네 마음에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하고 말했다. 이미 여자에게 연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손각은,

"나는 가난한 나그네로, 학문도 재주도 없는 것에 비해 원 씨는 재산이 많을뿐만 아니라 현명하기까지 하니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만약 결혼할 수 있다면 매우 경사스러울 것이오."

하고 결혼신청을 하자 여자는 승낙하고 소녀를 중매인으로 세워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동시에 손각은 여자 집에 그대로 눌러앉아 데릴사위가 되었다.

그리고 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손각은 어느 날 친척인 장한운(張閑雲)이란 사람을 떠올리고는 오랜만에 그 집에 갔다. 한운은 손각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자네 낯빛이 무척 나쁘군. 이건 분명 요괴한테 홀린 게야."

하고 말하니 손각은 별로 짚이는 데가 없어서,

"그다지 의심스러운 일은 없는걸."

하고 믿지 않았다.

"사람은 천지음양의 기를 받아 혼백을 간직하고 있네. 혹 양이 쇠하고 음이 자라나면 그 빛이 홀연 겉에 드러나지만 본인은 모르지."

하고 한운이 주장해 손각은 원 씨의 데릴사위가 된 일을 말했다. 그러자 한운이,

"그건 이상하군. 속히 떠나게나."

하고 권했지만 손각은,

"그렇지만 원 씨는 재산도 있으면서 현명한 여자인데, 나를 위해 정말 애쓴다네. 그 은혜를 두고 떠날 수는 없어."

하며 그 말을 듣지 않으므로 한운은 화를 내며,

"사악한 요괴의 괴이한 은혜는 은혜라고 하지 않고, 또 거기에 등을 돌린다고 불의라고 하지 않아. 내 집에 보검이 있으니 빌려 주겠네. 그걸 차고 가면 요마(妖魔) 같은 건 천 리 밖으로 도망갈 터이니."

하고 말하고 칼 한 자루를 꺼내 왔다.

손각은 마음속으로 망설이면서도 그 검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자 원 씨는 벌써 그걸 알아채고,

"당신은 원래 가난한 것을 제가 불쌍히 여겨 부부가 되어 정이 날로 깊어졌음에도 그 은의(恩義)를 잊고 저를 버리려고 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처사가 아닌가요."

하고 말하며 울었다. 손각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웠다.

"이건 나의 본의가 아니라 친척인 장한운이 억지로 시켜 할 수 없이 하려던 거요. 부디 화를 거두어 주시오. 내 다시 딴마음 먹지 않으리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러자 원 씨는 손각이 갖고 온 검을 손에 들고 젓가락 같이 뚝뚝 부러뜨렸다. 손각은 겁이 나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것도 무서워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원 씨는 방긋 웃으며 손각의 얼굴을 보고,

"수년간 같이 살며 이런 사이가 됐으니 결코 낭군을 해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고 말했다. 손각은 도망치는 것도 무서워 그대로 원 씨의 사위로 남았다. 그 뒤 손각이 장한운을 만나 그날 일을 말하자 한운은 기겁하며,

"그런 괴이한 변고가 있나."

하고 다시는 손각과 만나지 않았다.

이윽고 원 씨는 두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매우 영리해 이십 세가 되지 않은 적부터 자주 집안 일을 도왔다. 그때가 되서야 손각은 관운이 트였는지 당 수도 장안(長安)으로 부임받게 되어 일가 모두 출발했다. 서주(瑞州)란 곳에 닿자 원 씨는 손각을 향해,

"서주 결산사(決山寺)란 절에 친한 스님이 있어요. 동서(東西)로 헤어지고 수십 년이 지났으니 꼭 만나보고 싶어요."

하고 말해 결산사로 가 주지인 노승을 만났지만 노승은 원 씨를 알지 못했다. 원 씨는 다시 품에서 벽옥의 고리 장식을 꺼내 노승 앞에 놓고,

"이건 이 절의 물건이오."

하고 말했지만 노승은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때 뜰 저편 수목에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나와 울어댔다. 그걸 본 원 씨는 무척 슬픈듯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붓을 빌려 벽에 시를 써내려 가더니, 다 쓰자 옆에 있는 두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울다 손각이 있는 쪽을 향해,

"이제부터 영원한 이별이에요."

하고 입었던 옷을 찢어 던지니 불그스름한 얼굴에 둥근 눈의 커다란 늙은 원숭이였다. 그걸 본 모두가 놀라는 동안 늙은 원숭이는 뜰 저편의 큰 나무 위로 뛰어올라 남편과 아이 쪽를 보며 울다가, 이윽고 울창한 푸른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손각은 두 아이를 끌어안고 울며 슬퍼했다.

