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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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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 00:52 일본뉴스

원문출처 : 在リビア韓国大使館が銃撃受ける 警備中の警察官2人死亡

[2015년 4월 12일]

한국외교부는 4월 1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소재한 리비아 한국대사관이 현지시간 오전 1시 20분에 총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총격에 의해 경비 중인 리비아 내무성 소속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대사관 직원과 외교관의 피해는 없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총격 2시간 후에 이슬람 과격파 ‘이슬람국 트리폴리 지부’를 자칭하는 그룹이 트위터에서 ‘이슬람 국군은 한국대사관 경비원 2명을 제거했다’고 하는 범행성명을 발표해 시사통신사는 동 조직에 따른 총격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슬람국 트리폴리 지부’가 실재하는 조직인지는 불명이라고 한다.

무장집단이 자동차에 탄 채 기관총을 대사관 경비원 대기소를 향해 약 40발 발포한 후 도주했다. 외교부는 습격 대상이나 목적을 알지 못해, 직원 철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비아 한국대사관에서는 지금도 대사관 직원 3명이 근무하고 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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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찬 정보 좋네요~

2015. 5. 26. 00:55 일본뉴스
원문출처 : 日本で1964年以来のFIFA総会の招致実現へ

[2015년 5월 22일]


일본축구협회가 협회창립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FIFA, 국제축구연맹의 총회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만약 실현된다면 도쿄 올림픽이 열린 1964년 이래 처음이다.


FIFA총회는 FIFA 월드컵 개최지를 결정하는 기구로 만약 일본이 FIFA 총회 유치를 목표로 한다면 2017년이나 2019년에서 2021년 사이가 된다. 또한 과거 FIFA 총회가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된 건 1964년 도쿄와 2002년 서울, 그리고 2008년 호주 시드니 세 도시뿐이다.


일본축구협회에서는 2050년까지 FIFA 월드컵 개최지 유치를 목표로 삼고 있어, 일본에서 FIFA 총회를 개최한다면 2020년 FIFA 풋살 월드컵, 2023년 FIFA 여자 월드컵 유치도 순풍을 타게 된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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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5. 20:07 일본문학

羅生門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879/files/127_15260.html

어느 해 질 녘의 일이었다. 하인 한 명이 라쇼몬羅生門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문 아래에는 남자 외에 아무도 없다. 군데군데 붉은 칠이 벗겨진 커다란 둥근 기둥에 귀뚜라미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라쇼몬이 주작대로朱雀大路에 있는 이상 남자 외에도 이치메가사市女笠나 모미에보시揉烏帽子를 쓴 이가 한두 명 있을 법했다. 그러나 남자 외에 아무도 없다.

어찌 된 일인가 하면, 지난 이삼 년 교토에서는 지진, 회오리바람, 화재, 기근 등의 재난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런 까닭에 도성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불상과 법기를 때려 부수고, 붉은 칠이나 도금이 되어있는 나무를 길가에 쌓아놓고 땔감으로 팔았다고 한다. 도성이 그 지경이니 라쇼몬의 수리는 말할 것도 없이 내팽개쳐져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었다. 그런 황폐를 기회 삼아 사기꾼과 도적이 날뛰었다. 급기야 연고가 없는 시체를 이 문으로 갖고 와 버리고 가는 관습마저 생겼다. 그래서 해가 떨어지면 모두들 께름칙하게 여기고 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까마귀가 어디선가 엄청나게 모여들었다. 낮에 보면 셀 수 없을 만큼의 까마귀가 원을 그리고는, 높은 치미鴟尾 주위를 울며 날아다녔다. 특히 문 위 하늘이 저녁놀로 붉게 될 때면 깨를 뿌린 듯 똑똑히 보였다. 까마귀는 물론 문 위에 있는 시체를 쪼아 먹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무너져 내려 팬 구멍에 잡초가 길게 자란 돌계단 위에 하얀 까마귀 똥이 희끗희끗 달라붙어 있는 게 보였다. 하인은 칠 층 돌계단 맨 위에서 빛바랜 감색 겹옷을 깔고 앉고는 오른뺨에 생긴 큰 여드름을 의식하며 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는 방금 “하인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 썼다. 그러나 하인은 비가 그쳤음에도 특별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당연히 주인집으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하지만 주인집에서 사오일 전 해고되었다. 이전에 쓴 바와 같이 당시 교토의 마을은 이를 데 없이 황폐했다. 지금 이 하인이 오랜 세월 모시던 주인에게서 해고된 일도 사실 이 황폐의 작은 여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인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 하기보다는 “비에 갇힌 하인이 갈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고 하는 편이 적당하겠다. 게다가 오늘 날씨도 이 헤이안平安 시대 하인의 감상주의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신시申の刻 지나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직까지 그칠 기미가 없다. 한데 하인은 어떻게 해서든 당장 내일 먹을 것을 찾으려고, 말하자면 소용없는 일을 어떻게든 해보고자 끝없는 생각을 계속하며 아까부터 무심결에 주작대로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비는 라쇼몬을 감싸고, 멀리서부터 솨 소리를 모아 온다. 땅거미는 차례대로 하늘을 낮추고 올려보자 비스듬하게 뻗은 기와 앞으로 문 지붕이 어스레한 구름을 묵직하게 떠받치고 있다.

잘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수단을 가리고 앉아있다간 담장 아래나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 문 위로 옮겨져 개처럼 버려지는 것이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면, 하인의 생각은 몇 번을 심사숙고한 끝에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렇지만 이 “않는다면”은 언제나 “않는다면”에서 멈췄다. 하인은 수단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않는다면”에서 나아가기 위해 당연히 뒤에 따라와야 할 “도적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인은 크게 재채기를 하더니 힘겨운 듯 일어섰다. 밤 추위로 가득한 교토는 화로가 간절할 정도로 쌀쌀했다. 바람은 문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땅거미와 함께 힘껏 가로지른다. 붉게 칠해진 기둥에 앉아 있던 귀뚜라미도 이미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하인은 금빛 땀받이에 덧입은 감색 겹옷 위로 어깨를 펴고 문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바람 걱정 없고 사람 눈에 띄지 않게 하룻밤 편히 잘만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어떻게든 밤을 지새우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문 위 누각으로 오르는, 폭이 넓고 붉은 칠이 된 사다리가 눈에 띄었다. 위쪽이라면 사람이라고 해도 시체뿐이다. 하인은 허리에 찬 히지리즈카聖柄 다치太刀가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짚신 신은 발을 사다리 처음 칸에 디뎠다.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라쇼몬 누각 위로 걸쳐진 폭이 넓은 사다리 중간 칸에서 한 남자가 고양이와 같이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인 채 위쪽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누각 위에서 비치는 불빛이 희미하게 남자의 오른뺨을 적신다. 짧은 수염 사이에 빨간 고름의 여드름이 있는 뺨이었다. 하인은 처음부터 이 위에 있는 건 시체뿐일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다리를 두세 칸 오르고 보니 위에서는 누군가 불을 켜 여기저기 비춰보기까지 하고 있었다. 흐리고 노란빛이 구석구석 거미줄 뒤집어쓴 더그매를 흔들흔들 비추고 있으니 뻔한 일이었다. 밤늦게 비 오는 라쇼몬 위에서 불을 켜고 있으니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다.

하인은 도마뱀붙이와 같이 발소리를 죽인 채 가파른 사다리 맨 위 칸까지 기는 듯 올랐다. 그리고 몸을 죽 펴고 목을 죽 빼 주뼛주뼛 누각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누각 안쪽에는 소문대로 시체 몇 구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불빛이 미치는 범위가 생각보다 좁아 정확히 몇 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렴풋이 알게 된 건 그중에 알몸인 시체와 옷을 입은 시체가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여자와 남자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시체는 모두 예전에 살아있던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처럼 입을 벌리고 손을 뻗은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어깨나 가슴 같이 솟아오른 부분이 흐릿한 불빛을 받아 들어간 부분의 그림자를 한층 더 어둡게 하면서도 모두 벙어리 같이 입 다물고 있었다.

하인은 시체 썩어들어가는 악취에 엉겁결에 코를 막았다. 하지만 그 손은 다음 순간 코를 막는 걸 잊었다. 강렬한 감정이 남자의 후각을 거의 다 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하인의 눈이 처음으로 시체 사이로 웅크린 인간을 봤다. 검붉은 옷을 입고, 키 작고, 마르고, 백발에 원숭이 같은 노파였다. 노파는 오른손에 불을 켠 소나무 조각을 들고 한 시체 얼굴을 들여다보듯 보고 있었다. 머리가 긴 것을 보니 아마 여자 시체일 터였다.

하인은 육 할의 공포와 사 할의 호기심에 이끌려 잠시 호흡마저 잊었다. 옛 기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러자 노파는 소나무 조각을 마루청 사이에 끼우고 지금까지 바라보던 시체 목에 양손을 얹고는 마치 엄마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의 이를 잡는 것처럼 그 긴 머리털을 한 올 한 올 뽑기 시작했다. 머리털이 손을 따라 뽑힌다.

