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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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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27. 20:00 일본문학

茶漬三略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562/files/52453_499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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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키 마고헤이지(柾木孫平治) 비망록


사람들은 당시의 쇼군이었던 태합(太閤)의 집안 내력을 알고 싶어했다. 하시바 지쿠젠노카미 히데요시(羽柴筑前守秀吉)이었을 쯤부터는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작은 원숭이(小猿)나 히요시(日吉)라고 불리며 제대로 된 성(姓)마저 없었을 무렵의 내력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태합은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평생 다른 사람에게 말한 예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구태어 묻는 이가 있으면,

「넓은 하늘(大空)에 집안 내력은 없다」

하고 더할 말이 없다는 얼굴을 했다.

또 그 위엄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례하게 묻는 이도 없었다.

어렴풋이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히쓰(祐筆)나 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徳) 등도 부득이 내력을 언급할 때는,

히데요시 공(公) 가라사대,

[각주:1] 비슈[각주:2]의 민간에서 태어나서 풀 베는 법은 알았지만 붓 잡는 법 깨치지 못하고, 다만 우리 어머니는 대궐(内裏) 수라간(御厨子所) 하녀이셨지만 어느날 밤 꿈에 수 천만의 오하라이바코(御祓箱)가 이세(伊勢)에서 하리마(播磨)를 향해 빈틈도 없이 하늘 위를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내를 잉태하셨다――

하고 적고는 했다.

그런 것에서 히데요시의 모친이 모치하기(持萩) 쥬나곤(中納言)의 딸이었다든가, 그는 시골 출신의 쥬나곤이었던 야스히라(保広)의 서자(落胤)라든가, 오다(織田)가의 하급 무사(被官)의 아시가루(足軽)였다 귀농한 농민 야에몬(弥右衛門)의 자식이었다고 하는 게 진실인가, 소문이나 험담도 가지각색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태합은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는 말한 예가 없다.

  1. 원문은 われ [본문으로]
  2. 오와리국(尾張国)의 별칭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23. 19:52 일본수필

俗即菩提[각주:1]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562/files/55098_50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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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가지고 버리러 가는 군중이 왜 저렇게 유쾌한 것 같은 얼굴로 모여있는 것일까. 가끔씩 문득 그날 아침의 엄청난 발걸음을 신기하게 쳐다볼 때가 있다.

경마는 인간의 강한 욕망 중 하나를 제도(済度)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경마장에 모일 정도의 사람이면 원래부터 현인군자가 아니다. 이욕이 왕성하다면, 금전에는 배로 탐욕스러울 것이 분명하다. 사실 보고 있자면 지폐의 홍수 속에서 혈안이 된 얼굴이 무수히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버스를 같이 타는 사람들을 봐도 그날 아침 경마장에서의 정신없는 모습은 다들 마치 어린애 같은 치기로 돌아가 있다. 아무리 욕심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외없이 소년시절의 소풍 기분을 내며 나간다.

또 경마장 안에서는 의외로 소매치기나 강탈이 적다. 국전 같은 곳과 비교하면 예상외로 그런 피해는 없다. 생각하건대 소매치기도 그 정신없는 시장바닥에 휩쓸려 단순히 사람들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자신의 주머니로 이전시키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어지는 것이 틀림없다. 소매치기도 마권을 사고, 적중하는 환희를 매표소에서 맛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경마의 진미를 모르는 사람이 그 혼잡함과 혈안만 냉안시하고 한심하게 속된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 안에 있는 것이야말로 훨씬 한심하고, 더 속된 것이다.

  1. 속된 것에 깨달음(=보리)가 있다는 뜻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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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문장과 말』  (0) 2013.12.20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21. 00:47 일본역사

黒船来航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1263/files/50362_390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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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패의 발판


아편전쟁(1840-42)으로 중국이 개국한 뒤 극동의 일각 일본을 열면 이것으로 구 문명국을 자본주의 세계에 개방하는 사업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남경 조약에서, 이 다음은 일본의 차례라고 하는 것은 영국을 선두로 하는 자본주의열강의 상식이었을뿐만 아니라, 일본에게 있어서도 상식이었다. 게다가 그 객이 어떤 객인지는 인도나 중국을 개국시킨 실적으로 비추어 볼 때 일본의 애국자에게는 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야시 시헤이가 『해국병담(海国兵談)』을 내었고, 하시모토 사나이는 일본이 「제2의 인도가 되는」것을 두려워 했다.