그다음에 손각은 노승을 향해,

"이것에 대해 뭔가 짐작 가는 데가 있소."

하고 물었다. 노승은 오랫동안 옛날 일을 추념하더니,

"소승이 아직 사미였을 무렵 암컷 원숭이 한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현종(玄宗) 황제의 칙사 고력사(高力士)가 이 절에 와서 그 원숭이가 민첩한 것을 보고는, 비단을 두고 원숭이를 데려가 현종에게 바쳤소. 현종도 그 원숭이를 무척 아껴 상양궁(上陽宮)에서 키우게 했는데, 안녹산(安禄山)의 난이 일어나 원숭이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들었소만 지금 잘 생각해 보니 이 고리 장식은 늘 그 원숭이 목에 끼고 있던 거요."

하고 말했다. 손각은 그걸 듣고는 더욱더 슬퍼져 장안에 가는 걸 중지하고 돌아갔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23:38 일본동화

巨男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21/files/3313_10260.html


큰 남자와 어머니가 사는 곳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어느 숲 속였어요.

큰 남자의 어머니는 무서운 마녀였어요. 독수리와 같이 높은 코에 뱀과 같이 날카로운 눈을 가진 무서운 마녀였답니다.


어느 달밤의 일이었어요.

마녀와 큰 남자가 잠이 들었을 무렵 누군가 집 밖에서 대문을 두드렸어요. 큰 남자가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두 여자가 한 소녀를 데리고 서 있었어요.

"이 분은 이 나라의 공주님입니다. 저희는 시녀입니다. 오늘 공주님을 모시고 숲으로 놀러 나왔는데 길을 잃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오늘 하룻밤만 묵을 곳을 빌려 주십시오." 하고 한 여자가 말했어요.

그러자 안에서,

"들어오세요. 누추한 곳입니다만, 마음 편히 쉬고 가십시오." 하고 마녀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래서 셋은 안으로 들어가 쉬었어요.

다음 날 아침, 큰 남자가 눈을 뜨자 두 여자는 까만 새로, 공주님은 하얀 새로 변해 있었어요. 마녀가 마법을 부려 그렇게 된 것이었어요.

마녀는 큰 남자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세 마리 새를 창문으로 날려 보냈어요. 세 마리 새는 날아갔어요. 하지만 하얀 새는 저녁이 되자 구슬피 울며 마녀의 집으로 돌아왔어요. 큰 남자는 가엽게 여겨 몰래 하얀 새를 기르기로 했답니다. 낮에는 들판에 놓아주고, 밤에는 자기 침대 안에서 재웠어요.


큰 남자가 커질수록 마녀는 점점 나이를 먹어 결국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매일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자식인 큰 남자에게 마법을 가르쳤어요. 하지만 그 마법은 모두 인간을 가지각색의 새로 변하게 하는 거였어요.

차차 마녀는 더욱더 약해져 이제 죽을 것 같이 되었어요. 이때 마법을 풀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그 하얀 새는 영원히 공주님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큰 남자는 마녀의 머리맡에 다가가,

"지금까지 어머니는 인간을 가지각색의 새로 변하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아직 마법을 푸는 건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어요.

"그럼 가르쳐 주마." 하고 마녀는 말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질 것 같이 목소리가 모기만 했어요.

"어머니, 분명히 말해 주세요!"

큰 남자는 마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어요.

"새가 눈물을 흘리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단다……" 이것만 말하고 마녀는 머리를 늘어뜨린 채 죽고 말았어요.

큰 남자는 죽은 마녀를 하얀 관에 모시고 야자나무 밑동에 묻었어요. 그리고 바로 하얀 새를 데리고 숲에 있는 집을 나섰어요.

큰 남자는 수도로 상경하려고 마음먹었어요. 도중에 어떻게 해서든 하얀 새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려고 했어요. 머리를 두드리고 궁둥이를 꼬집어 봤어요. 하지만 하얀 새는 절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요. 그저 구슬픈 듯한 소리를 지를 뿐이었답니다. 끝에 가서는 불쌍하게 느껴져 큰 남자는 어느샌가 하얀 새에게 뺨을 비비고 있었어요. 그리고 큰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요.