머리털이 한 올 한 올 뽑힐 때마다 하인의 마음에서 공포가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노파를 향한 강렬한 증오가 조금씩 일어났다. 아니, 노파를 향했다고 하면 어폐가 있을지 모른다. 도리어 모든 악을 향한 반감이 점점 강해진 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하인에게 아까 문 아래에서 남자가 생각하던 굶어 죽을 것인가 도적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시 묻는다면 필시 하인은 아무 미련도 없이 굶어 죽는 쪽을 택하리라. 그렇게 악을 증오하는 남자의 마음은 노파가 꽂아놓은 바닥의 소나무 조각처럼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인은 물론 노파가 왜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지 알지 못했다. 따라서 합리적인 이유로는 그것을 선악 중 어느 쪽이라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인에게는 비 오는 밤에 라쇼몬 위에서 시체의 머리털을 뽑는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이었다. 물론 하인은 아까까지 자신이 도적이 될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이미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하인은 양발에 힘을 주고 별안간 사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히지리즈카 다치에 손을 얹은 채 성큼성큼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놀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노파는 하인을 척 보고 마치 호랑이라도 만난 듯 펄쩍 뛰었다.

“네 이놈, 어디 가느냐.”

하인은 시체에 발이 걸려가며 황망히 도망치려는 노파를 가로막고 이렇게 꾸짖었다. 노파는 그럼에도 하인을 밀어젖히고 도망치려 한다. 하인은 다시 그걸 가지 못하도록 되민다. 두 사람은 시체 사이로 잠시 아무 말 없이 드잡이했다. 그러나 승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하인은 마침내 노파의 팔을 쥐고 비틀어 넘어뜨렸다. 마치 닭다리와 같이 뼈와 가죽뿐인 팔이었다.

“뭘 하고 있었느냐.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이렇게 해주지.”

하인은 노파를 떠밀고 느닷없이 다치 칼집을 벗기더니 하얀 강철 빛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래도 노파는 입을 다문다. 양손을 부들부들 떨고 후들거리는 어깨로 숨을 헐떡이면서 안구가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도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 그걸 본 하인은 처음으로 이 노파의 생사가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는 사실을 명백히 의식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은 지금까지 세차게 타오르던 증오의 마음을 어느샌가 식히고 말았다. 뒤에 남은 건 그저 일을 원만하게 성취했을 때의 편안한 충실감과 만족뿐이었다. 그래서 하인은 노파를 내려다보며 조금 풀어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게비이시検非違使 관리 같은 게 아니다. 지금 막 이 문 아래를 지나던 나그네니라. 그러니 오라를 받으라는 게 아니야. 너는 그저 지금 이 순간 이 문 위에서 무엇을 하던 참이었는가, 그것만 말하면 된다.”

그러자 노파는 크게 뜬 눈을 더 크게 하며 가만히 하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빨간 눈꺼풀의 맹금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주름으로 거의 코와 하나가 된 입술로 무언가를 씹는 듯이 움직였다. 가는 목에서 뾰족한 울대뼈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때 그 목구멍에서 까마귀가 울부짖는 듯이 헐떡이는 소리가 하인의 귀로 전해져 왔다.

“이 머리털을 뽑아서는, 이 머리털을 뽑아서는, 가발을 만들려고 했네.”

하인은 노파의 대답이 예상 외로 평범해 실망했다. 그리고 실망과 동시에 다시 이전의 증오가 차가운 모멸감과 함께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 기색이 상대편에 전해진 것일까. 노파는 한 손에 시체 머리에서 뽑은 긴 머리털을 든 채 두꺼비가 웅얼대는 것 같은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이지, 시체 머리털 뽑는 게 누군가에겐 나쁜 짓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여기 있는 시체들은 모두 그런 짓을 당해도 쌀 인간뿐이라네. 내가 방금 머리털을 뽑은 여자는 말이야, 사 촌四寸 정도씩 잘라 말린 뱀을 건어干魚라고 하고 다테와키의 진太刀帯の陣으로 팔러 다녔지. 역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팔러 다녔을 거네. 그래도 이 여자가 파는 건어는 맛이 좋다고 해서 다테와키 놈들이 빼놓지 않고 부식으로 샀던 것 같지만. 나는 이 여자가 한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인데, 어쩔 수 없었겠지. 그렇다면 내가 하던 일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 짓이라도 안 하면 굶어 죽는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말일세. 그리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이 여자라면 아마 내가 한 일을 너그러이 봐주지 않겠는가.”

노파는 대략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하인은 다치를 칼집에 넣고 칼자루를 왼손으로 덮은 채 냉담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오른손으로는 뺨에 난 빨간 고름의 큰 여드름을 신경 쓰며 듣고 있었다. 그런데 듣는 동안에 하인의 마음속에는 어떤 용기가 솟아올랐다. 그건 아까 문에서 이 남자에게 없었던 용기였다. 그리고 다시 아까 이 문 위로 올라와 노파를 붙잡은 때의 용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려는 용기였다. 하인은 굶어 죽을지 도적이 될지를 망설이지 않은 것만이 아니다. 그때 이 남자의 마음가짐은 굶어 죽는 것 따위는 거의 생각할 수 없을 정도 무의식적으로 몰려 있었다.

“분명 그러한가.”

노파의 이야기가 끝나자 하인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그리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가 별안간 오른손을 여드름에서 떼더니 노파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물어뜯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강도질을 해도 억울할 게 없겠군. 나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니.”

하인은 재빠르게 노파의 옷을 벗겨 냈다. 그러고 나서 발에 매달리려는 노파를 거칠게 시체 위로 걷어찼다. 사다리가 있는 입구까지는 다섯 걸음이 채 안 된다. 하인은 벗겨 낸 검붉은 옷을 겨드랑이에 끼고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을 향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잠시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노파가 시체 사이에서 알몸을 일으킨 건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노파는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신음하며 아직 타오르는 불빛에 의지해 사다리가 있는 곳까지 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짧은 백발을 젖히고 문 아래를 내다보았다. 밖은 그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하인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다이쇼 4년 9월)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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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7. 10:58 일본동화

島の暮れ方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475/files/51096_52790.html


* 1차 수정 : 마지막 문장에 크지 않은 집이 아니라 거미줄이었습니다. 놓쳐서 수정합니다.


남방의 따뜻한 섬이었습니다. 그곳은 겨울도 이름만으로 언제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어느 초봄의 해질녘이었습니다. 나그네 하나가 길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이 근처는 처음인 듯 오른쪽 왼쪽 살피며 자기가 가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이 나그네는 이곳에 오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배에도 타야 했습니다. 먼 나라에서 이 섬에 사는 친척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길가에 수선화가 꿈처럼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산에 새빨간 동백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근처는 들판과 언덕으로 인가라 할만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바다 쪽에서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꽃향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는 점점 서산 끄트머리로 저물어 갔습니다.

“이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어느 길로 가야 내가 가려는 마을에 닿을 수 있을까.” 하고 나그네는 멈춰 서서 생각했습니다.

어디든 이 근처에 물어볼 집이 없을까 또 잠시 동안 오른쪽 왼쪽 살피며 걸었습니다. 그저 파도가 바위를 때리고 부서지는 소리만이 조용한 밤하늘 아래 희미하게 들려올 뿐입니다.

그때 우연히 나그네는 초가집 한 채를 발견했습니다. 그 지붕은 다갈색이었습니다. 그가 집 쪽을 향해 다가가자 초라한 집이라 울타리도 망가지고 사람 손길이 닿은 흔적 또한 없었습니다. 그는 누군가 이 집에 살고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점점 다가가며 나그네는 두 번 놀랐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젊은 여자가 그 집 문 앞에 쓸쓸히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긴 머리를 어깨에서 뒤쪽으로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촘촘하면서 깨끗하고, 눈은 비쳐 보일 듯 투명하고, 입술은 꽃처럼 곱고, 이마는 하얬습니다.

나그네는 왜 이런 섬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런 섬이라서 이런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나그네는 여자 앞으로 가서,

“신사가 있는 마을로 가려고 합니다만 어떤 길로 가면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여자는 상냥하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신은 나그네시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그네는 대답했습니다.

여자는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저도 어차피 저쪽으로 가니까 같이 가드리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나그네는 “그럼 부탁드립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둘이 길을 걸어나서는 때 나그네가 여자를 돌아보며,

“저 집에 사시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니요, 어째서 저게 제 집인가요? 오늘 제 두 아이들이 놀러나가고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마중 나온 거예요. 그런데 저 집 덧문에 작년에 사라진 여동생 기모노 비슷한 게 걸려 있어서 그만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랍니다.” 하고 여자는 대답했다.

나그네는 이상한 말을 들어 놀란 나머지 아름다운 여자의 옆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마침 그 순간 저 편에서,

“엄마!”

“엄마!”

하고 외치며 두 아이들이 뛰어왔습니다. 여자는 기뻐하며 두 아이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헤어지겠습니다. 이 길을 똑바로 가시면 금방 신사가 있는 마을이 나옵니다.” 하고 여자는 나그네에게 길을 알려주고는, 꽃이 핀 좁은 길을 두 아이와 함께 쓸쓸하게 파도 소리가 들리는 산기슭 쪽을 향해 갔습니다.