당시의 자본주의는 무역제일주의를 신봉하는 자유경제의 전성기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청년시대였지만, 인도나 중국에 대한 식민지화 전쟁, 그 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불평등조약과 그 불평등조약으로 보장받은 부당한 이윤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지켜왔던 것이었다.

문제는 어째서 미국이 일본개국의 선수를 쳤는가에 있지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중국무역에서 영국에게 이기기 위한 발판으로써 일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흥국 미국은 중국무역 방면에서도 쭉쭉 영국과의 차이를 좁히고자 했다. 1848년은 부르조아 혁명의 파도가 서구를 뒤덮은 해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증기선이 실용화되고 철도가 실용화된 시대였다. 페리는 세계에서 앞장선 최신 기술을 가지고, 종래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미국해군을 증기해군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증기선 항로로 중국에 가면, 중국무역으로 영국에게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의 유치한 기술로는 어떻게 해서든 도중에 석탄을 실을 기항지가 필요했다. 즉 이전에 말했다시피 중국무역에서 미국이 영국에게 이기기 위한 발판으로써 일본을 개국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페리는 제일 먼저 오키나와로 가, 나하(那覇)를 근거지로 삼아 오가사와라 제도로 이동, 지치지마 섬에 석탄 창고를 세울 토지까지 구입하고, 일본이 개국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치지마 섬 혹은 나하를 기항지로 삼아 상하이무역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 다음 태평양 전쟁에서, 처음으로 나하를 함락시키고, 다음에는 일본 본토를 향하게 된 것과 꼭 같은 일이다.


개국파와 양이파


태평한 잠을 깨게 한 쿠로후네의 내항은 국내 개국파와 양이파의 항쟁으로 되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개국파, 양이파라고는 하지만, 각각 두 종류가 있었다.

개국파의 일방에는 이이 다이로[각주:1]의 일파가 있었다. 마음속으로 개국하면 자신들의 오랜 권력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더 그 권세를 이어나가기 위한 개국파였다. 또 하나는 순수한 개국파로, 시간순으로 안도 쇼세키, 사토 노부히로부터, 와타나베 가잔, 타카노 쵸에이를 거쳐, 페리 내항 당시에는 사쿠마 쇼잔, 하시모토 사나이 등이 그 대표자였다. 이 사람들은 세계의 진운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한, 우국충정에서 개국을 주장한 애국파였다. 그래서 당시의 권력으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은 것이다.

양이파에도 비슷하게 봉건지배층인 양이와 인민의 양이 두 파가 있었다. 전자의 예는 나마무기에서 사츠마 무사들이 영국인을 벤, 이른바 나마무기 사건으로 대표되고, 후자는 이를테면 쓰시마가 점령당했을 때 최후까지 반항했던 쓰시마의 주민이었다. 민간으로부터 양이에 참가한 기슈의 하마구치 고료, 오와리의 하야시 긴베, 또는 덴구당으로 급히 달려가려 했던 고노 히로나카, 그 밖에도 문구[각주:2]동안 과격양이결행파 중에 여럿 있었다. 무사가 아닌 당시의 인민의 생산력을 대표하는 젊은 부르조아 양이가 후자를 대표한다. 이 네 파가 맹렬히 싸우면서 메이지 유신으로 역사는 흘러간다.


오랜 야망


일본개국으로 선수를 친 미국이 그 직후 일어난 남북전쟁으로 손이 묶여있는 동안 일본무역의 과실은 영국의 손으로 다시 넘어갔다. 이윽고 일본에도 메이지 유신의 개혁이, 프랑스의 지원를 받은 막부와 영국의 지원을 받은 천황의 양파의, 양쪽 모두 봉건적인 동일계급끼리의 권력쟁탈전이란 형태로, 혁명이 아닌 일종의 개혁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안내역으로 삼아 아시아 진출의 야망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 첫 발로가 그랜트 장군의 유구 문제 알선으로, 대만정벌 이래 반목하고 있던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재역을 맡아 등장했다. 뒤이어 조선에 대해서는, 일본을 안내역 삼아 영국과 대항했다. 이 영미의 대립경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무쓰 무네미쓰의 외교가 불평등조약의 개정을 성공시킨 비밀이 있다.