큰 남자는 밤낮없이 걸어 집을 나선지 칠 일째에 오고자 했던 수도에 닿았어요. 하지만 수도 사람들은 큰 남자가 무서운 마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몰래 큰 남자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중 한 남자가 대표가 되어 임금님이 살고 계신 궁전에 찾아갔어요. 그리고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임금님 궁전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대리석 건물이 아닌 것은 옥에 티라고 한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대리석 탑이라도 세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군. 그게 좋겠어. 그런데 대리석이라고 하는 건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여기서 죽 남쪽으로 산 하나와 사막 하나를 넘어가면 한 부락에 닿습니다. 그곳에 대리석이 얼마든지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그러면 누가 가지러 가는 건가?"

"그건 지금 수도에 있는 큰 남자가 좋겠습니다. 그는 키가 야자나무만 하고 한걸음에 작은 언덕을 넘습니다."

"그럼 그 남자를 부르도록."


큰 남자는 궁전에 불려 갔어요. 그리고 임금님으로부터 대리석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도망치면 안 되기에 큰 남자의 발을 쇠사슬로 묶었어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큰 남자는 말하고, 역시 하얀 새를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어요. 큰 남자가 나아갈수록 궁전에 쌓인 쇠사슬이 줄어들었어요. 정확히 십구 일째 되는 날에 그 쇠사슬이 다 없어져 끝이 굵은 기둥에 묶여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펴졌어요.

그때는 큰 남자도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대리석이 있는 부락에 도착해 있었어요. 부락 사람들은 매우 친절해서 대리석을 원하는 대로 내주었어요. 큰 남자는 커다란 대리석 세 개를 받아 짊어지고 하얀 새를 그 위에 앉히고 귀로에 올랐어요.

수도에서는 팽팽했던 쇠사슬이 느슨해졌기에 사람들은 그걸 끌어당겼어요. 돌아가는 길에는 무거운 돌을 가지고 있었기에 큰 남자는 삼십 일 걸려 겨우 수도에 도착했어요.

괴롭고 긴 여행인 탓에 큰 남자는 초라한 고목처럼 되었어요. 하지만 쉬지도 못한 채 바로 그날부터 궁전의 샘 근처에 대리석으로 탑을 쌓으란 분부를 받았어요. 그래도 착한 큰 남자는 결코 한탄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답니다. 명령 받은 대로 매일매일 밤낮으로 망치와 끌만 가지고 대리석을 잘라 점점 쌓아 올렸어요. 큰 남자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 하얀 새를 등에 앉혔어요. 하얀 새는 얌전하게 앉아 있었어요. 큰 남자는 망치를 휘두르며 마치 인간에게 말하듯 하얀 새에게 말했어요.

"너는 대체 어떻게 해야 눈물을 흘리는 거니? 너는 언제 눈물을 흘리는 거야? 너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영원히 공주님이 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네가 불쌍해. 그러니까 어서 아름답던 예전의 공주님으로 돌아가 주렴."

이런 때 하얀 새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큰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요.

큰 남자의 작업은 점점 진행되었어요. 늦은 밤에도 쌓아올린 탑 꼭대기에서 망치 소리가 수도 하늘에 울려 퍼졌어요. 수도 사람들은 잠자기 전 항상 창을 열어 큰 남자가 일하는 탑 위를 보았어요. 그곳에는 별과 같은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어요.

삼월이 지나자 큰 남자가 가져온 대리석이 다 떨어져 버렸어요. 탑의 높이는 궁전에 있는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높아졌어요. 큰 남자는 다시 커다란 대리석을 세 개 받아 수도로 돌아왔어요. 바로 그날부터 망치와 끌을 가지고 그걸 자르기 시작했어요.

탑은 더욱더 높아졌답니다.

하늘에 구름이 껴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도 큰 남자의 불은 단 하나의 별과 같이 오도카니 떠올랐어요.


바람이 조금 센 초저녁이었어요. 수도 사람들은 창문에서 탑 위에 있는 불을 우러러보았어요. 불은 바람 때문에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때 처음으로 큰 남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임금님도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탑 위를 보았어요. 윙윙 부는 바람 사이로 큰 남자의 망치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어요. 역시 임금님도 큰 남자를 불쌍히 여기게 되었는지,

"이런 밤에 일하는 건 미안하군. 그리고 그 남자는 얌전해. 내일은 이제 일을 그만두게 하자." 하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런 건 조금도 모른 채 큰 남자는 계속 일을 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얀 새를 울려 공주님이 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문득 큰 남자는 자신이 죽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포근한 큰 남자의 등에서 잠들어 있던 하얀 새에게 말을 걸었어요.

"내가 죽으면 너는 슬프지 않니?"

그러자 하얀 새는 눈을 뜨고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하는 듯이 날개를 쳤어요.