나그네는 그와 반대편의 산에 닿아 점점 더 깊숙하게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에는 벌써 귤이 열려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해가 떨어졌을 시간에야 가고자 했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등불 밑에서 나그네는 친척들과 그날 이상했던 아름다운 여자를 본 것과 그 여자는 쓸쓸하게 반대쪽 산기슭으로 풀숲을 헤치며 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한 친척이 놀란 얼굴을 하며,

“그쪽에는 인가가 없을 텐데.” 하고 말했습니다.

나그네는 역시 “여동생의 기모노와 아주 닮은 기모노가 덧문에 걸려있었다. 그 여동생은 작년 행방불명이 되었다.” 는 여자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나그네는 친척과 함께 어제 여자가 서 있었던 곳까지 같이 가보기로 했습니다.

남쪽 섬의 기후는 따뜻하고 하늘은 신비로웠습니다. 꿀벌은 꽃에 모여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어제 해질녘 보았던 초가집까지 가자 그 집은 완전 폐가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덧문을 바라보자 아름다운 나비의 날개가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있었습니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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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1. 15:24 일본문학

女類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035/files/274_20183.html

저(26세)는 여자를 한 명 죽인 적이 있습니다. 실은 어이없이 죽여버렸습니다.

종전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패전 전에는 징병으로 이즈(伊豆)의 오시마(大島)에 끌려가서 매일매일 땅굴공사를 강제로 하게 되어, 원래부터 이렇게 삐쩍 마른 몸이라, 정말이지 지금도 죽고 싶을 정도로 고생했습니다. 종전이 되고는 뭐가 뭔지 그저 기진맥진해 과장하자면 거의 기듯이 도치기 현(栃木県)에 있는 생가에 도착해 그로부터 삼 개월간이나 부모 품에서 그저 멍하니 폐인 같은 생활을 하다가, 머지않아 학생 시절부터 알던 문학 친구인 도쿄의 야나기타(柳田)란 꽤 야무지고 약삭빠른 인물이, “돈은 있어. 신잡지를 발행할 생각이야. 너도 도와.” 하는 뜻을 속달로 부쳐서 저도 뭔가 번뜩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상경해 이“신현실”이라는 문예잡지의, 음, 편집부 차장이라고 하는 직함으로 삼 년이나 마치 반 미친 사람처럼 전후 저널리즘에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

그 종전 직후에 제가 도치기에 있는 생가에서 도쿄로 나왔을 때에는 도쿄의 정경, 보는 것, 듣는 것 전부 슬픈 것들뿐이었습니다만, 적어도 저 개인에게는 통쾌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묘한 기쁨을 느낀 일은 시장에 물자가 잔뜩 나오고, 또 먹고 마시는 포장마차, 작은 음식점이 거리 곳곳에 시끌벅적하게 넘치도록 늘어서서 이상하게 활기를 띠었습니다. 애초에 저에게는 시장에 상품이 산처럼 쌓여있어도 그걸 구매할 능력이 없어 그저 구경할 뿐이었지만 그것도 뭔가 신이 나는 기분이 들었고, 또 가끔 친구들과 포장마차의 노렌(暖簾)에 고개를 들이밀어 꼬치구이를 뜯거나, 소주를 마시거나, 큰 소리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논하거나 하면 확실히 해방된 자유를 누린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신바시(新橋)의 어느 포장마차 여주인이 저에게 반했습니다. 아니, 웃지 말아주세요. 정말 반했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니까 저도 쑥스러워 하지 않고 말한 겁니다. 말씀 드리는 게 늦었지만, 당시의 제 생활은 도쿄역 야에스구치(八重洲口) 부근에서 불에 탄 건물을 아파트 풍으로 개조한 이 층 단칸방에서 살아, 종전 후 첫 겨울의 찬바람은 그 귀신 집 같은 아파트 복도에 이상한 소리를 울리며 미친 듯이 불어댔는데, 오늘 밤도 또 저곳에 들어가 자야 하나 생각하면 허전해서 점점 소주 마시고 들어가는 횟수가 빈번해진데다, 친구나 작가와의 교제 등으로 남 못지않은 술꾼이 되었습니다. 긴자(銀座)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본교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갈 때면, 기차나 도보 어느 쪽이든 신바시에서 마시는 게 제일 편하니까 대체로 신바시 근처 포장마차에 들르곤 했습니다.

언제인가 야나기타란, 예의 야무지고, 스스로 자기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고도 늘 적확히 감지할 수 있다고 자랑하던 친구 겸 편집부장에게 이끌려서 신바시 바로 근처 강가에 서 있는 오뎅 집에 마시러 갔습니다. 그곳 또한 틀림없이 포장마차였습니다만 안이 깊어 토방에 걸상 몇 개가 늘어져 있는 까닭에 “순서대로 채워”앉으면 손님 열 명은 넉넉히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포장마차에 간 건 그날 밤이 처음이었습니다만 그 가게는 인근의 신문기자나 잡지기자, 작가, 만화가들의 사교장 같은 곳이어서,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이른바 그날그날의 "핫뉴스"를 교환하며 웃고 떠드는 곳이었습니다. 가게 이름이랄 것도 변변히 없어, 도요 공(公)이나 도요 짱 같이 그 가게 영감의 애칭 같은 게 이름이었습니다. 도요 공은 사십 가깝게 먹은 땅딸보에, 이마가 좁은 중대가리로, 눈이 나쁜 듯 항상 눈가가 빨갛게 슴벅거렸지만 위압감 있는 멋진 남자였습니다. 여주인은 처음 저에게는 삼십 넘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원래 늙어 보이는 편이었습니다. 마르고 작은 몸집에 거무스름하게 빈틈없는 얼굴이었는데 말이 없는데다 그다지 웃지 않는, 수수하고 쓸쓸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 음악가지요?”

내가 소주를 마시는 손놀림을 얼핏 보고, 여주인은 그렇게 한마디 했습니다. 왔군!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용모가 떨어지는 여자는, 누군가 머리카락을 칭찬하면 자주, 체호프의 연극에도 나옵니다만, 저는 이렇게 말라깽이인데다 얼굴색도 검푸른 빛이라 용모나 풍채에 괜찮은 구석이 없는 것은, 저도 싫을 정도 그야말로 적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양손의 손가락은 묘하게 갸름하고 손톱도 발그스름해, 다른 곳은 칭찬할 데가 전혀 없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종종 여자들이 칭찬하며 악수를 청해온 적도 있습니다.

“왜?”

저는 알면서 미심쩍은 듯 물었습니다.

“예쁜 손. 피아노 치죠?”

역시 그랬습니다.

“뭐, 피아노?”

하고 아까 말한 야무진 친구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피아노 청소도 못할걸. 그 녀석 손은 그냥 마른 것뿐이야. 마른 남자가 음악가라면, 간디 옹은 오케스트라 지휘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옆에 있던 손님도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날 밤 여주인한테 들은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를 이상하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자 여럿한테서 칭찬을 듣고 또 악수까지 청해온 적까지 있었지만 그건 전부 그 자리의 그 순간만의 농담으로, 저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만, 그 도요 공 여주인의 무심한 빈말만은 묘하게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남자란 동물은 여자가 묘하게 진심 어린 한마디로 빈말을 하면 저처럼 못생긴 남자도 갑자기 어디선가 자신감이 솟아오른 나머지 여자에게 꼴불견일 정도로 뻔뻔스럽게 굴다가 남자도 여자도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게 세간에서 자주 눈에 띄는 비극의 경위라고 봅니다. 여자는 좀처럼 남자에게 빈말 같은 걸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우리의 경우 단 한 마디에서 시작된 손가락에 대한 빈말이 점점 비극으로 돌입했습니다. 사실 자부심이 없으면 연애든 뭐든 이뤄질 수 없습니다만, 저는 그때부터 매일 밤처럼 도요 공에 다니며, 낮에는 여주인과 함께 긴자를 걷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자부심이 늘어나기만 해, 주위에서 보면 한심한 말이나 늑대가 침을 흘리며 날뛰는 것처럼 불쾌할 뿐이었겠지요. 그러다 저는 어느 날 밤 도요 공에서 주정뱅이 작가인 가사이 겐이치로(笠井健一郎) 씨한테 욕을 먹었습니다.

가사이 씨는 제 고향 선배로, 죽은 형과 대학에서 동급생이었다고 하는데, 그 관계도 있어서 가사이 씨와 저는 그저 작가와 편집자 사이 이상 친하게 지내, 잡지에 가사이 씨의 원고를 받는 건 오로지 제 담당으로, 또 가사이 씨도 제 원고 의뢰는 비교적 기분 좋게 들어주었습니다.