포츠머스에서 미국이 러일전쟁의 중재역을 자청하고 나선 것도, 페리 내항 이래 일관되게 진행시켜온 「일본을 발판으로 아시아 진출」이란 오랜 야망을 이루기 위한 계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2의 개국


백년의 계책을 백년째에 정확히 실현했다고 할까.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이고, 일미안전보장조약이며, 지금 다시 비준되려고 하는 일미통상항해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백년전 쿠로후네가 왔을 때, 우리의 선조는 직관적으로 조국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존왕과 결부되어 비뚤어진 모양으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반식민지화의 위험에 대항한 애국의 본능이었다. 지금 백년후의「제2개국」을 맞아, 일부의 지사가 아닌, 일본국민 최대다수 계급인 노동자, 농민, 민족자본가, 지식인이 백년전의 근심과 분노를 백배로 늘려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 이이 나오스케(1815-1860). 오미 히코네번의 제15대 번주 [본문으로]
  2. 일본의 원호. 메이지 전 1861-1863년을 가리킴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20. 19:35 일본수필

文章と言葉と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879/files/3755_273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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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나한테 「문장을 너무 고른다. 그렇게 고르지 마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나는 특별히 필요 이상으로 문장을 고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은 무엇보다 명료하게 쓰고 싶다.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분명하게 문장으로 나타내고 싶다. 나는 단지 그것에 주의할뿐이다. 그렇게만 해도 펜을 쥐어보면 그다지 술술 써지는 일은 없다. 항상 너저분한 문장을 쓰고 있다. 나의 문장상 고심이라고 하는 것은 (만약 고심이라고 할 게 있다면) 그것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다. 타인의 문장을 대할 때에도 내 자신의 문장을 대하는 것과 같다. 명료하지 않은 문장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 없다. 적어도 좋아할 수가 없다. 즉 나는 문장에 관해서는 아폴로주의를 신봉한다.

나는 남들이 뭐라 하든 방해석과 같이 명료한, 애매함을 용납하지 않는 문장을 쓰고 싶다.



오십년전의 일본인이 「신(神)」이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머리카락을 흉하게 묶고, 목 주위에 곡옥을 건 남녀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본인은, 적어도 오늘의 청년은 대부분 긴 턱수염을 기른 서양인을 떠올릴 것이다. 단어는 똑같이「신(神)」이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모습은 이정도로 변천되어 있다.

나는 언젠가 고미야 씨[각주:1]와 바쇼[각주:2]의 하이쿠에 대해 논한 적이 있다. 시키 코지[각주:3]의 해석에 따르면, 이 구는 해학을 담은 것이다. 나도 그 설에 이의는 없다. 하지만 고미야 씨는 어떻게든 장엄한 구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림의 힘은 오백년, 글의 힘은 팔백년을 간다. 문장의 힘은 몇백년이나 가는 것일까?


  1. 고미야 토요타카(小宮豊隆 1884-1966) : 일본의 독문학자, 문예평론가, 연극평론가, 일본학사원 회원. [본문으로]
  2.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64-1694) : 일본의 하이쿠 시인 [본문으로]
  3. 마츠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 : 일본의 하이쿠 시인, 국어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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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20. 16:02 일본문학

汚れつちまつた悲しみに……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026/files/894_28272.html


더럽혀져 버린 슬픔에

오늘도 가랑눈이 내려앉는다.

더럽혀져 버린 슬픔에

오늘도 바람마저 세차게 분다.


더럽혀져 버린 슬픔은

마치 여우의 가죽옷

더럽혀져 버린 슬픔은

가랑눈에 덮여 움츠러든다


더럽혀져 버린 슬픔은

무엇하나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고

더럽혀져 버린 슬픔은

권태속에서 죽음을 꿈꾼다


더럽혀져 버린 슬픔에

애처롭게도 무서워져서

더럽혀져 버린 슬픔에

어찌할 도리도 없이 날은 저문다……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19. 22:23 일본문학

光と風と夢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119/files/1743_145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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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5월 어느 늦은 밤, 35세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는 남프랑스 예일의 객사에서 돌연 심한 각혈에 시달렸다. 급히 달려온 아내에게 그는 종이칼[각주:1]에 이렇게 적어 보여주었다.