"내가 죽으면 안 되는 거니? 그렇다면 내가 죽는다면 너는 눈물을 흘리겠구나. 좋아! 나는 너를 위해 천국에 갈 테다."

큰 남자는 일어서서 등에서 하얀 새를 내려놓았어요. 하얀 새는 막으려고 큰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어요. 큰 남자는 하얀 새와 마지막으로 뺨을 비비고,

"그럼 예쁜 하얀 새야, 안녕. 너는 원래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돌아가렴……" 하고 말하고 높은 탑 위에서 몸을 던졌어요. 땅에 떨어지는 즉시 죽고 말았어요.

하얀 새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눈물이 폭포와 같이 쏟아졌어요. 그리고 그 순간 마법이 풀려 다시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돌아갔어요. 공주는 흐느껴 울며 높은 탑 계단을 구르는 듯 달려 내려와 아버지인 임금님의 방에 뛰어들어갔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일을 임금님에게 이야기했어요. 임금님은 그걸 듣고 면목이 없어 큰 남자에게 사죄하고 다시 감사했어요.

이윽고 임금님으로부터 수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도 사람들도 울며 큰 남자에게 잘못을 빌었어요.

큰 남자의 시신은 월계수 잎으로 덮여 수도 동쪽에 있는 모래 언덕에 묻혔어요.

공주는 임금님이나 어머니인 왕비에게 자주 말씀드렸답니다.

"저는 언제까지고 하얀 새로 큰 남자의 등에 머물고 싶었어요."


하늘에 구름이 껴 금성 하나만이 흐릿하게 보이는 늦은 밤이면 남국의 사람들은 지금도,

"저건 큰 남자의 불이다." 하고 하늘을 우러러본답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20:03 일본괴담

酒友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51_16636.html


샤(車)라고 하는 남자는 가난하면서 술만 마셨다. 밤마다 세 잔 정도의 벌주를 먹이지 않으면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머리맡에는 항상 술을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 눈을 떠 뒤척이고 있으니 누군가 같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이불이 벗겨져 떨어진 까닭이라고 생각하고 손을 대어 쓰다듬어 보자 털이 덥수룩하게 만져졌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큰 고양이인 것 같았다. 불을 켜고 보니 여우였는데 지독히 술에 취해있는 듯 쿨쿨 자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머리맡 술병을 보자 비어있었다. 샤는 웃으며,

"이 녀석은 내 술친구로군."

하고 말하고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이불을 덮어주고 난 다음 자신도 옆에서 자려 했지만 여우가 어떻게 나올지 보고 싶어 불을 끄지 않고 보고 있었다. 여우는 한밤중에 깨어 하품했다. 샤는 웃으며,

"잘 잤구나."

하고 말하고 이불을 벗기니 유생(儒者)의 갓을 쓴 수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일어나 평상 앞에서 절을 하며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은혜에 감사했다. 샤는,

"난 술꾼이라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지만 자네는 나의 포숙(鮑叔)이네. 혹시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술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고 소매를 끌어 평상 위에 올리고 또 함께 잤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부터 자네는 매일 밤 오게나, 의심하지 말고 말이지."

여우는 승낙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여우는 이미 없었다. 맛있는 술을 병 가득히 채워놓고 여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되니 과연 여우가 왔다. 샤는 여우를 옆에 앉히고 즐겁게 마셨는데, 여우는 술이 셀뿐만 아니라 농담도 잘했다. 샤는 그 여우와 더 일찍 알게 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게 되었다. 한 번은 여우가 말했다.

"항상 좋은 술을 얻어먹기만 해서야, 어떻게 해야 자네의 후의에 보답할 수 있을까."

샤는 말했다.

"그런 건 어찌 되든 좋지 않은가."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가난하니까 술을 살 돈도 부족하지 않나. 내 자네 술값을 한 번 주선해 보겠네."

다음 날 밤 여우는 다시 왔다.

"지금부터 동남쪽으로 칠 리(里) 가면 길가에 돈이 떨어져 있을 걸세. 빨리 가서 주워오게나."

샤는 그 말에 따라 다음 날 아침 일찍 갔다. 과연 이 엔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걸 주워 괜찮은 안주를 사 그날 밤 술에 보탰다.

여우는 다시 말했다.

"이 집 뒤에 움막이 있으니 열어 보게나."

샤는 여우 말대로 찾아보았다. 과연 움막이 있어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샤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내 지갑에도 돈이 얼마간 있으니, 쓸데없이 술 사는 걸 근심하지 말게나 인가."[각주:1]

여우는 말했다.