그 가사이 씨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신바시에 있는 오뎅 집 도요 공에 들어왔을 때는 흠칫했습니다. 가사이 씨는 댁이 신주쿠(新宿) 근처라 그쪽으로는 매일 밤처럼 마시러 돌아다녔지만, 신바시 쪽까지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밤은 무슨 모임에서 돌아가는 중인 듯 와후쿠(和服)에 하카마(袴)를 입고 있었습니다. 벌써 꽤 마신 듯 휘청휘청 제 옆으로 와 앉더니,

“들었어. 바보 자식이야, 넌.”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이었습니다.

“그거냐? 저 여자가, 그런 거야?”

오뎅을 삶는 여주인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하나도, 안 좋잖아. 이걸로 너란 남자도 끝이야. 원래, 자네, 남편 있는 여자하고, ……”

“그건,”

하고 도요 공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이미 저희는 이혼했습니다. 저희는 성격이 안 맞습니다.”

하고 침착하게 말하고 가사이 씨 컵에 찰랑찰랑 소주를 붓습니다.

“아니, 그건 자네 부부의 일은 자네 부부가 아니면 모르지.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애초에, 관심 없어. 또 이토(伊藤)(내 이름)의 연애가 어떤 식으로 진전되는가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아. 음, 이 소주는 꽤 괜찮군. 자네, 자네, 한 잔 더 주게. 그리고 물도 주게. 이봐, 여주인 씨. 여기도 뭔가 먹을 걸 가져다주게. 그래도 나는 조금도 다른 부부의 이합집산이나 연애의 자초지종 따위에 무례하기 짝이 없게 흥미를 느낄 만큼 그렇게 품위 없는 남자만은 되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 아무 관심도 없어.”

가사이 씨는 이미 만취에 가깝게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큰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해대고 있어, 다른 손님도 흥이 식은 얼굴로 턱을 괴거나 하며 멍하니 가사이 씨의 난폭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단지 이 이토를 향해 한 마디 말해두고 싶은 게 있네. 그걸 위해 오늘 밤 여기까지 들르게 된 거라고. 이봐, 이토 군. 자네와는 절교야. 하지만 이건 나의 의지가 아니네. 자네는 이 연애가 진전되면서 나를 찾아오지 않게 되겠지. 말하자면 서로 겸연쩍게 서먹서먹해져 자네는 나를 경원시하고 내 의지와 관계 없이도 자연히 절교하는 형태가 되겠지. 말하고 싶은 건 그것뿐이네. 그럼 실례하겠네. 멍청한 자식!”

휘청휘청대며 일어선 때,

“저기, 실례입니다만,”

하고 명함을 한 손에 든 채 가사이 씨에게 다가간 사람은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였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저희 이토 군이 지금까지 이런저런 신세를 져 한 번 저도 인사를 드리러 가려고 했었는데, ……그게…….”

가사이 씨는 야나기타에게서 명함을 받아 들고, 근시인 듯 눈에서 오 촌 정도 거리에 가져다 읽더니,

“그럼, 자네가 편집부장인가. 말하자면, 이토의 형뻘이란 말이군. 나는 자네가 부럽네. 왜, 이렇게 되기 전에 자네는 이토에게 충고하지 않은 건가. 돌팔이 부장이야, 넌. 도리어 이토를 부추긴 게 아닌가. 전혀, 그 빨강 넥타이가 맘에 들지 않는군.”

하지만 야나기타는 태연하게 웃으며,

“넥타이는 바로 바꾸겠습니다. 저도 이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별로다. 그걸 알면서 왜 이토한테 충고하지 않았던 건가. 충고를.”

“아니, 넥타이 말입니다.”

“넥타이 따위, 어찌되든 알 바 아니야. 네 옷차림이 어떻든 관심 없어. 문제는 내가 이토와 절교하는 일뿐이라고. 그것뿐이야. 그리고 더는 할 말은 없어. 실례하지. 모두 멍청이들뿐이다.”

내뱉듯이 말하고 셈도 치르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포장마차에서 나갔습니다. 야무진 야나기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쓴웃음 지으며,

“주정에는 당할 수 없군. 완력도 셀 것 같고 말이지. 형편이 안 좋군. 어쨌든, 이토. 선생님 뒤를 쫓아가서 사과하고 와주게. 나도 이번 자네의 연애는 조마조마했었는데, 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저놈이야말로 바보 같은 벽창호라 저렇게 앞으로 우리 잡지에 쓰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당할 수 없지. 가주게. 가서 그리고 음, 적당히 얼버무리고 사과하게나. 선생님 말씀 듣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하면서 말이지.”

저는 바로 가사이 씨를 쫓아 포장마차에서 나와, 그때, 돌아서 힐끗 도요 공의 여주인을 보니, 여주인도 얼굴을 숙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신바시 역에서 따라잡아 그렇게 말하자,

“왔는가.”

하고 예견하고 있었다는 말투로,

“한 잔 더, 마시자고.”

눈이 팔랑팔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를 잡아. 자동차를.”

“어디로?”

“신주쿠다.”

자동차 안에서 가사이 씨는,

“한 잔 마시고 휘청휘청. 두 잔 마시고 흔들흔들. 휘청휘청 흔들흔들.”

하고 염불 같은 절(節)을 낮게 거듭거듭 외더니, 그렇게 거의 자는 듯이 보였습니다.

저는 화도 치밀고 불안한데다 슬퍼서 외투 주머니에서 꽁초를 더듬어 꺼내, 추위로 곱은 그 문제의 갸름한 손가락으로 집어 라이터 불을 붙이고, 창밖의 어둠 속에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를 봤습니다.

“이토는 올해 몇 살이나 됐는가?”

아주 푹 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니슈마와시(二重回し)[각주:1] 옷깃에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나이를 알렸습니다.

“젊군. 놀랐어. 그럼 뭐 무리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는 조심하게. 나는 그 여자가 특별히 나쁘다고 하는 게 전혀 아니야. 그 사람 일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아.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나한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은 없어. 나는 제삼자야.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지. 그렇지만 왠지 너에게는 애석한 마음이 드는 거네. 애석해. 좋아하는 걸로 스스로 지옥행을 지원할 필요는 없다고 봐. 지금 자네의 기분 같은 건, 나도 알고 있어. 그거야 너와 비교하면 백 배 이상의 여자가 반했으니 말이지. 정말이라네. 하지만 어느 때고 지옥 같은 기억이었지. 모르겠네, 여자의 마음이. 잘 모르겠는 거야. 나는 말이지, 인류, 원류(猿類) 따위의 동물학상의 구별은 틀렸다고 생각하네. 남류(男類), 여류(女類), 원류(猿類)라고 해야지. 종족이 완전히 다른 거야. 몸 구조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고방식도, 대화의 의미도, 냄새, 소리, 풍경에 대해 반응하는 법도 통 다르지. 여자 몸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남류는 이해하지 못할 불가사의한 세계에 여자라는 동물은 태연히 살고 있어. 자네, 한 번 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네. 역 플랫폼에 서서 멀찍이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살짝 이삼 촌(寸) 허리를 굽혀 한 번 더 바라보면 그 전방의 똑같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여. 이삼 촌 키가 크냐 작냐에 따라 그만큼 인생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걸세. 하물며 자네, 남자 몸과 여자 몸의 그 엄청난 차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별세계에 사는 거야. 우리에게는 파랗게 보이는 것이, 여자한테는 빨갛게 보일지도 몰라. 그렇게 빨간색을 파란색이라고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그렇게 말하니 우리 남류는 여류와 서로 이해한다고 쉽게 우쭐거리곤 하지만 터무니없는 지레짐작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소주를 한 되 마시고 흔들흔들하는, 딱 그 정도 기분으로 이 여류라고 하는 생물은 진지한 표정으로 장을 보든 뭘 하고는 또 남류를 비평하지 않을까 싶네. 소주 한 되, 분명히 그 정도야. 맨정신으로 인사불성으로 그렇게 옆집 부인과 우물가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니 말이지. 실로 불가사의해. 분명히 여류들끼리의 대화에는 우리 남류에게 도저히 알 수 없는, 아주 다른 의미가 담겨있어. 우리 남류가 들으면 대충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여류끼리의 대화이니 말이지. 인사불성은커녕, 마치 발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실로 수수께끼야!”

이 가사이 겐이치로라는 작가는 젊었을 무렵 애인에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차여 그 타격이, 그야말로 미간에 깊은 상처가 될 정도로 강한 듯, 그 이후 새장가도 들지 않고, 술만 마시며 여자를 아예 신용하지 않고, 한결같이 여자를 비웃는 듯한 소설만 써서, 그래도 독서계 일부에서는 가사이 씨의 그런 십 년이 하루 같은 독설을 꽤 통쾌하게 여겨 가사이 씨도 신명이 나, 지금에는 가사이 씨의 여자에 대한 욕설은 말하자면 그의 장기같이 되어 있었다.