「두려워할 것은 없소. 이게 죽음이라면 편한 것이니.」

그후 그는 요양지를 찾아 전전해야만 했다. 영국 남부의 휴양지 본머스에서 삼 년 있은 후, 콜로라도로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도 생각처럼 좋지 않아 이번에는 남태평양행을 해보기로 했다. 70톤의 스쿠너는 마르키즈, 투아모투, 타히티, 하와이, 길버트를 거쳐 일 년 반의 순항 끝에 1889년 말 사모아의 아피아 항에 닿았다. 해상 생활은 쾌적했고, 섬의 기후는 부족함이 없었다. 스스로 「기침과 뼈일 뿐이다」라던 스티븐스의 몸도 일단 소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살 마음이 들어, 아피아 시외에 사백 에이커 정도의 토지를 구입했다. 물론 여기서 일생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다음해 이월, 구입했던 토지의 개간이나 건축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시드니까지 외출했다. 거기서 배편을 기다려 일단 영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영국에 있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난 이제 한 번밖에 영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 그리고 그 한 번이란, 죽을 때겠지. 나는 열대에 있어야만 조금이나마 건강한 것 같네. 아열대인 이곳(뉴칼레도니아)에서도 나는 금방 감기에 걸리더군. 시드니에서는 결국 각혈까지 오고 말았지. 안개가 짙은 영국에 돌아가는 일 따윈 지금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어. ……난 슬픈 것일까? 영국에 있는 일고여덟명, 미국에 있는 한두명의 친구와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 그게 괴로울 뿐이지. 그걸 빼고는 오히려 사모아가 더 마음에 든다네. 바다와 섬의 원주민들, 섬 생활과 기후가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해주겠지. 나는 이 유형(流刑)을 절대로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그해 십일월, 그는 겨우 건강을 되찾아 사모아로 돌아왔다. 그의 매입지에는 원주민 목수가 만든 작은 오두막집이 세워져 있었다. 본건축은 백인 목수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그게 완성될 때까지 스티븐스와 그의 아내 패니는 오두막집에서 먹고 자면서 스스로 원주민들의 감독을 맡아 개간에 돌입했다. 그곳은 아피아 시에서 남쪽으로 삼 마일 떨어진 휴화산 바에아의 산중턱으로, 다섯 개의 시냇물과 세 개의 폭포, 그외 몇 개의 협곡과 벼랑을 포함한 육백 미터에서 천삼백 미터에 이르는 높이의 대지(台地)였다. 원주민들은 이 땅을 바이리아라고 불렀다. 다섯 강이라는 뜻이다. 울창한 열대림과 묘망한 남태평양의 조망을 가진 이 땅에 자신의 힘으로 생활의 초석을 세워나가는 것은 스티븐스에게 있어서 어릴 적 모형 정원 놀이와 같은 순수한 기쁨이었다. 자기 손으로 자기 생활을 직접 유지함에 대한 의식(意識)――스스로 말뚝을 하나하나 박아넣은 그 땅 위의 집에 살면서, 스스로 톱을 들고 만드는 것을 도운 의자에 앉아, 스스로 괭이를 잡아 일군 밭에서 키운 야채와 과실을 얼마든지 먹는 것――유년 시절 처음 자력으로 만들어낸 수공품을 테이블 위에 놓고 관찰했을 때의 신선한 자존심을 되찾아 주었다. 이 오두막집을 구성하고 있는 통나무와 판자, 하루하루의 음식물까지 모두 그 내력을 알고 있다는 것――요컨대, 저 나무들은 전부 자신의 산에서 베어져 자신의 눈앞에서 대패질한 물건이고, 저 음식물의 출처도 전부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는(이 오렌지는 어떤 나무에서 딴 거고, 이 바나나는 어떤 밭에서 나왔다는) 것. 이것도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든 요리가 아니면 안심하고 먹을 수 없었던 스티븐스에게, 어딘가 안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 또는 월터 휘트만의 생활을 실현하고 있었다. 「태양과 대지와 생물을 사랑하고, 부를 경멸하며, 원하는 자에게 내려주는 백인문명과 닮았다고 하는 커다란 편견과 가정. 교육받지 못하고[각주:2] 힘이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활보하고, 밝은 바람과 빛 속에서 힘든 노동을 한 피부 밑에서 피가 도는 것을 기분좋게 느끼며, 사람들에게 비웃음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잊고는 정말이라 생각하는 것만 말하고 정말로 원하는 것만 행한다.」 이것이 그의 새로운 생활이었다.