"그게 아니라네. 수레(車)의 바퀴 자국에 고인 물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좀 더 즐거운 일을 생각하세나."

그 다음 만난 때 여우는 샤에게 말했다.

"시장에 당아욱 값이 매우 싸네, 이것이야말로 횡재가 아니겠는가."

그 길로 샤는 당아욱을 사오 석(石) 샀다. 사람들은 모두 그걸 비웃었지만, 이윽고 큰 가뭄이 들어 곡식이 죄다 마르고 당아욱만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샤는 당아욱 씨를 팔아 열 배의 이익을 얻어 돈도 점점 쌓여 비옥한 밭을 이백 묘(畝)[각주:2]나 경작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보리를 많이 심자 잘 자라 많이 거둬들이고, 수수를 심자 수수가 잘 자라 많이 거둬들였다. 씨를 뿌리고 심는 건 늦든 이르든 전부 여우의 판단을 따랐다. 샤와 여우는 나날이 친밀해졌다. 여우는 샤의 아내를 형수라고 부르고 아이를 자신의 애처럼 귀여워했다. 시간이 지나 샤가 죽자 마침내 여우도 오지 않게 되었다.

  1. 당나라 시인 하지장의 시 제원씨별업(題袁氏別業)의 시구(詩句) [본문으로]
  2. 1묘가 30평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16:45 일본괴담

山の怪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482_11832.html


도사 나가오카 군(土佐長岡郡) 깊숙한 곳에 모토야마(本山)란 곳이 있다. 지금은 정(町) 제도에 의해 정으로 됐지만 예전에는 모토야마 읍(郷)이라고 하는 한 지방을 이루고 있었다. 시고쿠사부로(四国三郎)의 요시노가와(吉野川)가 마을 안을 흐르고 촌락에 있는 건 그 주위에 있는 약간의 평지로, 한쪽에는 고봉(高峰) 슌타케(駿岳)가 우뚝 솟아 있었다. 모토야마에는 요시노부(吉延)라고 하는 산골짜리가 있어서 그곳에 멧돼지인지 사슴인지 큰 짐승이 살아 사냥꾼 중 그곳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이가 없었지만 그 골짜기에서는 가끔씩 이상한 일들이 있어 기가 약한 이는 가지 않았다. 초겨울이었다. 한베라고 하는 사냥꾼이 총과 덫을 가지고 골짜기로 향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골짜기에 태연하게 들어가다니 대담한 남자였다. 그가 골짜기에 도착한 건 아직 새벽이 되기 전으로 수풀 아래가 캄캄했다. 그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짐승이 다닐만한 곳을 손으로 더듬어 덫을 치고 옆에 있는 바위 그늘에 앉아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세워놓고는 허리 주머니에서 담뱃대를 꺼내 담배를 채우더니 화약심지의 불을 옮겨붙여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짐승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찬바람이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가 서리가 되려던 이슬이 때때로 뺨에 떨어져 내렸다. 한베는 담배를 피우면서 귀를 기울여 짐승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머지않아 날이 점점 밝아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 쪽을 힐끗 보자 하늘은 푸르죽죽해서는 빛을 잃은 별 두 개만이 솔송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었다.

수풀 아래도 차츰 밝아져 나뭇잎 색이나 모양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덫을 친 곳은 그곳에서 오육 간(間)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곳은 산기슭의 작은 도랑처럼 움푹 패인 곳이었다. 한베는 아침 먹잇감을 찾는 짐승이 움직일 시각이 되었다고 생각해, 담뱃대를 주머니에 넣어 허리에 단단하게 차고 세워두었던 총을 쥐어 언제라도 쏠 수 있도록 몸을 앞으로 향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산지렁이 한 마리가 어디선가 뱀처럼 기어와서는 덫에 걸렸다. 한베는 그걸 보고는 생각했다.

(저렇게 큰 지렁이도 있군)

지렁이는 이윽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 옆 노란 풀숲에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있었다. 그건 흙빛의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그 눈을 두리번두리번하며 기어나와 덫 옆에 잠시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이윽고 입을 벌리는가 싶더니 산지렁이를 덥석 물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삼켜 버렸다. 개구리는 겨우 일이 끝났다고 말하는듯 웅크렸다.

어디에 있었는지 시커먼 땅에서 붉은 반점을 지닌 작은 뱀이 개구리 뒤에서 기어나왔다. 한베는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었다. 뱀은 개구리 옆에서 목을 쳐들고 빨간 바늘과 같은 혀를 쉭쉭 한두번 내밀더니 개구리의 다리 하나를 물었다. 개구리는 깜짝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 몸은 차례로 뱀의 목구멍으로 사라져 갔다.