“응? 알겠나? 여류와 남류가 이해한다는 건, 그건, 무리라는 말이지. 그런 어설픈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나는 여기서 예언해도 좋아. 자네는 그 여자한테 배신당할 거네. 틀림없이 배신당해. 아니, 그 여자 하나만 말하는 게 아니야. 그 한 명의 개인적인 사정 따위 난 모르네. 나는 그저 동물학 쪽에서 보는 여류의 일반적인 개론을 기술한 것뿐이야. 여류는 돈을 좋아하니까 말이지. 죽은 이의 이마에 세모난 종이가 있어, 거기에 “사”란 글자가 쓰여 있는 것처럼 여류의 이마에는 예외 없이, “돈”이란 글자가 쓰인 세모난 종이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걸세.”

“죽는다고 하네요. 헤어지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뭔지 몰라도 약을 갖고 다닙니다. 그걸 먹고 죽는 다네요. 태어나서 첫사랑이라고 합니다.”

“넌 머리가 이상해 진 게 아닌가, 멍청한 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멍청한 놈. 나는 단념했다. 여기는, 어디냐. 요쓰야(四谷)인가. 요쓰야에서 돌아가라, 멍청한 놈. 잘도 내 앞에서 그런 어이없는 말을 뻔뻔스럽게도 하는구나. 지금 죽는 건, 너겠지. 여자가, 흠, 무슨 말을 하든, 결국은 돈이야. 기사 양반, 요쓰야에서 바보가 한 명 내리오.”

여자 마음은 공연히 시험해 볼 게 아닙니다. 저는 가사이 씨한테 하도 거칠 게 매도당해서 분한 마음에 그 울분을 애인에게 풀어, 그 다음 날, 여주인이 회사로 주뼛주뼛 찾아오자 냉담하게, 전날 밤의 굴욕을 숨김없이, 약간의 과장도 없이 들려주고는 나도 남자로서 그렇게 욕을 먹었으니 이제 더 고집을 피운들 나는 너와 헤어져서 저 주정뱅이 가사이 씨를 다시 보게 해야 한다, 하고 실은, 헤어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는데, 한 편으로는 또, 이참에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럴듯하게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그날 밤 자살했습니다. 약을 먹고 수로에 몸을 던졌습니다. 뒤처리는 도요 공이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공손하게 해줬습니다. 그 이래로 나와 도요 공은 애처로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주인의 자살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초봄의 어느 날 저녁, 가사이 씨는 그날 밤 이래 처음으로 도요 공의 포장마차에 언제나처럼 만취한 채 나타났습니다.

“내가 저번 달 이 가게에서 계산을 했는지, 안 했는지, ……”

그다지 기운이 없는 말투였습니다.

“계산은 필요 없습니다. 나가 주시죠.”

하고 도요 공은 평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습니다.

“뭐야, 화내고 있네. 남류, 여류, 원류가 신경 쓰였나 봐? 그렇지만 정말이라면 어쩔 수 없지.”

찰싹하고 시원한 소리가 났습니다. 도요 공이 가사이 씨의 뺨을 친 겁니다. 이어서 제가 발로 차 쓰러뜨렸습니다. 가사이 씨는 네발로 기며,

“멍청한 놈, 폭력은 쓰지 마. 남류, 여류, 원류, 틀림없이 옳아. 틀리지 않았어.”

이미 반쯤 자는 만큼 취해 있었습니다. 반항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의 야무진 신사, 야나기타가 딱하고 가사이 씨의 머리를 치며,

“눈을 떠. 이 동물박사야. 네발로 기어나가라.”

하고 말하고, 또 딱 가사이 씨의 머리를 때렸지만 가사이 씨는 아무런 저항도 않은 채 비틀비틀 일어나더니,

“남류, 여류, 원류, 아니, 여류, 남류, 원류의 순인가. 아니, 원류, 남류, 여류일까? 아니, 아니. 원류, 여류, 남류의 순인가. 아, 아프군. 폭력은 안 돼. 원류, 여류, 남류인가. 부조금 천 엔 여기 두고 가네.”


  1. 인버네스를 일본풍으로 바꾼 옷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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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0. 22:30 일본괴담

黄金の枕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17_13101.html


신도탁(辛道度)은 방랑길을 계속하고 있었다. 옷은 얇고 호주머니는 비어, 먹을 것을 주는 동정심 많은 사람이 없을 때는 물로 굶주림을 견디고, 잠자리 빌릴 곳이 없으면 나뭇잎을 깔고 노숙했다. 그렇게 궁핍한 삶이었지만 그는 결코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행복이 보였다. 요컨대 그는 젊었다.

옹주성(雍州城) 서문에서 오 리 정도 북쪽으로 갔다. 울적한 저녁이었다. 도탁은 그날도 아침부터 물 외에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못해 뭔가 줄 것 같은 부잣집을 찾아 걸었다. 밭 가운데나 숲 그늘에 닿자 민가 지붕이 조금씩 보였지만 들어가 볼만한 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일을 매일 같이 겪은 그는 그다지 당황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았다. 조만간 어딘가 좋은 곳을 찾겠지 하는 마음에 태연한 얼굴로 느릿느릿 걸었다.

작은 시내의 흙다리를 건너고 단풍이 든 대지 아래쪽을 돌자 저택 구조의 큰 건물이 보였다.

“겨우 좋은 곳을 찾았군.”

도탁은 그 문 쪽으로 갔다. 출입구에 하녀 같은 여자가 서 있었다. 마치 그가 오는 걸 기다린 것처럼.

도탁은 여자 앞으로 갔다. 여자는 그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는 농서(隴西)의 서생, 도탁이란 사람입니다만 돈이 떨어져 식사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주인께 식사를 하게 해주십사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만 여쭤봐 주실 수 없으실지요.”

“아, 식사를. 그럼 잠시 기다려 주세요. 가져다 드릴 테니.”

여자는 선선히 말하고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탁은 돌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이윽고 여자가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하시면 오늘 밤 묵고 가셔도 좋다고 말씀하셨으니, 들어오시지요. 여기 주인은 마님이세요.”

도탁은 감사 인사를 하며 그 뒤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빨갛게 칠한 기둥, 녹색의 벽 등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님께서는 여기 계셔요.”

여자는 문을 열었다. 도탁은 멋쩍어 주저주저하며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는 호리호리한 몸에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가 걸상에 앉아있었다. 방 구석구석에는 운모로 된 칸막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도탁은 멀리서 인사했다.

“이 분이 방금 부탁 드렸던 서생 님이세요.”

여자는 이렇게 주부에게 소개했다.

“자, 들어오세요. 이 집에는 저 혼자 있으니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거기에 앉아 주세요. 곧 뭔가 만들어 오게 할 테니.”

주부는 잠시 허리를 들어 자기 앞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저는 농서에서 온 사람으로, 신도탁이라고 합니다. 유학하고 있습니다만 노자가 부족해 여러분께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도탁은 눈부신 듯한 얼굴로 섰다.

“그건 이미 이 아이한테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며 주부는 여자 쪽을 힐끗 봤다.

“자, 거기에 앉아 주세요.”

도탁은 겨우 주부 앞에 가 앉았다. 그걸 본 여자는 나갔다.

“저도 혼자라, 쓸쓸해하던 참이었어요. 귀찮으시더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도탁은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이 들어 얼굴을 똑바로 들지 못했지만 차츰 편안해졌다. 주부는 비쳐 보일 듯 새하얀 얼굴에 어렴풋이 볼연지를 발랐다.

“그렇게 돌아 다니시니 재미있는 일도 있겠지요.”

예쁜 주부는 조금의 격의도 없이 도탁의 말상대를 해주었다. 부드러운 부인의 말이 젊은 남자의 귀에 기분 좋게 울렸다.

“저처럼 불행한 사람은 또 없을 거예요.”

주부는 이런 말도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때 여자 둘이 상을 들고 왔다. 주부는 방 동쪽에 있는 탁자 위에 그걸 놓았다.

“변변치 않지만 들어 주세요.”

주부는 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탁은 친척집 식탁에 앉은 것처럼 사양 않고 그곳에 앉았다. 향기 좋은 술도 딸려 있었다.

도탁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었다. 두 여자가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도탁은 이제 완전 유유자적해서 타고난 남자다움을 보여주었다.

도탁은 주부와 나란히 앉았다. 등잔 빛이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도탁은 넋을 잃었다.

“그대는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시나요?”

도탁은 주부의 태생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저는 아직 그대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일이 없습니다.”

“저는 진(秦) 민 왕(閔王)의 딸로 이 조(曹)나라에 오게 된 후 이십삼 년간 혼자서 지낸 자예요.”

도탁은 그런 귀족과 동석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대가 싫지 않다면 부부가 되어주세요.”

“그렇지만 그대는 고귀한 신분이 아닙니까?”

주부의 아름다운 몸이 도탁에게 기댔다.

주부와 도탁은 푸른 장막 그늘이 된 침상 위에 나란히 있었다.

“이렇게 당신과 삼일 밤낮 있었지만 이 이상 같이 있으면 재앙이 닥쳐요. 이제 부디 돌아가 주세요.”

주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별에 대한 저의 진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드릴 물건이 있어요.”

주부는 침상 뒤 작은 상자에 손을 넣어 그 안에서 황금 베개를 꺼냈다.

“이걸 드릴게요.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말한 주부는 다시 울었다.