  1. 원문은 紙切り로 切り紙에 자른 종이쪼가리라는 뜻이 있어 切り紙의 오기가 아닐까 의심됨. [본문으로]
  2. 教育なき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2013. 12. 19. 22:16 일본동화

よだかの星

원문출처 : http://www.aozora.gr.jp/cards/000081/files/473_423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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쏙독새의 별


미야자와 겐지





쏙독새(夜鷹)[각주:1]는, 실로 못생긴 새입니다.

얼굴은 여기저기 먹칠을 한 듯 얼룩덜룩하고, 부리는 납작하고 귀까지 찢어져 있습니다.

다리는 아주 비실비실해서 한 간(間)[각주:2]도 걷지 못 합니다.

다른 새들은 쏙독새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싫어지게 되는 정도였습니다.

이를테면 종달새도 그다지 아름다운 새는 아니지만 쏙독새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저녁 때 쏙독새와 만나면 정말 싫은 것처럼 악착스럽게 눈을 감고서 고개를 딴 쪽으로 향하고는 했습니다. 좀더 작은 수다쟁이 새들은 어느 때고 쏙독새의 앞에서 욕을 했습니다.

"흥. 또 나왔구나. 뭐, 저 꼴을 보라지. 정말이지, 새들의 망신거리라니까."

"그래, 저 큰 입을 봐. 분명히 개구리 친척이 아니면 뭐겠어."

이런 식입니다. 아, 쏙독새가 아닌 보통의 매였으면 이런 어중간하게 작은 새들은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도 바들바들 떨면서 사색이 되어 몸을 움츠리고는 나뭇잎 그림자에라도 숨었을 테지요. 그러나 쏙독새는 사실 매의 형제도 친척도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쏙독새는 저 아름다운 물총새나 새들의 보물과 같은 벌새의 형이었습니다. 벌새는 꽃의 꿀을 먹고, 물총새는 물고기를 먹고, 쏙독새는 날벌레를 잡아 먹습니다. 더욱이 쏙독새에게는 날카로운 발톱도, 날카로운 부리도 없어서, 아무리 약한 새라도 쏙독새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라고 하는 이름이 왜 붙었나 싶지만, 이것은 첫 번째로 쏙독새의 날개는 무척 세서,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를 때에는 마치 매와 같이 보이고, 두 번째로는 울음소리가 날카로워서 또 어딘가 매와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매는 이것을 몹시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 탓에 쏙독새의 얼굴만 보면 어깨에 힘을 주고 빨리 이름을 고쳐라, 이름을 고쳐라 하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드디어 매가 쏙독새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이봐, 있는가. 아직도 네 녀석은 이름을 바꾸지 않는 건가. 너도 참 낯짝이 두껍군. 너와 난 격이 전혀 달라. 이를테면 난 파란 하늘을 끝없이 날아갈 수 있지. 너는 흐려서 어두침침한 날이나 밤이 아니면 나오지 않아. 또 내 부리와 발톱을 보고 네 것과 비교해 보아라."

"매 씨. 그건 너무 무리입니다. 제 이름은 제가 마음대로 붙인 게 아닙니다. 신께서 내려주신 것입니다."

"아니. 내 이름은 신께서 내려주셨다고 해도 될 테지만, 네 녀석 이름은 말하자면 나(鷹)와 밤(夜)한테서 빌려온 거지. 자아, 내놔라."

"매 씨. 그건 무리입니다."

"무리가 아니야. 내가 좋은 이름을 알려주지. 이치조(市蔵)라고 하는 거다. 이치조 말이지. 좋은 이름 아닌가. 그리고 이름을 바꿀 때에는 개명신고를 해야지. 알겠나. 그건 말이지, 목에 이치조라고 쓰인 이름표를 걸고 나는 이제부터 이치조라고 합니다, 하고 모두의 집을 돌면서 구두로 전하는 거다."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아니, 해야 한다. 그렇게 해. 만일 모레 아침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로 목 졸라 죽여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나는 모레 아침 일찍, 새집을 한 집씩 돌면서 네가 왔는지를 물을 테다. 한 집이라도 오지 않았다고 하는 집이 있으면 그때는 네 녀석도 끝이야."

"그렇지만 그건 너무 무리가 아닙니까. 그렇게 할 바에 저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죽이시죠."