(기묘한 일도 있는 법이구먼)

한베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 한베의 눈앞으로 잿빛털의 커다란 무언가가 스쳤다. 골짜리 아래쪽 수풀 속에서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갑작스레 튀어나와 한베 코끝을 스치듯이 올가미 옆으로 갔다. 한베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멧돼지는 개구리를 삼키고 반대편으로 기어가던 뱀을 한 입에 낼름 삼켜 버렸다. 동시에 한베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송아지 같은 멧돼지가 굉연한 총소리와 함께 지축을 울리며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총소리가 작게 울릴뿐 멧돼지는 여유롭게 반대편으로 가고 말았다. 한베는 아차 하며 두 번째 탄을 서둘러 채워넣었지만 다 채워넣었을 때는 이미 멧돼지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은 기묘한 날이군)

한베는 총을 든 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은 재수가 없을 것 같군. 집에 가자, 가)

한베는 결국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혀를 차며 처음 올라온 길을 내려가 골짜기 아래쪽으로 향했다. 솔송나무가 자라 살짝 어두운 곳이 있었다. 한베는 그곳에 도착하자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어깨에 걸었다. 송라(松蘿)가 여자의 머리카락처럼 드리워진 커다란 솔송나무 그늘에서 턱수염이 새하얀 노승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한베 앞을 가로막더니 두 손을 벌렸다.

"이 괴물 자식"

한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어 노승의 정면을 내려쳤다. 그러자 둘이 되어 쓰러졌을 노승이 두 명이 되어 나란히 손을 벌렸다. 대담한 한베였지만 여기에는 조금 놀랐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 건가"

한베는 다시 오른쪽 요승을 정면에서 베고, 다음에는 왼쪽 승려의 몸통을 올려치듯 베었다.

"이건 어떠냐"

요승은 넷이 되어 손을 벌렸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가"

한베는 구별 없이 마구 칼을 휘둘렀다. 요승은 열네다섯 명이 되었다.

"젠장"

한베는 난도질하듯 칼을 휘둘렀다. 자르면서 보니 요승의 몸이 잘리는 족족 더 많아졌다. 한베는 여기서 이래봐야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 칼을 휘둘러 한쪽을 뚫고 달렸다. 돌이 비와 같이 한베를 향해 날아왔다. 한베도 맞서서 휘둘렀다. 백 명쯤 되는 요승이 각각 손에 돌을 들고 던지고 있었다. 돌은 쉴 틈도 없이 한베의 몸을 두드렸다. 한베는 필사적으로 요승 무리로 달려들었다.

"젠장, 젠장, 젠장"

한베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휘둘렀다. 그리고 기진맥진해 나가떨어질 무렵 나무 뿌리인지 바위 모서리에 발이 걸려 칼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우물쭈물하고 있어선 요승에게 목숨을 빼앗길 것 같아 그는 쭈그려 앉아 손에 잡히는 물건을 뭐든 집어 던졌다.

요승 무리는 질려 하나둘씩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베는 힘을 얻어 더 열심히 던졌다. 요승의 수는 점점 더 줄어 이제 여기저기 한두명 정도 남는가 했더니 결국 다 없어졌다.

한베는 맥이 풀렸다. 그것과 동시에 꿈에서 깬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그곳에 요승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돌을 마구 던졌다. 그 돌은 자기 가슴하고 머리에 맞았다. 그는 놀라서 자기 몸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 주위에는 자기 손으로 자기에게 던진 돌로 가득해 얼굴과 머리 한쪽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새하얀 강가의 자갈밭으로 바로 왼쪽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요시노가와(吉野川)의 자갈밭이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10. 11:38 일본괴담

赤い牛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5547_41051.html


나가노 현(長野県) 우에다 시(上田市)에 있는 우에다 성(上田城)은 명장 사나다 유키무라(真田幸村)의 거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우에다 성 해자의 물을 메이지 초년에 빼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되자 부근의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아침 일찍 도우네 구경하네 하며 밀어닥쳤다.

그날은 아침부터 활짝 갠 좋은 날씨로, 기후도 초여름답게 따뜻한 날이어서 사람들은 축제 기분으로 물빼기를 시작했다. 작업도 척척 진행되어 물이 빠질수록 커다란 잉어가 펄쩍 뛰어오르거나, 큰 메기가 떠오르거나 해서 해자 주위 곳곳에 함성이 울렸다.