도탁은 처음에 신세를 진 여자의 배웅을 받아 문을 나섰다. 열 발자국 걷더니 뒤로 돌았다. 저택이 사라지고, 가시나무가 무성한 고분(古塚)이 있었다. 도탁은 놀라 허둥지둥 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달리다 정신이 들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황금 베개는 여전히 있었다.

도탁은 진 나라에 갔다. 궁핍한 끝에 그는 황금 베개를 팔아 돈을 얻고자 했다. 도탁은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교역을 하고 있었다. 도탁은 돈이 있을 법한 사람을 찾아 그 베개를 꺼내 보였다.

“이걸 사주지 않겠는가.”

가난한 서생이 가지고 있기에 어울리지 않는 황금 베개였다. 몇 명에게 보여도 사고자 하는 이가 없었다.

“이걸 사지 않겠는가. 싸게 팔아도 좋네.”

도탁은 다시 지나가다 만난 남자에게 그 베개를 보였다.

소가 끄는 아름다운 마차가 반대편에서 왔다. 마차 주위에는 남자, 여자 수행원이 붙어 있었다. 마차에는 진의 왕비가 타고 있었다. 왕비는 도탁이 손에 든 황금 베개를 살펴 보았다.

“저 베개를 가진 남자를 이곳으로 부르도록.”

수행원 하나가 도탁 옆으로 왔다.

“황후 님의 부르심이다, 이쪽으로 오도록.”

도탁은 수행을 따라 마차 옆에 갔다. 마차는 서 있었다.

“그 베개를 이쪽으로.”

수행원이 도탁의 손에서 베개를 들어 마차 창문가에 내밀었다. 베개는 왕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베개를 어떻게 해서 그대가 가진 것이냐.”

도탁은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베개를 손에 넣은 경위를 말했다. 말하는 동안 왕비는 울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히 내 딸이 갖고 있던 것이다. 그럼 여자에게서 받은 것이냐.”

왕비는 하염없이 울었다.

도탁은 왕비의 마차를 따라 진 왕궁에 갔다. 왕궁에서는 도탁의 말에 의심을 품고 사람을 시켜 무덤을 파헤쳐 관을 열어 조사하게 했다. 이십삼 년 지난 여자의 시체는 썩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시체와 함께 넣은 물건을 대조했다. 다른 물건은 전부 그대로였지만 황금 베개만 없었다.

다음으로 죽은 이의 몸을 조사했다. 거기에는 마치 정교한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진 왕비는 도탁의 사정을 양해했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실된 사위다. 딸 또한 신이다. 죽고 이십삼 년이나 지나 산 인간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비는 도탁을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삼아 금과 비단, 거마를 내리고 본국인 농서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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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9. 19:47 일본문학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308/files/49298_34002.html

작가소개 : http://blog.naver.com/japanliter/140027128269

"저기, 당신. 지금 오쿠(尾久)에 있는 집(친척)이라도 가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마누라인 오하쓰(お初)가 리헤이(利平)의 머리맡에서 끊임없이 설득한다. 리헤이가 쟁의단에서 머리를 깨지고 왔을 때부터 오하쓰는 아주 겁을 먹었다.

"무슨……말도 안 되는……도망치다니, 그런……앗, 아, 아."

눈을 돌려 마누라에게 호통을 치려고 했지만 맞아 붕대 감은 머리의 상처가 따끔따금 죄여 온다.

"그렇지만, 당신……"

오하쓰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당신, 또 오늘 아침 쟁의단에 어디선가 이상한 놈들이 잔뜩 왔으니……. 그런 위험한 놈들이니 정말 당신 목숨이라도 빼앗을 지도 몰라……. 어머, 봐, 저렇게 많이 시끌시끌하는 거, 안 들려?"

안 들리기는 커녕, 리헤이의 온 신경은 담 하나만 사이에 둔 옆 쟁의단 본부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소리에 기상대의 풍향계 화살처럼 쏠려 있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그래도 직장(職長)이라고, 회사의 신임을 짊어지고 또 한 편으로는 놈들의 신뢰를 짊어지고 수백 명의 머리 위에 서 있는 거다……. 저런 은혜도 모르고 의리도 모르는 놈들한테 겁먹어서 살림을 정리하고 도망치라니, 그런 모욕적인 일이 있을까.

"시끄러워……. 저런 놈들은 파업으로 밥먹고 다니는 깡패들이야. 뭘 할 수 있다고……. 시끄러우니까 아래 내려가 있어, 내려가 있으라니까……."

오하쓰는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안아 일어섰지만,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나는 물론이고, 애들도 위험해서 밖에도 못 나가고 아무것도 못 해."

입 속으로 중얼중얼거린다.

"이봐, 밑에 있는 경찰한테 가와무라(川村) 잡혔냐고 물어보고 와."

흥분하자 머리의 상처가 한층 아파 온다. 병원에도 안 가, 칭칭 감은 붕대로 피가 번져 나오는데 검은 담 너머 바깥의 빛이 비춰 눈구석이 몹시 가물가물한다. 은혜도 모르는 가와무라 이 개자식! 어릴 적부터 키워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내 머리를 깨다니……. 감방 들어가서 울지나 마라…….

뒤로 젖혀 반자널을 보며 욱신욱신 쑤시는 아픔을 꾹 눌러 참았다.

회사가 직장폐쇄를 한 이래, 벌써 이럭저럭 사십 일이다. 인쇄기에 녹이 슬 것 같은 회사 내부에 있는 리헤이와 동료들은 직장 단체를 만들어 처음에는 이 쟁의에 "공평한 중립"을 지킨다는 성명을 냈다. 다만 그걸 신용한 쟁의단원은 한 명도 없었지만……. 하지만 이제 오늘에는 리헤이와 그의 동료들이 사장의 유일한 손발이자 버팀목이었다. 회사의 흥망은 곧 자신의 흥망이라 생각해왔다. 그들은 쟁의단원 중 온건파 단원들을 알았다. 또 이런저런 단원들의 약점도 알았다. 그게 가장 먼저 시행되었는데, "분열시키기" "의리와 인정만으로 유괴"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큰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탈자 공략에 나섰지만 그것도 강고한 쟁의단의 방해로 예상만큼의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트럭 안 짐 사이로 다섯 여섯 명의 이탈자를 싣고 회사 바로 근처까지 왔을 때, 트럭 운전수와 변장한 리헤이가 심하게 얻어맞은 때도 이때였다.

그래도 직장(職長) 동료의 혈연관계나, 이를테면 리헤이처럼 부자가 같이 근무하는 자는 아들을 회사로 보내 간신히 이백 명이 안 되는 이탈자로 한편으로 쟁의단을 위협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기계에 녹이 슬지 않을 정도로 공회전을 시키고 있었다.

"자네, 회사 안에서 생활하는 게 좋겠네. 쟁의단 본부에 붙어있는 집이라니, 위험해서 살 수가 있나."

동료도 끊임없이 리헤이를 설득했지만, 고집 센 그는 듣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적 우세를 등에 업고 그때 날뛰는 혈기다.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형사나 정복 경찰이 지켜줘 회사에서 2정(丁)도 떨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친 몸으로 이 층에 드러눕고 나서 벌써 오육 일 지난 아침의 일이다.

오하쓰가 올라 왔다.

"잡혔대요, 가와무라가"

"언제야, 어제래?"

"어젯밤이라네요. 그 꼴을 보라지. 젠장, 은혜도 모르는 놈이 어젯밤에 심한 꼴을 당했다지 뭐예요."

"흐음"

리헤이는 머리의 통증이 훨씬 줄어든 것처럼 순간 느껴졌다. 사회주의자 같이 긴 머리카락과 영리해 보이는 작지만 맑은 눈을 한 가와무라가 갑자기 작디 작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열두세 살 어릴 적부터 혼나고 두드려 맞으며 자신에게 일을 배웠던 그 가와무라의 얼굴이 생생히 눈에 떠올랐다.

그저께 밤에도 이삼십 명 검거되고, 그 바로 십 일 전에도 사오십 명 검거된 쟁의단이다. 아무리 삼천 명으로 시작한 쟁의단이라 해도 직장(職長)들이 생각하기에 그 승패는 불보듯 뻔했다.

"쟁의가 끝나면 내가 데리러 가지."

그러면 그놈들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는 왠지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심복이자 내제자[각주:1]라고 할 부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등을 돌렸다는 사실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한 일이었다. 가와무라도, 다카하시(高橋)도, 사이토(斎藤)도 오노(小野)도, 그외 십수 명 그를 지지하는 유력한 부하는 모두 조합의 손에 빼앗겨 버렸다.

그럼에도 일체의 원한을 없던 일로 하고 쟁의 중에 스스로 데리러 가는 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가져올까.

아직 조합같은 게 없을 무렵, 귀여운 부하들 가운데서 높이 앉아 축배를 들던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 심한 꼴을 당했대?"

리헤이는 이불 위로 살살 일어났다.

"그렇대"

마누라는 조금 의아스러운 듯이 리헤이의 얼굴을 봤다.

