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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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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수필'에 해당되는 글 2

  1. 2013.12.23 요시카와 에이지『속즉보리』
  2. 2013.12.2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문장과 말』
2013. 12. 23. 19:52 일본수필

俗即菩提[각주:1]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562/files/55098_50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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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가지고 버리러 가는 군중이 왜 저렇게 유쾌한 것 같은 얼굴로 모여있는 것일까. 가끔씩 문득 그날 아침의 엄청난 발걸음을 신기하게 쳐다볼 때가 있다.

경마는 인간의 강한 욕망 중 하나를 제도(済度)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경마장에 모일 정도의 사람이면 원래부터 현인군자가 아니다. 이욕이 왕성하다면, 금전에는 배로 탐욕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사실 보고 있자면 지폐의 홍수 속에서 혈안이 된 얼굴이 무수히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버스를 같이 타는 사람들을 봐도 그날 아침 경마장에서의 정신없는 모습은 다들 마치 어린애 같은 치기로 돌아가 있다. 아무리 욕심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외없이 소년시절의 소풍 기분을 내며 나간다.

또 경마장 안에서는 의외로 소매치기나 강탈이 적다. 국전 같은 곳과 비교하면 예상외로 그런 피해는 없다. 생각하건대 소매치기도 그 정신없는 시장바닥에 휩쓸려 단순히 사람들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자신의 주머니로 이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어지는 것이 틀림없다. 소매치기도 마권을 사고, 적중하는 환희를 매표소에서 맛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경마의 진미를 모르는 사람이 그 혼잡함과 혈안만 냉안시하고 한심하게 속된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훨씬 한심하고, 더 속된 것이다.

  1. 속된 것에 깨달음(=보리)가 있다는 뜻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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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章と言葉と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879/files/3755_273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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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나한테 「문장을 너무 고른다. 그렇게 고르지 마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특별히 필요 이상으로 문장을 고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은 무엇보다 명료하게 쓰고 싶다.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분명하게 문장으로 나타내고 싶다. 나는 단지 그것에 주의할뿐이다. 그렇게만 해도 펜을 쥐어보면 그다지 술술 써지는 일은 없다. 항상 너저분한 문장을 쓰고 있다. 나의 문장상 고심이라고 하는 것은 (만약 고심이라고 할 게 있다면) 그것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다. 타인의 문장을 대할 때에도 내 자신의 문장을 대하는 것과 같다. 명료하지 않은 문장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 없다. 적어도 좋아할 수가 없다. 즉 나는 문장에 관해서는 아폴로주의를 신봉한다.

나는 남들이 뭐라 하든 방해석과 같이 명료한, 애매함을 용납하지 않는 문장을 쓰고 싶다.



오십년전의 일본인이 「신(神)」이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머리카락을 흉하게 묶고, 목 주위에 곡옥을 건 남녀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본인은, 적어도 오늘의 청년은 대부분 긴 턱수염을 기른 서양인을 떠올릴 것이다. 단어는 똑같이「신(神)」이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모습은 이정도로 변천되어 있다.

나는 언젠가 고미야 씨[각주:1]와 바쇼[각주:2]의 하이쿠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시키 코지[각주:3]의 해석에 따르면, 이 구는 해학을 담은 것이다. 나도 그 설에 이의는 없다. 하지만 고미야 씨는 어떻게든 장엄한 구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림의 힘은 오백년, 글의 힘은 팔백년을 간다. 문장의 힘은 몇백년이나 가는 것일까?


  1. 고미야 토요타카(小宮豊隆 1884-1966) : 일본의 독문학자, 문예평론가, 연극평론가, 일본학사원 회원. [본문으로]
  2.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64-1694) : 일본의 하이쿠 시인 [본문으로]
  3. 마츠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 : 일본의 하이쿠 시인, 국어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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