그날 아버지도 반쯤 재미삼아 도우러 갔었는데 정오쯤 되어 해자의 물이 무릎 아래 정도로 줄었을 때, 아버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보자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세 간(間)[각주:1] 가량 앞쪽에서 한 간(間) 반 정도의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뭐지)

하고 아버지가 생각한 순간, 엄청난 물소리를 내며 그 소용돌이가 솟아오른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온몸에 진홍색을 한 동물이 반신을 드러냈다. 그건 이마에 굵은 두 뿔을 지닌 커다란 소였다. 사람들은 놀라서 도망치려 했지만 소도 놀랐는지 해자에서 펄쩍 뛰어올라 화살과 같이 지구마 강(千曲川)에 뛰어들어 물살을 헤엄쳐 건너더니 고마키 산(小牧山)을 타고 넘어 스가와 연못(須川の池)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지금도 물빼기를 할 때 현장에 가서 붉은 소를 보았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소년 시절에 자주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다 아버지에게 혼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하마 같은 수생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마가 일본에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해 그렇게 해석은 어려울 것 같다.

(우에다 모 씨의 이야기)

  1. 한 간(間)은 약 1.8m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4. 1. 9. 22:54 일본괴담

藍微塵の衣服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52247_47755.html


도쿄 시바(芝) 구에 있던 이야기다. 시바 구 어느 마을에 전당포가 있었는데 그곳 마누라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난 여자애를 두고 병으로 죽어, 남편은 후처를 얻었다.

후처는 순종적인 기질에 늘 유쾌한 얼굴을 한 여자로, 의붓딸에게도 친어머니처럼 애정을 보여주여 의붓딸도 무척 따라 남편도 안심하고 지냈다.

하지만 그 후처가 얼마 안 지나 입을 다물고 점점 말수가 적어지게 되더니 여자를 둘러싼 꽃이 필듯한 따뜻한 분위기는 없어지고 차갑고 딱딱한 것만 남고 말았다.

그것을 눈치챈 건 전당포 주인의 친척 노인이었다. 노인은 이런저런 경험에서 이건 남편이 딴데 마음을 쏟는 이가 있어 마누라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아 부인병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노인은 어느 날 후처를 자기집으로 불러 물어 보았다.

"자네 요즘 들어 우울한 얼굴인데, 어떻게 된 일인가."

"별로 이렇다 할 일은 없어요."

"그래도, 뭔가 있는 거 같네. 왜냐면 자네 요즘 들어 우울한 얼굴인걸."

"별로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럼 무슨 일인가. 한 번 말해보게. 자네 힘이 되어주려고 하니."

이렇게 한 차례 대화가 오고 간 후 후처는 창백한 얼굴을 들고 말했다.

"제가 이러는 건 무서운 일이 있어서예요. 밤에 자고 있으면 불단 쪽 방하고 자는 방 사이 창호지에 구멍이 뚫리고 여자가 튀어나와서 절을 하니까, 진짜 무섭기도 너무 무서워서 한숨도 잘 수가 없어요. 남편한테 말하는 것도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어떤 여자인가" 하고 노인은 물어 보았다.

"젊고 예쁜 여자예요. 물망초 기모노에 검은 띠를 두르고, 머리는 마루마게[각주:1]로 묶었어요."

"무언가 말하던가."

"아무 말 없이 하얗고 야윈 손을 짚고 제가 있는 쪽으로 절을 하는 거예요."

노인은 바로 전처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을 불러 후처가 말한 이야기를 전했다.

"물망초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고 하는데, 뭔가 짚이는 데가 없는가?"

물망초 기모노는 전처가 무척 좋아해서 평소에 즐겨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남편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건 죽은 아내가 좋아하던 옷입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없더니,

"뭔가 미련이 있는 게구먼." 하고 반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럴까요. 장례도 그렇게 잘 치뤄줬고, 아무런 불만이 없을 터입니다만." 남편은 이렇게 말한 후, 옆에 있는 후처 쪽을 보고,

"애는 당신이 그렇게 귀여워 하는데, 불만이 있을 리 없지. 혹시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꾸짖을 테니 깨워주게."

그 다음 날 밤, 남편과 후처는 여자애를 사이에 두고 평소와 같이 다다미 여덟 장의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그곳은 광과 접해있는 방으로, 다음에 다다미 넉 장 반 정도의 불단이 놓여 있는 방이 있고, 그 앞으로는 툇마루가 있어 광의 입구와 이어져 있었다.