"신경 쓸 거 없잖수, 그런 은혜도 모르는 놈들."

"음, 그건 그렇다만."

그는, 마누라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온 다섯째 여자아이를 한손으로 어르며 창문 장지 사이로 검은 담을 보았다.

마침 그때…… 담 너머 쟁의단 본부에서,

"만-세, 만-세"

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십 명, 백 명의 목소리다.

"뭘까?"

부부는 눈을 마주 봤다.

"어디……"

오하쓰가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조심 장지를 열어 담 너머를 엿보더니 그대로 숨을 죽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래도 오하쓰는 입을 다문다.

리헤이는 아픔을 잊고 아기를 안은 채 오하쓰의 등뒤에 섰다.

그러자 본부 뒤 툇마루에서 마루 밑 토방까지 가득 쟁의단원이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게 정면으로 보였다.

마루 위 젊은 남자 이삼십 명은 마침 한중(寒中)인데도 굴하지 않고 노동복을 휙휙 벗어던진 알몸이었다.

"팬티도 벗어버려, 참을 수가 없네."

하고 말하며 새빨갛게 될 정도로 온몸을 긁어대는 남자도 있었다.

"어머, 저 많은 이 좀 봐."

붉은 어깨띠를 두른 여공들은 바지런하게 벗어던지는 노동복을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통에 집어넣는다.

"이봐, 그만 해. 여자 앞에서 그렇게 벗어대지 말라고."

"그만 하라니……. 너희들, 여자는 잠깐 딴데 봐주지 않을래."

"아하하하하"

"오호호호"

남자도 여자도 와 폭소를 터뜨렸다.

"왜 그러는데, 뭐야?"

오하쓰는 리헤이에게 살짝 말한다. 리헤이는 입을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저건 오늘 아침 유치장에서 방면되어 돌아온 쟁의단원을 다른 자들이 환영하는 자리다!!

리헤이는 놀랐다. 어두운 곳에 수십 일 처박혀 있어야 할 그들의 얼굴 어디에 근심의 빛이 있는가. 흔연한 게 마치 개선 장군이 아닌가! ……마중하는 자도 돌아오는 자도 그런 유쾌한 폭소는 어디서 나오는 거냐!!

따뜻한 겨울의 아침 햇살에 비친 젊은이 사이에서 움직이던 누군가 리헤이를 공격했다. 마루 끝에 즐비하게 늘어선 십수 명의 나신 중 한 명이 낮게 노래를 시작하자 다른 이들이 높게 응하여, 의기왕성한 힘의 혁명가가 크게 파문을 일으켜 얼어붙은 아침 공기를 찢으며 높이 뛰어올라 퍼져 간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남자 한 명은 날아오를 듯한 자세로 손을 흔든다……. 그러자, 오하쓰가 무심코 소리를 질렀다.

"앗, 리스케(利助)가, 당신 리스케가!"

오하쓰는 리헤이의 팔을 힘껏 당겼다.

"뭐, 리스케?"

세상에!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바로 눈앞에서 목이 터져라 높이 노래하는 나신 사이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리스케가 있었다!

리헤이는 망연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 확실히 회사 안으로 트럭에 태워 보냈을 리스케였는데……. 하지만 틀림없이 리스케는 알몸으로 혁명가를 부르고 있었다.

"여러분, 옷을 입어주세요. 밥 다 됐어요."

여공 한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공이 제각기 밥통을 옮긴다. 구운 꽁치가 접시 위에서 뒤집혀 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리헤이는 반쯤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리스케, 리스케" 마누라는 담 너머로 부르려 했다.

"그, 그만, 조용해."

리헤이는 마누라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시켰다.

"자, 들어가자. 문 닫아."

리헤이는 문에 손을 댄 순간, 문득 한 번 더 리스케쪽을 봤다.

그때, 알았는지 몰랐는지 리스케는 옷을 입으며 이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가만히 리헤이의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 눈, 그 눈…….

리헤이는 서둘러 장지를 닫아 걸었다.

"저 눈이야, 저 눈. 가와무라도 저 눈이야!"

리헤이는 머리를 싸매고 입을 다물었다.

쟁의 이전부터 조합 일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뛰쳐나갔던 리스케였다. 리헤이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회사로 돌아간 일도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긴 이상했다.

"이래선 마치 부모고 자식이고, 의리고 인정이고 없잖나."

리헤이는 목이 멜 듯 했다. 그리고 열이 난 탓인가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는 침구를 머리까지 푹 뒤집어 쓰고 눈을 감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때도…….

이탈자 네다섯 명을 데리고 ××마을 파출소 옆에 트럭을 세우고 다른 한 명의 집에 가자고 돌았던 골목에서 우연히 두 소년공을 발견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봐, 산코(三公), 요시코(義公)" 하고 부르자, 둘은 변장한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돌아 다가왔다. 그리고 둘은 "미야모토(宮本) 리헤이다!" 하고 냉담하게 지껄이고는, 발걸음을 돌려 후다닥하고 도망쳐 버렸다. 놈들은 망을 보고 있던 것이다. 건방지게 "미야모토다." 라니, 평소에 부모보다 두려워하고 또 존경하는 자신에게 냉담하게 지껄였을 때도 저 눈이었다.

서둘러 트럭으로 회사 근처 길모퉁이에 왔을 때, 느닷없이 옆쪽에서 남자 오육 명이 운전석를 향해 달려들었다. 큰일 났다고 자세를 취하자 운전석 뒤 창문을 부수고 서서히 다가왔을 때 저 가와무라의 눈…….

"저 눈은, 부모고 은인이고 죽일 눈이야!!"

리헤이는 온몸을 쑥 지나가는 추위와도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준비 해. 오늘 안에, 이사하자고."

벌벌 떠는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한 리헤이는 조금 전까지 넘치던 자신이 모두 없어져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1. 집에서 먹이고 재우며 키우는 제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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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22:51 일본괴담

狸と俳人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2276_16444.html


안에이(安永) 연간(年間)의 일이다. 이세타이뵤(伊勢大廟)[각주:1]의 나이구료(内宮領)에서 게쿠료(外宮領)에 이르는 뒷길에 감으로 유명한 렌다이지(蓮台寺)라고 하는 마을이 있었는데, 사와다 쇼조(澤田庄造)라는 사람이 그곳에 살았다.

쇼조는 다른 이름은 나가요(永世), 호는 로쿠메이(鹿鳴)라고 하였는데 와카(和歌)와 하이쿠(俳句)에 능했다. 특히 하이쿠는 그 무렵 꽤 유명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 사이에서는 별난 구석이 있는 하이쿠 시인으로 통했다.

쇼조는 번잡을 싫어해 장가도 들지 않고 때때로 찾아오는 시우(詩友) 외에는 이렇다 할 교제도 없이 혼자 방에 칩거하며 시를 짓는 것만을 즐겼다.

어느 늦가을 저녁의 일이었다. 평소처럼 떫은 차(渋茶)를 홀짝거리며 시 짓기에 골몰하던 쇼조가 문득 돌아보니 창문 창호지에 이상한 그림자가 비쳤다. 쇼조는 수상쩍게 여겨 통로와 창문의 창호지에 손을 댔다가 누군가 있으면 창피해 할 것 같아 손을 떼고 뜰 앞으로 돌아나가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는 늙은 너구리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너구리는 쇼조의 모습을 보고도 도망치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쇼조는 흥미롭다고 생각해 집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와 던져 주었다. 그러자 너구리는 그걸 맛있게 먹고는 가버렸다.

그 다음 날 저녁에 쇼조가 책을 읽고 있자 또 창밖에 너구리가 와서는 웅크렸다. 쇼조가 또 먹을 것을 들고 나와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자 너구리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너구리는 그 다음 날 밤에도 왔다. 기다리던 쇼조는 손님방으로 불러들였다. 너구리는 처음 접하는 문에 주저하는 모습이었지만 얼마 안 있어 꼬리를 흔들며 들어왔다. 그리고 책을 읽는 쇼조 옆에 앉아 혼자서 잠시 놀다 쓸쓸한 듯이 돌아갔다.

그로부터 너구리는 매일 밤 같이 찾아왔다. 쇼조는 쓸쓸히 홀로 생활하던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너구리는 쇼조를 잘 따라 돌아가라고 할 때까지 놀다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밤 평소와 같이 쇼조 옆에서 노는 사이 집 밖에 큰 눈이 내렸다. 쇼조는 눈이 쌓인 걸 보고는 너구리를 내보내는 게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너구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음, 너구리 공(公), 오늘 밤은 눈이 오니 쉬었다 가게나."

하고 말하자 너구리도 꼬리는 흔들며 기뻐했다. 그날 밤 너구리는 쇼조 이불 속에 들어와 잤는데, 그로부터 너구리는 쇼조의 허락 하에 자고 가게 되었다.