"뭐, 나중에 잘 생각해 봐라. 이치조라면 그렇게 나쁜 이름은 아니지 않나." 매는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자신의 둥지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쏙독새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모두에게 미움받는 것일까. 내 얼굴은 먹칠을 한 것 같고 입은 찢어졌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해도 나는 지금까지 나쁜 짓은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 새끼 동박새가 둥지에서 떨어졌을 때는 구해서 둥지로 데려가 줬다. 그랬더니 동박새는 새끼를 마치 도둑한테서 되찾는 것처럼 나한테서 잡고 떼어 놓았지. 그리고 나서 나를 몹시 비웃었던가. 게다가 아, 이번에는 이치조라니. 목에 이름표를 걸어야 한다니. 괴로운 이야기로군.)

주위는 벌써 어둑어둑해 졌습니다. 쏙독새는 둥지에서 날아올랐습니다. 구름이 심술궃게 빛나며 낮게 떠 있습니다. 쏙독새는 거의 구름에 스칠듯이 하여 소리없이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는 돌연 쏙독새가 입을 크게 벌리고 날개를 죽 뻗어서 마치 화살과 같이 하늘을 가로질렀습니다. 작은 날벌레가 몇 마리씩 몇 마리씩 그 목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몸이 땅에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하는 동안 쏙독새는 훌쩍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이제 구름은 쥐색이 되었고, 맞은편 산은 산불로 새빨갛습니다.

쏙독새가 마음먹고 날 때는 하늘이 마치 두 개로 쪼개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투구풍뎅이 한 마리가 쏙독새의 목구멍으로 들어가 심하게 발버둥쳤습니다. 쏙독새는 바로 그것을 삼켰지만 그때 뭔가 등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구름은 이미 시커멓고, 동쪽만이 산불로 빨갛게 비추는 게 무서울 것 같습니다. 쏙독새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다시 투구풍뎅이 한 마리가 쏙독새의 목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치 쏙독새의 목구멍을 긁듯 파닥거렸습니다. 쏙독새는 그것을 억지로 삼켰지만, 그때 갑자기 가슴이 뜨금해서, 쏙독새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빙글빙글빙글빙글 하늘을 돌았던 것입니다.

(아아, 투구풍뎅이나 많은 날벌레가 매일밤 나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그처럼 이번에는 하나의 내가 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게 이렇게 괴로운 거다. 아아, 괴로워, 괴롭구나. 나는 이제 벌레를 먹지 않고 굶어 죽겠다. 아니, 그전에 이미 매가 나를 죽이겠지. 아니, 그전에 멀리멀리 하늘 저편으로 떠나자.)

산불은 점점 물처럼 흘러넘쳐 구름도 빨갛게 타는 듯합니다.

쏙독새는 곧장 동생인 물총새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예쁜 물총새도 마침 일어나 먼 산불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쏙독새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형님, 오셨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나는 지금 먼 곳으로 가니 말이지. 그전에 잠깐 너를 만나러 온 거다."

"형님, 가면 안 돼요. 벌새도 아주 먼 곳에 있으니 저 혼자가 되어버리잖아요."

"그건 말이지. 아무리 해도 어쩔 수가 없단다. 더이상 오늘은 아무말도 하지 말아 주렴. 그리고 너도 말이지, 꼭 잡아야 할 때 말고는 장난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하지 않도록 해라. 그럼, 잘 있어."

"형님, 무슨 일인가요. 아니,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아니, 계속 있어도 똑같아. 벌새한테는 나중에 안부를 전해줘. 안녕, 이제는 오지 않을게. 안녕."

쏙독새는 울면서 자기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여름밤은 이제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양치잎은 새벽 안개를 빨아들여 푸르고 차갑게 흔들렸습니다. 쏙독새는 끼익끼익끼익 울었습니다. 그리고 둥지속을 깔끔히 정리하고 몸 구석구석 날개나 털을 매끈하게 고른 다음, 둥지에서 날아올랐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해님이 막 동쪽에서 떠올랐습니다. 쏙독새는 어질어질할 정도로 눈부신 것을 참고 화살과 같이 그쪽으로 날아갔습니다.

"해님, 해님. 부디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타 죽어도 좋아요. 저와 같이 못생긴 몸이라도 탈 때는 작은 빛을 내겠지요. 제발 저를 데리고 가 주셔요."

가도 가도, 해님은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점점 작고 멀어지면서 해님이 말했습니다.

"너는 쏙독새로구나. 그렇군. 많이 괴롭겠지. 이 다음에 하늘을 날아 별에게 부탁해 보거라. 너는 낮새가 아니니 말이지."