곧 후처는 잠에서 깼다. 후처는 겁이 나 눈을 떠 어둠 속을 보았다. 그러자 베개 근처로부터 오른쪽 옆에 있던 불단이 있는 방 사이의 창호지가 언제나 같이 뚫려서 물망초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환등기에 비추는 것처럼 분명하게 나타나, 문턱 위쯤에 앉아 하얀 손을 짚었다. 후처는 문득 남편이 자기를 깨우라고 한 말이 떠올라 손을 뻗어 남편의 어깨를 흔들었다.

남편이 눈을 떠서 보니 후처가 자기를 깨웠기에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들어 보았다. 여자는 이제 절을 하고 있었다.

"이봐, 당신 애는 이렇게 귀여움 받고 있는데 무슨 불만이 있어 자꾸 오는 건가." 하고 남편이 꾸짖는 것처럼 말하자, 여자는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감사 인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가, 그런가. 하지만 당신이 오면 이 여자가 무서워하니까 이제 오지 말게." 하고 남편이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두 번 다시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27. 20:00 일본문학

茶漬三略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562/files/52453_49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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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키 마고헤이지(柾木孫平治) 비망록


사람들은 당시의 쇼군이었던 태합(太閤)의 집안 내력을 알고 싶어했다. 하시바 지쿠젠노카미 히데요시(羽柴筑前守秀吉)이었을 쯤부터는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작은 원숭이(小猿)나 히요시(日吉)라고 불리며 제대로 된 성(姓)마저 없었을 무렵의 내력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태합은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말한 예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구태어 묻는 이가 있으면,

「넓은 하늘(大空)에 집안 내력은 없다」

하고 더할 말이 없다는 얼굴을 했다.

또 그 위엄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례하게 묻는 이도 없었다.

어렴풋이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히쓰(祐筆)나 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徳) 등도 부득이 내력을 언급할 때는,

히데요시 공(公) 가라사대,

[각주:1] 비슈[각주:2]의 민간에서 태어나서 풀 베는 법은 알았지만 붓 잡는 법 깨치지 못하고, 다만 우리 어머니는 대궐(内裏) 수라간(御厨子所) 하녀이셨지만 어느날 밤 꿈에 수 천만의 오하라이바코(御祓箱)가 이세(伊勢)에서 하리마(播磨)를 향해 빈틈도 없이 하늘 위를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내를 잉태하셨다――

하고 적고는 했다.

그런 것에서 히데요시의 모친이 모치하기(持萩) 쥬나곤(中納言)의 딸이었다든가, 그는 시골 출신의 쥬나곤이었던 야스히라(保広)의 서자(落胤)라든가, 오다(織田)가의 하급 무사(被官)의 아시가루(足軽)였다 귀농한 농민 야에몬(弥右衛門)의 자식이었다고 하는 게 진실인가, 소문이나 험담도 가지각색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태합은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는 말한 예가 없다.

  1. 원문은 われ [본문으로]
  2. 오와리국(尾張国)의 별칭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23. 19:52 일본수필

俗即菩提[각주:1]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562/files/55098_50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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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가지고 버리러 가는 군중이 왜 저렇게 유쾌한 것 같은 얼굴로 모여있는 것일까. 가끔씩 문득 그날 아침의 엄청난 발걸음을 신기하게 쳐다볼 때가 있다.

경마는 인간의 강한 욕망 중 하나를 제도(済度)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경마장에 모일 정도의 사람이면 원래부터 현인군자가 아니다. 이욕이 왕성하다면, 금전에는 배로 탐욕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사실 보고 있자면 지폐의 홍수 속에서 혈안이 된 얼굴이 무수히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버스를 같이 타는 사람들을 봐도 그날 아침 경마장에서의 정신없는 모습은 다들 마치 어린애 같은 치기로 돌아가 있다. 아무리 욕심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외없이 소년시절의 소풍 기분을 내며 나간다.

또 경마장 안에서는 의외로 소매치기나 강탈이 적다. 국전 같은 곳과 비교하면 예상외로 그런 피해는 없다. 생각하건대 소매치기도 그 정신없는 시장바닥에 휩쓸려 단순히 사람들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자신의 주머니로 이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어지는 것이 틀림없다. 소매치기도 마권을 사고, 적중하는 환희를 매표소에서 맛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경마의 진미를 모르는 사람이 그 혼잡함과 혈안만 냉안시하고 한심하게 속된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훨씬 한심하고, 더 속된 것이다.

  1. 속된 것에 깨달음(=보리)가 있다는 뜻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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