쇼조가 너구리를 귀여워한다는 소문이 이윽고 마을에 퍼졌다. 마을 사람은 가끔 동틀 녘쯤에 쇼조의 집에서 나오는 너구리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서로 조심해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마을 아이들도,

"선생님 너구리를 괴롭히면 안 돼."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쇼조가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였지만 그게 악화되어 중태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쇼조를 문병했는데, 그때마다 쇼조의 머리맡을 지키는 갸륵한 너구리의 모습을 보았다. 쇼조는 자신의 병이 깊어 오래가지 못할 것을 깨닫고, 어느 날 너구리에게 말했다.

"자네와도 오랫동안 친분을 나눴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날이 왔네. 내가 가면 이제 사람 근처에 가지 않도록 하게나.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논밭은 망치지 않도록 하고. 자, 이제 됐으니 돌아가게."

쇼조의 말이 끝나자 너구리는 초연(愀然)히 나갔다. 그날 밤, 쇼조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의 간호 아래 숨을 거뒀다. 안세이(安永) 칠 년 유월 이십오 일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수일 후였다. 하루 일을 마친 마을 사람 한 명이 귀가를 서두르며 쇼조의 무덤 옆 근처에 막 다다랐을 때 무덤 앞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아름다운 기모노를 입고 풀꽃 한 다발을 들었다. 자세히 보자 여자는 우는 것처럼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이 부근에선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마을 사람은 누굴까 싶어 조심스레 그 옆에 갔다.

"여보시오."

마을 사람이 이렇게 말을 거는 순간, 여자의 모습은 홀연 사라지고 없었다. 옆에는 여자가 손에 들었던 풀꽃이 떨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듣고는 분명 그 너구리일 거라 하며 그 갸륵한 행동과 마음에 감동을 받아 너구리를 절대로 해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이후 그 마을에서는 지금도 너구리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1. 일본 황실의 종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별칭.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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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21:32 일본괴담

再生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1618_16888.html


진시황 때 왕도평(王道平)이란 남자가 있었다. 어릴 적 같은 마을에 사는 당숙해(唐叔偕)란 여자와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지만, 곧 도평은 징병되어 군인으로 남국에 정벌을 갔다가 적중(敵中)에 잡혀 구 년 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여자 집에서는 여자가 혼기가 찬 걸 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남자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유상(劉祥)이라는 사람 집에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여자가 승낙하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를 부려 강제로 보냈다.

여자는 도평을 잊을 수 없어 침울해하다가 마침내 울화병에 걸려 삼 년 후에 죽고 말았다. 도평은 여자가 죽은 지 삼 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집에 돌아왔지만 꿈에도 잊지 못했던 여자가 죽어 낙담해 무덤에 찾아가,

"내가 돌아오는 게 늦어 이렇게 되어버렸소. 억울해 참을 수가 없으니 넋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보여주오."

하고 말하며 우니 어디선가 죽은 여자 얼굴이 나와서,

"저는 아버지가 억지를 부려 유상에게 시집갔지만, 당신만 생각한 나머지 죽었어요. 하지만 저의 몸은 아직 정말로 죽은 게 아니라 당신과 부부가 될 수 있어요. 무덤을 파헤쳐 관에서 제 몸을 꺼내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래서 도평은 무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관뚜껑을 열고 꺼내보니, 여자가 살아났으므로 집에 데리고 갔다.

그러자 여자 남편인 유상이 관청에 호소했다. 관청에서는 법률에 따라 재판하려 했지만 그럴 법률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진 왕(秦王)에게 주상(奏上)하자 진 왕은 왕도평의 처로 삼으라고 하기에 도평은 여자와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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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15. 00:34 일본괴담

怪譚小説の話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54/files/4951_16439.html


나는 글을 쓸 때 흥미로운 구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줄거리가 정돈되지 않을 때면 육조소설(六朝小説)을 꺼내 읽는다. 진당(晋唐)소설 육십 종으로 당시의 단편 육십 종을 엮어낸 총서인데 역사의 일화, 괴담, 기담이 있어 모두 나름대로 재미있다. 이즈미 교카(泉鏡花)의 "고야성(高野聖)"은 그 중 환이지(幻異志)가 실려있는 "판교삼낭자(板橋三娘子)"에서 나온 것이다. 판교에 삼낭자라는 여관을 하는 노파[각주:1]가 있어, 나그네에게 기이한 메밀떡을 먹여 당나귀로 만들어 돈을 벌었는데 조계화(趙季和)란 남자가 그걸 알고는 거꾸로 그 떡을 노파에게 먹여 당나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로, 고야성에서는 환술로 나그네를 말로 만들거나 원숭이로 만드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서 대체적 구상에서는 흔적을 못 지웠지만 그외에는 흠잡을 데가 없는 독립된 창작으로, 또 굴지의 명작이기도 해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가 서호가화(西湖佳話)에 있는 뇌봉괴적(雷峯怪蹟)을 그대로 번안한 음란한 사성(蛇性の婬)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 그 총서 중 "유괴록(幽怪録)"에는 이와미 주타로(岩見重太郎)의 붉은 개코원숭이 퇴치(緋狒退治)라고 하는 인신 공양 설화가 있다. 당(唐)의 곽원진(郭元振)이란 사람이 밤에 여행하고 있었는데 등불이 화려한 집이 있어 묵어가려고 가보니 십칠팔 세 되는 소녀가 한 명 울며 쓰러져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신(魔神)의 산제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곽이 소녀를 달래고 기다리니 과연 가마에 타고 여러 명의 종자를 거느린 남자가 왔다. 곽은 희귀한 술안주를 진상한다고 사슴의 육포를 바치는 척하고 그 손을 베어 다음 날 핏자국을 쫒아가 보니 커다란 멧돼지가 있으므로 죽여서 먹었다. 이 유괴록 이야기는 명(明)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 중 신양동(申陽洞) 기록이 바탕이 되어있다.

또 그 총서의 "속유괴록(続幽怪録)"에 있는 정혼점(定婚店) 이야기는 붉은 줄의 인연(赤縄の縁) 전설이다. 위고(韋固)라는 사람이 결혼 일로 다른 사람과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아침 일찍 용흥사(竜興寺)라는 절에 갔더니 노인 한 명이 계단 위에서 주머니 속에 든 걸 읽고 있었다. 위고가 그게 뭐냐고 묻자 남녀 결혼에 대해 쓰여 있는 것으로, 주머니 속에 든 붉은 줄로 남과 여의 영혼을 묶으면 어떻게든 부부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결혼에 대해 묻자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며 그의 아내가 될 여자는 올해 세 살로 열일곱이 되지 않으면 결혼은 할 수 없지만 지금 거지 같은 야채상 할머니에게 안겨서 매일 시장에 온다고 했다. 이고는 화가 나서 하인에게 명령해 죽이라고 했다. 하인은 아이 이마에 칼로 상처만 내고 도망쳤는데 십사 년 후 아내를 맞고 보니 그 아내는 항상 이마에 꽃비녀를 꽂았다. 왜 그러냐고 묻자 세 살 때 흉한에게 찔려서 상처가 났다고 했다.

요컨대 육조소설은 중국문학의 원천으로 그걸 바탕으로 많은 소설, 희곡, 시가 나왔는데 그 흐름을 보면 "소신기(捜神記)", "전등신화(剪燈新話)", "서호가화(西湖佳話)", "요재지이(聊斎志異)"라고 하는 괴담소설이 되었다. 아키나리(秋成)의 음란한 사성(蛇性の婬)이 "서호가화"의 번안이라는 건 이미 말했는데, 엔조(円朝)의 괴담으로 유명한 "모단등롱(牡丹燈籠)"은 "전등신화"에 있는 모단등기(牡丹燈記)에서 나온 것으로 이 모단등기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도 여럿 만들어졌다.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의 괴담에 나오는 귀없는 법사 이야기(耳なし法師の話) 또한 모단등기의 변형이다.

고이즈미 야쿠모의 괴담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오소리 괴담이다. 상인이 기(紀)나라 국경을 지나는데 소녀가 울고 있었다. 곁에 다가가 달래주려고 하자 소녀가 고개를 들었는데 눈과 코가 없는 놋페라보였다.

이 놋페라보 이야기는 혼죠(本所) 7대 불가사의 오이테케보리(置いてけ堀)와 비슷하다. 내 고향에도 이 계통의 이야기가 있다. 한쪽에 산이 있고 또 한쪽에는 밭과 소나무숲이 있는 인가(人家)고 뭐고 없는 곳에, 동쪽에서 오면 산 입구에 샤미센 소나무(三味線松)라고 덴구(天狗)가 샤미센을 켰다는 전설이 있는 소나무가 있어 나 또한 어릴 적 아주 무서워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여자 한 명이 그 샤미센 소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바로 앞에 여자가 걷고 있었다. 마을 여자는 동행이 생겨 반가운 마음에 옆에 다가가서 사투리로,

"저기, 같이 가시면 어떨까요. 이상한 게 나오면 든든하잖아요."

하자 앞에 가던 여자는,

"어머, 저 말인가요."

하고 돌아보는데, 여자는 눈과 코가 없는 놋페라보였다.



  1. 여기서 원문은 노파이지만 판교삼낭자 원작에서 삼낭자는 30여 세로 나온다.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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