쏙독새는 인사를 한 번 했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어질어질해서 결국 들판의 풀밭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꿈을 꾸는 듯 했습니다. 몸이 빨갛고 노란 별 사이로 쑥 치오르거나, 계속 바람에 휩쓸리거나, 또 매가 와서 몸을 붙잡거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차가운 것이 갑자기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쏙독새는 눈을 떴습니다. 한 그루의 어린 참억새 잎에서 이슬이 방울져 떨어진 것이겠지요. 이미 한밤이 되어 하늘은 검푸르고 온통 별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쏙독새는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오늘밤도 산불은 새빨갛습니다. 쏙독새는 그 불의 희미한 빛과 차가운 별빛 속을 날아다녔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 번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는 결심하고 서쪽 하늘의 저 아름다운 오리온자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며 소리쳤습니다.

"별님. 서쪽의 푸른 별님. 제발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타 죽어도 좋아요."

오리온은 씩씩한 노래를 부르면서 쏙독새 같은 건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쏙독새는 울것 같아 비틀비틀 떨어지다가 겨우 버티고 다시 한 번 날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남쪽의 큰개자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며 소리쳤습니다.

"별님. 남쪽의 푸른 별님. 제발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타 죽어도 좋아요."

큰개는 파란색, 보라색, 노랑색으로 아름답고 조급하게 깜박이며 말했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마라. 네가 도대체 뭐길래. 기껏해야 새가 아니냐. 너의 날개로 여기까지 오려면 억년 조년 억조년이다." 그리고 다시 딴 쪽을 향했습니다.

쏙독새는 실망해서 비틀비틀 떨어지다가 다시 두 번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결심하고 북쪽의 큰곰자리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며 소리쳤습니다.

"북쪽의 푸른 별님, 당신이 있는 곳으로 저를 데려가 주세요."

큰곰자리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아라. 조금 머리를 식히고 오거라. 그럴 때는 빙산이 떠있는 바다속으로 뛰어들거나, 가까운데 바다가 없으면 얼음이 떠있는 컵 안의 물속으로 뛰어들거나 하는 게 제일이다."

쏙독새는 실망해서 비틀비틀 떨어지다가 또 다시 네 번 하늘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동쪽에서 방금 떠오른 은하수 저편에 있는 벼랑의 독수리성운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동쪽의 하얀 별님. 제발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타 죽어도 좋아요."

독수리는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라. 별이 되려면 그것에 걸맞는 신분이 아니면 안 돼. 또 돈도 꽤 필요하다고."

쏙독새는 이제 완전히 낙심해서 날개를 접고 땅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일 척 밑 지면으로 그 약한 다리가 닿으려고 할 때, 쏙독새는 돌연 봉화와 같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에 절반쯤 와서 쏙독새는 마치 독수리가 곰을 덮칠 때와 같이 바르르 몸을 떨고 털을 곤두세웠습니다.

끼익끼익끼익끼익끼익하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 목소리는 꼭 매였습니다. 들판이나 숲에서 자고 있던 다른 새들은 모두 눈을 뜨고 바들바들 떨면서 의아하게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쏙독새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똑바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산불은 담배꽁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쏙독새는 오르고 또 올라갔습니다.

추위로 숨은 가슴에서 하얗게 얼어붙었습니다. 공기가 옅어졌기 때문에 날개를 정말로 바삐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별의 크기는 아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숨 쉬는 게 풀무와 같았습니다. 추위와 서리가 마치 검처럼 쏙독새를 찔렀습니다. 쏙독새의 날개는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들어 다시 한 번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쏙독새의 최후였습니다. 이제 쏙독새는 떨어지고 있는지 올라가고 있는지, 거꾸로 되었는지, 위를 향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기분은 편안한듯, 그 피 묻은 커다란 부리는 옆으로 휘어있었지만 확실히 살짝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에 쏙독새는 똑똑히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지금 도깨비불과 같이 파랗게 아름다운 빛이 되어,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옆은 카시오페아좌였습니다. 은하수의 파란 빛이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쏙독새의 별은 계속 타올랐습니다. 언제까지도 언제까지도 계속 타올랐습니다.

지금도 아직 타오르고 있습니다.


  1. 쏙독새는 일본어로 夜鷹, 즉 밤(夜)과 매(鷹)가 합쳐진 단어다. [본문으로]
  2. 6척(=1.81818미터) [본문으로]
posted by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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